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冠 權 牌 置(관 권 패 치)
19장 冠 權 牌 置(관 권 패 치)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冠)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관(冠)은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들이 머리에 쓰는 것이다. 관의 크기나 화려함 그 재료를 보면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평민들은 관을 쓰지 않았다.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니 조롱하는 뜻으로 관을 엮어 머리에 씌운 것이다. 그것도 얼마나 악의적(惡意的)인지, 가시나무로 만들어 씌웠다. 군인들에게 가학적(加虐的)인 기질이 있었나 보다. 예수님은 관을 쓰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었다. 그 분은 만왕의 왕이었고 하나님 앞에 인류의 죄를 속하는 대제사장이셨다. 항상 다수의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몇몇에 의해 선동되고 여론이 호도(糊塗)될 수도 있다. 군중들은 때로 집단 최면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역사에서 독재자에 의해 군중들이 선동되고 여론몰이 식으로 사건이 처리되는 것들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그런 것들을 멀리 하셨다. 시각과 청각적 장치를 동원하면 군중들을 흥분케 하는 분위기로 더 쉽게 몰아갈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의상과 분장만으로도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나 사용하지 않으셨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베들레헴의 마굿간에 오셨고 구유에 누우셨다.
冠(관, 갓 관)은 冖 + 元 + 寸이다. 冖은 어떤 물건을 덮는 덮개를 그린 것이다. ?(겹쳐 덮을 모)와 같이 한 번 더 강조한 것도 있고 曰과 유사해 보이나 冒(무릅쓸, 모)의 윗부분에 보이는 冂 안에 二를 넣은 듯한 ⺜(쓰개 모)자(字)도 있다. 元(으뜸, 머리 원)은 儿에 二가 더해진 것이다. 儿(어진 사람 인)은 人이 글자의 아래 부분 곧 발로 쓰일 때의 변형되어 나타나는 형태다. 변으로 쓰일 때는 亻의 모양이 된다. 二는 丨과 一을 합한 모양과 같고 上과도 같으니 곧 ‘위’라는 의미다. 그러니 元은 사람의 위에 속한 부분 곧 머리가 된다. 寸(마디 촌)은 又가 조금 변형된 듯한 손가락 세 개를 상징적으로 그린 모습에 一을 작게 더한 것으로 손의 한 부분, 손으로 잡는 것 등을 나타냈으니 세 요소를 모두 합하면 손으로 머리에 씌워주는 것이 되어 冠(관)의 의미가 된다.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權)한도 있는 줄… ”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는 유대 총독으로 죄인을 석방하거나 십자가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법체계가 그에게 부여해 준 것이다. 그의 이 말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궁극적으로 권한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세상의 힘인 줄 알지만 주님에 대한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이자 선언이다. 주님은 자신의 결과를 알고 계신다. 그 일을 위해 그 때에 오셨으니 빌라도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오래 전에 심지어 창세전에 결정이 난 일이다. 주님은 빌라도 앞에 비굴할 일이 없고 잘 보이려 사정할 일도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무나 질 수 없으니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죄 없으신 주님만이 지실 수 있는 인류구속의 십자가다.
權(권세 권)은 木 + 雚이다. 木은 뿌리와 줄기가 있는 나무를 그린 것이고 雚(황새 관)은 卝 + ㅁㅁ + 隹다. 卝(북상투 관)은 丱(쌍상투 관)과 같이 쓰인다고 한다. 북상투는 아무렇게나 막 끌어 올려 튼 상투고, 쌍상투는 머리를 둘로 갈라 틀어 올린 상투라고 한다. 새의 대가리에 길고 더부룩하게 난 털을 도가머리라고 하는데 이런 모양을 나타낸 것이 卝이다. 지금도 雚(황새 관)字(자)는 정확한 형태로 쓰이기도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자형(字形)이 아니니 유사한 艹모양으로 쓰인다. ㅁㅁ은 황새의 두드러진 두 눈을 그렸다고 한다. 隹(새 추)는 꼬리 짧은 새의 뜻인데, 표현하는 대상이 새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의미이다. 鸛(황새 관)도 황새를 나타내는데 雚의 의미를 한 번 더 강조해주는 의미일 것이다. 木 + 雚을 통해 보여주는 그림은 나무위에 앉은 황새다. 황새는 기품이 있는 새로 알려져 있어 나무 위에 올라간 황새는 ‘위세’혹은 ‘권세’를 의미하게 되었다.
지위가 높은 이들이 권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사다리에 올라있는 형세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야말로 권세 있는 분이다. 그 분의 권세는 나무로 된 십자가에 달리심에 근거가 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영원토록 가지신 분이다.
“牌(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문패, 명패, 패찰 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위에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서 붙였다. 이에 유대제사장들이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했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예수님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밉보여서 어려움을 당한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다고 했지만 그런 용기는 없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관직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가능하면 헤롯에게 떠넘기려했고, 자신의 일이 되자 감히 군중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를 물리칠 수 없었다. 소요가 일면 황제의 눈 밖에 나고 소환과 수사를 받을 것이 두려웠다. 기껏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죄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는 책임회피가 고작이었다. 그는 군중들 앞에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세 번이나 표명했다. 유월절 전례대로 죄수 하나를 풀어주려 할 때에 예수님을 제시한다.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절망에 차서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고 묻고 있다. 자신의 판단대로 일이 처리되지 않고 십자가 처형이 행해지자 그의 죄패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적는다. 빌라도의 한계다.
牌(방붙일, 패 패)는 片 + 卑다. 片(조각, 쪼갤 편)은 木을 양편으로 나눈 오른 편 조각이고, 왼편은 爿(조각 널 장)이다. 나무판자를 의미한다. 卑(천할, 낮을 비)는 어떤 이는 술 따르는 그릇을 의미하는 윗부분과 손으로 잡는 아래 부분 十의 합으로 술을 따르는 종이나 낮은 신분을 의미했다고 하고 다른 이는 큰 부채를 손으로 부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는 윗부분은 부채를 의미한다고 한다. 옛글자의 설명이 이 설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개인적 상상으로는 由와 비슷한데 맨 윗부분이 왼쪽으로 기운 짧은 삐침인 ‘귀신머리 불’자가 있다. 그 자에 千(일천 천)자가 밑을 받친다고 하면 가리키는 것이 건물, 물건, 사람이라 할지라도 천의 귀신이 지키니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귀신이니 낮고 천하지만 그런 이들이 천이나 되니 그들의 보호를 받는 이는 안전하다. 고대로 갈수록 샤머니즘과 안전의식이 강조되니 그렇게 추측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런 의미를 나무 조각에 담아 드러내는 것이 무엇이든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마치 猛犬注意(맹견주의)나 무인카메라가 촬영하고 있으니 유의바람, 또는 경비업체에 가입된 곳임과 같다고 하겠다. 한마디로 牌는 무서운 것들에 의해 지켜지기를 바라는 염원과 경고를 담아 알리는 조각이다.
성도들은 성령님에 의해 지켜진다. 성령께서 주시는 근원적인 기쁨이 표시이며 자신과 타인을 향한 사랑이 명패가 된다. 기쁨과 사랑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置]”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은 큰 명절이었던 유월절을 준비하는 예비 일이었다. 해마다 세 번 성전을 찾는 명절 중 하나였던 유월절이라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다. 그때 최대관심사는 ‘예수는 누구인가’였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제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가룟 유다가 합류한 것은 그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하는 그들의 자조어린 탄식 속에 나타나 있다. 그들에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닐 구멍이 있었다. 유다를 이용해 예수를 체포하고 電光石火(전광석화)처럼 심문과 재판을 거쳐 십자가에 처형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는 발 뻗고 자겠다’고 생각했을 게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하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예수의 외침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숨어있던 예수님의 제자로 부자였던 의인 아리마대 요셉과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산헤드린 공회원 니고데모가 찾아와 장례를 치른다.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주님의 시신을 安置(안치)한다. 넘치는 비통함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었을 게다. 평소에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그곳에 함께 있었다.
置(둘, 안치할 치)는 罒 + 直이다. 罒은 网(그물 망)이 글자의 머리 부분에 쓰일 때에 나타나는 변형이다. 网은 양쪽의 손잡이와 그사이에 망이 있는 그물을 나타내고 있다. 直(곧을 직)은 十 + 目 + ?이다. 十은 동서남북, 전후좌우가 연결되어 완비된, 또 열이라는 의미로 많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예전에는 丨처럼 세로획 하나로 나타내기도 했다. 丨으로 곧고 바른 것을 뜻하기도 한다. 目은 그대로 눈이다. ?은 구부려 가리고 숨은 모양을 뜻했다. 直은 숨겨진 혹은 은밀한 곳에서 많은 눈들이 똑바로 어떤 대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置는 은밀하게 숨어서 바르게 그물을 놓아두는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어떤 장소에 바르게 두는 것이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 오셔서 섬김의 삶을 사시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빛나는 관을 쓰기에 홀로 합당하신 영원한 왕이시다. 지위가 높은 이들이 권세를 자랑하나 온전한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걸렸다. 그것은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빌라도의 확신과 그의 용기 없음을 보여준다. 주님은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되셨다. 하지만 말씀대로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확증을 얻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