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패배를 선택하다(적중한 다윗의 예측)

변두리1 2014. 7. 1. 10:02

패배를 선택하다(적중한 다윗의 예측)

 

  반란군의 진영에는 두 명의 모사가 있었다. 둘 다 뛰어난 지략가인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제 돌이켜보면 압살롬이 작전을 선택한 그 순간이 승부를 결정지은 순간이었고 탁월한 아히도벨의 전략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고 인간적으로는 후새의 언변과 압살롬의 경험부족이 결합된 결과였다. 둘 다 나의 모사였는데 아히도벨은 그의 고향 길로에서 압살롬의 청함을 받고 그의 모사가 되었는데 압살롬의 성격으로 볼 때 어떤 명분을 내세워 불러냈는지 모르니 그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후새는 나의 권유로 반란군에게 혼란을 주고 아히도벨의 계략을 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에게 합류했었다.

 

  반란군은 신속하게 예루살렘으로 진격했고 우리는 왕궁을 비우고 피란길에 올랐다. 우리가 왕궁을 떠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평화의 도시에서 전쟁을 피하여 우리가 머무는 산이나 골짜기에서 싸우므로 인적 물적 손실을 줄이고 반란군의 예봉(銳鋒)을 피하며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왕궁 근처 예루살렘에서 반란군과 싸웠다 해도 우리가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왕궁을 비워주고 치열한 싸움을 피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반란군에서 아히도벨이 선택한 전략은 이른 바 “배수진” 곧 “벼랑 끝 전술”이었다. 그는 내가 왕궁을 지키도록 남기고 온 후궁들과 압살롬에게 동침하게 한 것은 압살롬과 자신이 더 이상 나 다윗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이었다. 자신들 내부에게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어 온 힘을 다해 싸우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전략이었고 특히 단기전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야간 공격을 제안한 것도 기본에 충실한 탄탄한 작전이었다. 그 작전이 채택되었다면 양편에 커다란 피해가, 특히 우리 편에 막대한 피해와 사기저하를 가져 왔을 것이다. 그가 만 이천 명의 용사들을 택하여 야간 기습을 감행했다면 우리 진영의 민간인들은 우왕좌왕(右往左往)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리되면 군인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어 자연히 우리의 존재가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의 작전은 좇기는 이들에게 재정비와 대비의 시간을 주지 않는 성공할 확률이 높은 훌륭한 것이었다. 

  그에 비하여 후새의 전략은 그럴듯하지만 실체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누가 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전반부 분석은 타당하나 싸움의 전략은 없었다. 단기간에 모든 백성을 모을 수도 없고 수장(首長)이 참전하여 전사할 위험이 있고 만날 만한 곳을 찾는 것은 아히도벨의 전략과 차이가 없고 성을 밧줄로 묶고 끈다든지 돌 하나도 보이지 않게 하는 유(類)의 전술은 현장경험이 조금만 있어도 파악할 수 있는 허점들이다. 그들은 진술의 선후관계와 후새의 열의와 말솜씨에 홀린 것이다. 사실은 후새 자신도 당황스럽고 힘에 겨웠을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압살롬의 경험부족이었다. 최종 결심은 항상 최고 지도자의 몫이다. 그가 후새의 안(案)을 선택했을 때 아히도벨은 반란군과 자신의 운명(運命)을 직감했다. 압살롬이 반드시 패할 것을 알아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압살롬은 스스로 패배를 선택한 셈이다. 그는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한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제사장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분의 뜻을 알지도 못했다. 단지 자신과 함께 모여진 이들의 추진력의 상실이 두려워 무리의 힘에 의해 확신 없이 움직였고 분명한 판단이 아닌 여론에 따라 선택함으로 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폭포의 물거품처럼 거세게 일어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태어났을 때의 환희와 그를 보고 있었던 순간순간의 자랑스러움에 내가 취해서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음을 자인(自認)한다. 압살롬이 그렇게 된 것은 반 이상이 내 책임이다. 분명한 상벌이 필요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한 면도 적지 않다.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특별히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분이 우리에게 쓰라린 체험을 하게 하시고 우리를 더 단단히 만드신다. 나의 큰 죄악에 대하여 용서하시며 그분은 그 죄악이 초래할 미래의 고통스런 일들을 알려주셨다. 그것까지도 그분이 제거해 주시길 바라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벌써 몇 가지는 현실화되었다. 그분이 그러한 고통이 우리 가문에 영원토록 있겠다고 했으니 모든 사건으로부터 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누가 내 뒤를 이어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인지 왕인 나도 모른다. 나와 신하들이 예상한 이들은 이런저런 사건으로 세상을 등졌다. 오직 하나님만 아실뿐이다. 그것이 누구든 내 아픈 실수가 좋은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경험으로는 섰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위험한 무너짐의 순간이다. 이번 사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 앞에 민망하고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