책과함께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지 마라

변두리1 2020. 4. 2. 19:04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지 마라

 

정신과 전문의 유은정 박사가 썼다. 타인의 기분에 맞춰 거절하지 못하고 부탁하는 걸 다 들어주다 보면 제목처럼 될지 모른다. 얼마 전에 한 지자체장과 그 지역 목회자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지자체장이 명령권을 사용할 수 있음을 암시했는지 목회자들은 자율적으로 충실히 협조하고 있으니 강제하지 말라고 했단다. 자존심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분들이니 스스로 협조하는 것하고 명령에 따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자기 결정으로 능동적으로 일을 할 때 더 좋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는 게다.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게 관심을 두지 않으며 내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의 어려운 부탁을 여러 번 들어주고 도움을 주어도 내 한 번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있고 자신의 요청을 한 번 거절하면 전에는 잘 들어주더니 거절한다고 서운해 할 수도 있다. 자신의 부탁 때문에 내가 겪은 고생과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주고받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베푸는 사람은 매번 베풀고 받는 사람은 늘 받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데 그런 때에는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도움을 주지 않으면 서운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계는 가족 간에도 성립한다.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간,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위해 가사 일을 하고 아버지가 경제적인 일을 하는 것을 자녀들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크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때로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공평하게 베풀어지지 않을 때도 있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지내면 삶의 한 방식으로 굳어질 수 있다. 남아선호현상이나 맏이에게 사랑과 기대가 몰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이 불편하고 부당하게 느껴진다면 항의하고 의견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마음에 상처가 남는다고 의식하지 못한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인성이 좋은 착한 사람으로 남으려 참고 타인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사정을 정확히 알리고 들어줄 수 없는 것은 거절하는 것이 옳다.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상대가 큰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 상대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겠네, 정 안되면 내가 어떻게라도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삶의 자세가 되풀이되면 상대도 이해하게 되어 서로 상처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상처받지 않고 불필요한 고생을 하지 않게 된다.

내 삶의 결정을 남에게 맡기거나 남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에야 서로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진정한 협조가 성립한다.

어떤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보호할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 그것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몰입하고 재정비가 필요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잠수를 타라. 그것은 잘못도 아니고 타인들에게 못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이들도 그런 순간들이 오면 인정을 해주면 된다. 함께 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면서도 남의 눈치를 보느라 억지로 함께 하고 어울리는 것은 서로를 위해 좋지 못하다.

직업을 택하는데 있어 자신이 잘 하는 것을 고르라. 현재는 완벽하지 않아도 약점을 메우려 하기보다 강점을 더욱 강화시켜라. 남들에 의해 현재의 실력이나 학력과 학벌에 주눅 들지 말고 자신이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정진해 나가면 자기 것이 생긴다. 자기 것이 있으면 남에게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자기를 알아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는 자신을 오래 보아온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스스로 멘토를 정하여 목표에 이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의 요청을 들어줄까 염려되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열려있는 이들이 많다. 단지 요청하는 이의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안 된다면 그 분야의 책을 참고할 수도 있고 유관된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여할 수도 있다.

시작부터 완전할 수는 없다. 마지막 끝맺는 순간에도 완벽하기가 어려운데 출발이 어설프고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랜 기간을 거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게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성공은 가까운 친구의 성공이라고 한다. 그것은 내가 그 친구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다. 본인이 더 큰 것을 이루었다면 진심어린 축하를 해줄 수 있다. 또한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해도 목표가 분명하고 그 성취를 확신한다고 하면 배 아플 이유가 없다. 친구가 성공해서 손해 볼 게 없다. 친구가 잘되면 본인의 위상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와 상대적으로 비교해 스스로 열등감을 갖는 것이다. 그것을 만회하려고 어떻게든 성공한 친구의 흠을 잡고 깎아내리려 한다. 자신의 옹졸함과 그릇이 작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축하하고 그를 칭찬하는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상처받는 일은 드물다. 자신에게 잘 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은 이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기대했던 가까운 이들이 합당한 행동을 보이지 않을 때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면 상처받지 않는 길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되돌려 받을 것을 바라고 도움을 주지 말고 자신에게 힘겨운 지나친 부탁은 자신의 형편을 설명하고 거절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맞추어 내 행동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 형편과 기준에 의해 행동을 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상대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혼자 상처받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