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세계여행
바람난 세계여행
이혼할 뻔한 부부가 750여 일, 세계의 곳곳을 여행하며 서로의 운명을 확인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세 권의 책이다. 얼마나 알뜰하게 여행을 했는지 그 긴 세월 동안 들어간 비용이 5,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여행기와는 조금 다른 듯하다. 개인적인 사연도 있고, 발행한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으니 정보의 기능은 이제 사라진 듯하다. 지금으로도 쉽지 않은 시도일 테니 당시로서는 너무도 용기 있는 도전이요 화제였을 게다. 두 주인공이 열린 마음의 소유자여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용기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갈라설 위기에 처한 이들이 긴 세월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남편 혼자 간 인도여행을 계기로 어느 정도 화해의 결심을 한 것 같다. 여행이 낭만적인 것만 아니라 현실적이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은 동지요 착하고 서로 도우려는 마음이 충만한 이들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 어딘들 크게 다를까. 여행자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제한 되어있으니 피해를 당하기 쉽다. 사람들 많이 모이고 물질적 사고방식이 만연할수록 좀도둑은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들도 어디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들이니 진정한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게다.
장기간의 여행에는 정해진 것이 없고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니 서로 의견 충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아무리 부부라 해도, 오히려 부부여서 더 많은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서로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주인공들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자주 다툰다. 때로는 자존심싸움으로 번지고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돈도 없이 무작정 혼자 가버리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말투로 다툼이 생겨 감정적으로 번져 시간을 끌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조정해 간다. 문제를 피해가면 세월이 흘러도 관계가 그다지 진전되지 않는다. 부딪치며 서로 모난 부분이 깎이고 정이 들어가는 건 아닐까. 의례적인 관계에 머문다면 인간적 친함과 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여행을 통하여 도시나 유적 이름난 것들만을 보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잊지 못할 좋은 이들도 많이 만난다. 서로 어떻게 대하는가가 관계의 지속을 결정할 게다. 영국청년 팀과 국제 결혼한 금자씨, 이스탄불의 한식당 주인부부가, 읽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생각난다. 진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잘해준다 해도 상대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른바 갑을 관계로 느끼면 상대의 호의를 진심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더없이 착한 한식당 부부에 대해 처음에 가졌던 마음이나 팀의 집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일들이 그렇다.
여행은 내 생각이 늘 옳은 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역사와 문화 관습 종교 여타 많은 것들을 토대로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대표적인 게 식생활이다. 서로의 차이로 먹을 수 있는 것과 혐오하는 것에 뚜렷한 차이가 생긴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자신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상대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선진국민이라는 이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삶 전반에 있어 상대적 우월의식을 속히 버려야 한다. 특히 동서양에 있어서는 동양이 인문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면 서양은 실용중심의 과학과 기술에 치중한 차이고 그로인한 힘을 영토와 부의 확장이라는, 자국이득의 최대화에 사용했다. 동양적 사고로는 군자답지 못한 지극히 소인의 행동이다. 관점을 바꾸면 선진과 후진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을 게다.
우리 사회의 부족한 점이 드러내지 못함에 있다는 논리에 크게 공감한다. 선동과 논리에 약하다고도 할 수 있다. 정작 청소년들은 모든 정보를 습득하고 성인보다 더 깨어있는데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으로 많은 분야가 제한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사회전체가 청소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알려진 에로비디오에 대한 평가가 통쾌하고 신랄하다. 은밀한 사생활이 무엇이 잘못인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한들 그들이 왜 비난받아야 하나. 흥미 있어 보았다면 본 것이지, 무엇을 비난한다는 것인지, 본인들은 또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사회적으로 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다. 노인들이 열린 공간에서 춤추는 게, 일부러 권할 일은 아니라 해도 잘못된 건 아니라는 게다. 온당치 않은 사회적인 압박과 그로인한 자격지심은 오히려 그들을 음지로 내몰고 진짜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드러내 놓으면 별문제가 아닌 것도 감추면 음습하게 곪을 수 있다. 또 한 때 치열하게 논쟁을 펼쳤던 것들도 지나고 보면 그렇게 심각할 일이 아닐 수 있다. 드러내면 세상이 곧 뒤집힐 것처럼 흥분하는 문제들이 드러내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시들해지고, 사회의 가려진 부분이 줄어들어 더 긍정적인 효과로 드러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권한다. 주인공들의 경우는 충분히 행복한 결말을 가져왔다. 축하할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얼마나 얻을 게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여하튼 커다란 용기와 여러 여건이 받쳐주어야 할 수 있는 부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