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香 道 結 末 (향 도 결 말)
12장 香 道 結 末 (향 도 결 말)
“지극히 비싼 향(香)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약 500g 정도의 아주 비싼 향유를 가져다 예수께 붓고 있다. 향유를 붓는 마리아는 죽었다가 다시 산 나사로의 여동생 자매 중 동생이다. 그 가정에 잊을 수 없는 일을 선물했으니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을 게다. 뒤 부분에 유다가 한 말을 보면 삼백 데나리온 쯤 값이 나가나 보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라니 아무 기술 없는 이가 오만 원쯤 받는다고 하면 천오백 만원이다. 마리아 가정에서 그 돈을 모으려면 얼마나 고생해 긴 세월이 걸렸을까. 그것을 하루 밤에 허비한다고 생각하니 유다가 울컥했나보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도 당황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유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게다. ‘차라리 그 큰 돈을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했으면…’. 건전하고 바른 견해였다. 예수님도 동의하시리라 여겼다. 뜻밖이었다. 예수님은 “그냥 두어라, 내게 좋은 일을 하는 거다. 내 장례를 위해 하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그들은 우리가 저분을 잘못 보아왔나 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그때까지는 부족했다.
香(향기 향)은 禾(벼 화) + 日(해 일)이다. 禾는 자라서 익은 곡식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단다. 신앙적 풀이라면 나무보다 귀해 나무[木]에 빛을 비춰[丿](비칠 별:‘삐칠 별’이라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비친 것이라 봄) 준 것이 禾(벼 화)라 생각하고 木은 十(십자가) + 人(사람 인)으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싶다. 漢字에서 가장 자주 쓰는 부수 중 하나고 이 땅에 내려준 가장 귀한 선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벼와 그 알곡인 쌀은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양식이 아닐 수 없다. 日은 해를 그린 것이다. 해는 어디서 언제 보아도 눈부신 빛으로 꽉 차있어 동그라미를 그려야 하지만 대신하는 口를 그리고 비어있지 않음을 점으로 표현했다가 점차 선으로 변형되었을 게다. 의미도 낮만을 의미하다 하루로 이어지고 나아가 한 해를 나타내는 것으로 확장되었으리라. 그러니 해를 바탕으로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일 때 나무 보다 귀함을 드러내는 냄새 곧 익어가는 벼의 향기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혹은 하나님에 근거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 비취는 빛, 인류를 향한 구원의 향기라 하겠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道] 오신다는 것을 듣고”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통을 비롯해 거의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의 중심이었다. 가장 영향력이 컸고 당연히 대표성이 있었다. 이스라엘 전체와 세계를 대상으로 하려면 예루살렘이어야 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首都, 예루살렘으로 가신다. 세상에 오신 使命을 이루러 가시는 묵직한 걸음이지만 제자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나귀를 타신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 곧 나귀 새끼니라”하지만 나귀를 끌어온 재자들도, 그 광경을 본 군중들도 참 의미를 모르고 있다. 요한은 예수님 부활 혹은 승천 후에야 그 의미를 알았다고 고백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 결전의 장으로 비장한 심정으로 외로움과 심정 고통을 느끼며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칠 수 있음을 생각하시며 수도 예루살렘으로 뚜벅뚜벅 다가가신다.
道(길, 말할 도)는 首(머리 수) + 辶(쉬엄쉬엄 갈 착)이다. 首는 머리칼과 눈으로 얼굴이 있는 머리를 의미했다. 首혹은 頁의 공통부분 곧 위, 아래의 여덟 팔(八) 모양이 없는 것도 ‘머리 수’다. 머리칼 없는 머리선 아래 코를 나타내는 自가 있다 할 수도 있고 눈[目]과 이어졌다 할 수도 있겠다. 위와 아래에 많은 게 나누어졌음을 더한 것은 머리칼이나 수염을 강조한 듯하다. 首는 머리에서 시작하여 우두머리 첫째 시작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辶은 辵이 글자 구성에 있어 ‘발’로 쓰일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辵은 彡 + 疋의 모습인데, 彡은 사거리의 모습을 그린 行에서 좌측을 취한 것이고 疋(발 소)는 오른쪽이 약간 굽은 一은 장딴지를 그 아래 것은 발을 그렸다고 한다. 사거리와 발 혹은 서는 모습[止: 그칠 지]을 합쳐 걸어가는 동작 또는 가다 서다 하는 것에서 천천히 걷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주인이요 머리시다. 인류를 위하여 구원사의 정점을 향해 머리에 해당하는 예루살렘[首都]으로 가셔서 길[道]을 내신다. 그 사실이 이제 세상과 역사에 널리 알려졌다[道].
“한 알의 밀이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려 예루살렘에 가셨다. 시기도 중요해서 유월절 어린 양처럼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것임을 보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볼 수 있는 유월절이어야 했다. 유월절이 이 사건의 豫表(예표)였다. 이 때 그리스인 몇 사람이 사적으로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다. 예수님 탄생 때에 동방박사들이 찾아왔듯이 생의 목적인 십자가를 앞두고 지식을 渴求(갈구)하던 그리스인들이 왔고 제자들의 안내로 예수께 오니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
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지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
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
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
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
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한 알의 밀알처럼 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오셨지만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면 아버지께서 그 때를 면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주님은 그 일을 위해 역사의 그 시점에 오셨다. 그 때 뿌린 씨앗이 수십억의 열매로 우리 앞에 나타나 있다.
結(맺을 결)은 糸(가는 실 멱, 사) + 吉(길할 길)이다. 糸는 絲(실 사)를 겹치는 것을 단축해 가는 실 사 또는 멱으로 쓴다. 幺(작을 요)와 小(작을 소)를 이어 썼다고 할 수도 있는데 幺는 실타래의 아래 부분이 없어 幺 糸 絲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을 나타낸다. 小는 실타래의 흐트러진 아래 부분 혹은 작다는 의미의 소(小)일 것이다. 吉은 士 + 口 형태인데 士는 성년 남성의 성기를 그린 것이 세월이 지나며 점잖게 이상적인 성년 남성을 뜻하는 士로 변하고 口는 본래 고환을 나타내던 ㅂ 모습이 쓰기에 편하게 口처럼 되었다. 성인 남성이 되는 것으로 자녀를 가질 능력이 생겼으니 길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여성과의 관계에서 육체적 즐거움도 있지만 노동력이 되는 가족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요 대를 이어가는 일이니 어찌 길하지 않으랴. 대를 잇는다는 의미는 糸에도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남녀가 맺어져야 자녀를 출산할 수 있고 世代(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 주 안에서도 結과 같이 장 이어져야 복음의 대 신앙의 代(대)를 이어갈 수 있다.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末]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사람들을 하나님께 고발할 이는 율법을 전해준 모세라고 했다. 주님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라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사랑의 주, 구원의 주님은 아니다. 마지막 날에는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늘 두 팔 벌리고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으실 것이고 천국 문이 언제나 모든 이들을 향해 열려있지 않으리라. 인류사에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 세상세력이 강해지고 믿음의 사람들은 점점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승패가 확연히 갈린 듯한 그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땅의 역사가 끝이 날 것이다. 인류사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문명발달사를 보아도 알 것 같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속도가 실시간 이상이 되어 가고 교통의 발전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지하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지구의 오염은 모든 면에서 극을 향해 치닫고 있고 생태계는 놀라운 속도로 무너지고 각국의 무기들은 가공함을 넘어서고 있다. 하루하루 위험하고 역동적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계 지도자들의 도덕적 수준도 논할 처지가 아니다. 희망적인 것들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末(끝 말)은 木위에 一이 더해진 것으로 木아래에 一을 그은 本(밑, 근본 본)과 자형(字形)과 의미에서 반대가 된다. 本이 뿌리요 기원이라면 末은 나무 끝의 가는 가지요 마지막이다. 末을 二와 小 또는 忄으로 본다면 두 가지 작은 것, 혹은 두 좋은 마음이라 하겠다. 두 가지 작은 것은 성도의 처지라면 최초의 두 사람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보내면서 가죽옷을 입히기 위해 죽임당한 짐승과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 양 예수님이 생각나고 두 마음은 하나님의 내보내는 마음과 십자가로 화해를 이루고 맞아들이는 마음이 연상된다. 二와 木이 합쳐지며 겹치는 게 줄었다면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떠오른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가 말세(末世)다. 언제 주님이 오시고 세상이 끝나도 이상하지 않다. 오늘 주님이 오실 것처럼, 또 내 생애에 오시지 않을 것처럼 종말의식과 미래에의 계획을 함께 가지고 살아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정상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다.
향기[香] 나는 삶을 사신 머리되신 주님을 따라[道] 살면 열매 맺고[結] 신앙의 대를 잇는 삶이 되고, 마지막[末]에 주님을 맞이하는 영광스런 성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