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흑 산

변두리1 2019. 8. 27. 17:23

흑 산

, 그 알 수 없음과 신산함 -

 

  18,9세기, 조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날 이후의 삶을 살아볼 수 없다. 자신들이 사는 그 순간이 가장 최근이다. 모든 삶은 위기의 연속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해도 해결과제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 정상적인 삶이라 하든 평탄한 삶이라 하든 삶 자체가 파도처럼 오르내림을 가지고 이어진다. 경험해보지 않은, 위험의 정도를 전혀 모르는 신앙이 우리 삶에 접목될 때, 더구나 그 신앙이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외래신앙일 때, 길 없는 길을 만들며 가야 하는 가시밭길을 본다.

  뭍에서 먼 유배의 섬, 흑산도.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삶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창대는 황사영을 닮았고 뭍의 아리는 박한녀를 생각게 한다. 걱정도 근심도 없을 것 같은 정씨 양반댁, 한국 천주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이다. 그 쟁쟁한 가문에 몸 붙여 살아가는 하인들, 어느 가문에 속하냐에 따라 그들끼리의 자부심이 달랐으리라. 버젓한 이름도 갖지 못하고 한 생을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민초들, 실은 오늘의 우리가 생각하듯 그들이 비참하게 느끼지는 않았을 게다.

  아무나 낄 수 없었던 북경으로의 사행길, 양반으로 책을 탐내고 책으로 접한 서학, 마치 20세기 전반의 사회주의처럼 신선함과 은밀함을 주었을 게다. 신분의 벽을 넘어 전파되고 새로운 앎에 눈뜨고 천주의 자녀 된 기쁨도 컸을 게다. 접해보지 못했던 것엔 경계를 하고 서로 다름에 부딪치고 상처입고 맞추어 가는 게다. 그 시대가 흉흉하고 살기 어려웠으니 새로운 세상을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피바람이 불기 전, 그 앞날을 알기는 어려웠다. 어린 나이 열여섯에 과거에 급제해 임금을 만나 격려를 받은 황사영은 정씨 가문에 사위가 된다. 정명련, 황사영의 아내다. 약현은 황사영의 소년등과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그토록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천주학이 반대파의 공격 목표가 되고 약종은 생명을 잃고 약전과 약용은 유배를 간다. 언제 풀리리라 기약이 없는 유배생활, 고도 벽지에서의 한적한 삶은 자신을 돌아볼 호기요 학문과 문학이 깊어질, 고독한 시기였다.

  차라리 붙잡히지 않아 뭍에 사는 이들이 더 불안했다. 왕궁의 서슬은 점점 시퍼래가고 숨을 곳이 좁아지고, 누가 자신을 고발할지 알 수 없어 같은 신자라 해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대비의 윤음은 천주를 버리라 하고 천주의 가르침은 날마다 절실해져 갔다. 남정네뿐 아니라 여인들도 위험하기는 차이가 없었다. 모르긴 해도 가장 안전한 곳은 약전 약용이 있는 유배지였는데 오히려 그들은 믿음이 그리 절실하지 않았던 듯하다.

  김개동 육손이 마노리는 인간적인 정리를 매개로 해서 천주학에 녹아든다. 마노리는 온전한 믿음이 들 사이도 없이 은화 사십과 성모도(聖母圖)에 얽혀 천주교도들과 하나로 묶여 삶을 마감한다. 황사영은 어느 날 가짜 황사영 사건으로 부사와 관찰사가 죽어나감을 보고는 자신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함을 안다. 조정에서는 배교한 이들과 밀정을 통해 천주학 교인들과 황사영일행을 색출하기에 혈안이 된다. 박차돌은 천주교인들과 황사영을 잡기위해 교인으로 행세하며 정보를 캔다.

  마노리가 잡히고 조선의 천주교를 위해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은 숨어 있던 곳 제천배론에서 관군에 의해 체포되고 수유리에 숨었던 강사녀와 길갈녀 그리고 아리도 모두 붙들린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조정과 정순대비는 설득을 포기하고 누에머리(잠두)처럼 생긴 곳에서 그들을 처형하니 머리가 잘린 산이라 해서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리는 곳이란다. 들풀처럼 살았던 그들은 꽃처럼 지고 그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산하는 여전히 춘하추동을 거듭하고 있다.

  같은 형제요 집안이라 해도 약종은 죽고 약전과 약용은 죽은 이 덕으로 살면서 그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뜻을 좇아 살았다. 황사영과 일행들은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하고 아내 정명련은 관비가 되어 제주도로 끌려가고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에 남겨졌다고 한다.

  황사영과 그 일행의 순교한지 220여년이 되어간다. 한 신앙인으로서 그 당시의 그들보다 하나님과 그 아들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지만 위기 속에서 그들처럼 살아가고 죽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답하는 게 만만치 않다. 길 없던 곳에 길을 낸 그들을 힘입어 넓고 평평하게 닦인 길을 편하게 가기 때문에 오히려 믿음은 더 약한 건 아닌지, 목숨을 다해 순간순간 주를 의지하며 살다 생명까지 바친 그들을 묵상하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각 사람은 그들에게 맡겨진 삶을 살았다. 창대와 아리와 박한녀가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산 게 아니다. 내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게다.

  오늘 현실은 신앙을 갖고 산다고 박해나 핍박을 받지 않는다. 간혹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당시와 비할 수 없다. 어쩌면 자유가 주어지고 핍박은 거두어진 이 자본주의 사회가 신앙의 삶을 살기에 더 힘겨운지 모른다. 외부로부터 어려움이 오고 위태로운 환경이라면 나태에서 오는 죄는 짓지 않고 긴장 속에 깨어서 살아갈 게다. 생활이 편할수록 비몽사몽간에 비실비실 그날그날을 허비하는 건 아닌지 싶다. 이 말은 곧 내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