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영화 말모이를 보며

변두리1 2019. 8. 21. 21:07

영화 말모이를 보며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 큰 사전을 펴낸 사건을 영화한 거란다. 영화관에서 여럿이 한 영화를 보다가 걸린 광고를 보고 빚을 진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여러 달이 흘러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못하게 하는 세력이 있고 일이 어려우면 동기부여가 더 잘 될까. 멍석 깔면 하던 짓도 안 한다는 속담도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절, 말로만 듣던 서슬 푸르던 때, 모든 게 열악한 여건에서 방대한 일을 해냈다. 영화를 보면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일까 궁금하다. 대의명분이 분명하고 희생적인 이들이 있을 때, 일이 이루어진다.

   가난한 가정에 똘똘한 아이가 있다. 경성제일중학을 다닌다. 아버지는 극장에서 표를 팔며 여러 가지 잔심부름을 한다. 가정을 꾸리며 수업료도 내기 어려운 처지에 실직을 당한다. 아들은 학교에서 밀려날 위기에 몰리고 아버지 판수는 일자리를 고를 형편이 아니다. 까막눈인 그가 간 곳이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곳이었다. 띄엄띄엄 한글을 배우며 억지춘향으로 일을 배워나간다. 취학 전 딸아이에게 아들은 일본어를 배우라하고 아버지에게도 한글보다는 일본어를 권한다.

   몰래 우리말 사전을 만들려는 이들을 감시하고 민족의 혼을 말살하려는 흉계에 맞서 사전 간행을 숙원사업으로 목숨 바쳐 이루려 한다. 젊은 청년의 아내는 형무소에서 삶을 마치고 아내의 석방을 바라고 밀고한 직원과 그로인한 고문과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 서로에 대한 오해와 아픔이 흥건하고 쓰라리다. 조여드는 수사망과 촉박한 시간, 짙은 어둠 속에도 멈출 수 없게 하는 곳곳에 놓인 감동의 사연들, 각 지역의 방언을 수집하기 어려운 데, 기대하던 이들은 협조에 몸을 사린다. 주인공 판수는 형무소에서 만났던 이들을 지역별로 안배해 데려와 벽처럼 막힌 담을 뚫는다.

   일간지와 월간지가 폐간되고 어려움이 더해지는 때에 그들은 전국으로 월간지를 보내며 사투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한다. 부푼 기대를 가져보지만 돌아온 건 없다. 실의에 잠겨 있을 때에, 우체국에서 찾아온 직원은 너무 많고 일제가 가져오기를 명했지만 극히 일부만을 보냈으니 찾아가라고 알려준다. 또 한 고개를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마치 가뭄에 마르던 채소에 단비가 흡족히 쏟아진 형상으로 신이 났다.

   많은 말들 가운데 표준어를 가리려면 공청회가 필요했다. 합법적으로 열기도 쉽지 않고 사전 작업 자체를 일제가 허용하려 하지 않으니 감시가 거셀 게고 그 상태에서는 마음 놓고 작업을 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총독부의 눈을 속이고 다른 곳에서 모여 며칠간의 공청회를 연다. 그게 무사히 넘어가면 영화가 아니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벌건 눈으로 감시하니 벗어나기 어렵다. 원고를 감추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는다. 대표로부터 원고를 넘겨받은 판수는 원고를 지키고 자신은 죽음을 맞는다.

   원고를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역 창고에서 발견한다. 해방을 맞고 어렵게 완성된 사전이 판수 앞으로 전달되지만 이미 그는 죽고 그 아들은 국어교사가 되어 있다. 힘겨운 시절에도 제 살기 급급할 것 같지만 민족을 생각하는 묻혀있는 애국자들이 그들의 역할을 묵묵히 해낸 게다. 민족과 국가, 현대로 옮겨오며 더욱이 국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국가내의 내란이 적지 않았지만 많은 전쟁은 국가 사이에 벌어지고 여러 번은 다른 나라들이 참여해서 규모를 키워왔다. 한 개인 구성원으로 바라보면 어느 나라에 속하고 어느 지도자가 나라를 통치하건 엄청나게 다를 게 무엇인가. 마치 한 학교라고 생각을 좁히면 학년도 아니고 반과 반끼리 이득을 앞세워 뺏고 뺏기면서 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셈이다. 그것도 힘이 없는 나라들은 번번이 당하기만 한다. 나쁜 짓을 독판 하던 나라들이 평화를 이야기하고 자기들은 이미 모든 무기들을 손에 넣고 다른 국가들은 금지한다.

   우리 주변에 강대국들이 줄을 지어있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다 해도 영향력이 커서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아시아에서 평화를 깬 이들이 누군가. 다름 아닌 그들이다. 그들 중에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들이 일본이다. 하지만 현 체제에서 뺄 수 없고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그들이니 얄궂다. 그들과는 군사 분야 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날카롭게 부딪치고 있다. 세계가 한 마을처럼 살 수는 없을까 꿈같은 상상을 해본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대 자본주의 악폐를 줄이는 답도 같다. 그렇지만 그 실천이 너무 어렵다. 욕심을 버리는 거다. 가치관의 일대 변혁이 일어나 소유하지 않는 게 낫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게 행복한 사회가 오면 말려도 억제하기 어려울 게다. 이런 모습을 가장 가깝게 보여주는 게 가정이다. 하지만 현실의 가정은 바깥과는 높은 담을 쌓은 개인의 확장처럼 여겨져 조금 더 큰 이기적 단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사한 가르침이 노자로 대표되는 도교라 할 수 있고 물의 교훈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지극히 좋은 것은 물과 같다(상선약수 : 上善若水).

   가장 낮은 곳에 처하며 막히면 차기를 기다렸다 넘어가며 담기는 대로 모습을 달리하며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이 늘 어수룩한 모습만 보이지는 않는다. 큰물이 날 때를 상상해 보라. 모든 걸 뒤엎을 힘을 물은 가지고 있다. 물은 민초와 같고 다수의 약한 이들과 같다. 섬김과 무욕(無慾)이 힘이다. 바닥이 가장 안전하고 견고하다. 말이 힘이고 글이 힘이다. 근본적인 걸 지키고 있는 이들이 가장 무섭다. 한 때는 중국에 그리고 일본에 또 미국에 말과 글의 공격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지만 우리는 늘 지켜 왔다. 우리의 힘이요 지구촌 마을에 우리가 공헌할 바탕이다. 오늘 내 말과 글을 지켜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