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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네덜란드

변두리1 2019. 9. 6. 19:03

여기는 네덜란드

 

  우리나라에 비해 국토는 반이 안 되고 인구는 삼분의 일이다. 국민총생산도 우리의 반 조금 넘을 듯하고 일인당 국민소득은 우리의 한 배 반쯤 되는 것 같다. 외국에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알린 하멜 표류기를 쓴 하멜과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들게 한 히딩크의 나라가 네덜란드다. 익숙한 더치페이는 함께 식사를 하고 각자 음식값을 내는 방식인데 더치의 사용이 생경하다. 더치는 네덜란드의 형용사형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를 예전에는 화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행복지수와 관련된 항목에 고루 점수가 높고 매년 다르지 않은 결과라고 한다. 그들에게 학교는 크게 친구들을 만나 노는 곳이란다. 숙제나 과외활동이 거의 없고 성적에 대한 부담도 없단다. 학업평가가 급우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과의 비교이고, 더 중요한 것이 사회화과정으로 학업성적이 나빠 유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이 부족하면 유급이 될 수 있단다.

  자신감과 사회적 성숙도가 높아서인지 주눅 들지 않고 솔직하게 대화한다. 부모들과 지나칠 만큼 금기나 꺼리는 것 없이 대화를 한다. 소득의 반이 넘을 만큼 세금을 많이 내고 사회보장이 그만큼 잘 되어 있다. 기본적인 삶에 큰 문제가 없으니 일터에서 상하급자의 인격적 문제가 있을 수 없다. 하급자를 무시하지 않고 상급자에 주눅 들지 않는다. 아니라고 생각되면 옮길 수 있고 꼭 그 직장이 아니면 큰 일 날 일도 없다. 그러니 실패와 도전에 당당하다. 시행착오의 위험이 크지 않은 게다. 자신이 당당하니 유명인을 부러워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명품에 목매지도 않는다.

  부동산투기가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가 집값을 엄격하게 규제하기도 하고 싼 가격의 주택들을 부족하지 않게 공급하며 주택의 임대는 임차인에게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어 집을 이용한 재산축적은 어렵다고 한다.

  네덜란드에는 반대 혹은 불복할 수 있는 권리비즈마르 마큰제도가 있다고 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데 일단 이런 요구가 접수되면 해당 계획은 무조건 보류되고 최대 6주의 심사기간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으며 심사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단다. 이렇다보니 어떤 일은 정부가 추진을 해도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단다. 이 방식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이고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다보니 스펙에 얽매이지 않는다. 스펙은 기본적으로 경쟁사회에 필요하다. 경쟁이 없다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요소들은 의미가 없다. 자신에게 필요하면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갖게 될 것이고 필요치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평가가 있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네덜란드의 특징은 타인에 대한 관용이다. 세계 최초로 동성애를 인정했고, 마리화나가 합법화 되어있다. 부부가 아닌 파트너 등록제가 도입되었고 낙태가 불법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동성 커플 및 입양이 합법화 되었고, 성매매도 불법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도 허용되었다. 어찌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일이고 무슨 국가가 이런가 싶기도 할 것이다.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크게 성숙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소수에게는 절실한 아픔일 수 있다. 공적으로 허용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탈법과 그늘 속에서 음습하게 죄의식을 가지고 행해진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불법으로 묶어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성애자가 소수일지라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불필요한 관심과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고통스런 삶으로 자신과 주변의 많은 이들이 힘에 겹고 범죄에 이르는 형편이 되기보다는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를 인정하고 자신의 신체와 건강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본인에게 갖게 하는 것이 낙태를 합법화한 것이다. 국민의 성숙도가 높지 않은 곳에서는 이런 일들을 허용하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할 게다. 실제로 한동안의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성숙한 판단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에게 큰 폐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을 무분별하게 행하지 않는다. 실수로 잘못된 일로 겪는 어려움의 해결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네 살이 되면서부터 성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매년 봄, 네 살에서 열두 살 사이의 아이들은 일주일동안 전국적 차원의 성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좀 더 나이가 든 아이들은 성교육에서 다루지 못할 부분이 없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이성친구가 생기면 사용하도록 콘돔 같은 것을 화장실에 챙겨두거나 직접 챙겨주기도 한단다. 이 나라에는 남녀가 모두 피임을 하는 더블 더치가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정과 학교의 일관된 성교육 덕분에 네덜란드의 10대들의 임신율은 타 유럽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고 임신한 10대들 중 삼분의 이는 임신중절을 하는데 그 비용은 전액 보험으로 처리된다고 한다. 성숙한 이들에게 허용되는 구제법은 잘못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잘못되었을 때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삶의 보호망이다.

  개인이나 나라를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 역사와 배경이 있다. 네덜란드는 남에 대한 배려와 성숙함과 자유로움이 있는 매력적인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