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대리의 트렁크
조 대리의 트렁크
그래, 갈 데까지 가 보자 -
책을 읽는다. 생산적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현재를 낭비하는 건 아니구나. 정말 그럴까. 어디선가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하지 않고 배우면 위태하다는 뜻의 얘기를 들은 것 같다. 현대인들이 독서를 잘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읽는 이들은 많이 또 무섭게 읽기도 할 게다. 백가흠 작가의 《조 대리의 트렁크》를 읽었다. 글을 읽는다는 것과 쓴다는 것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조선의 영조와 정조 때에 실학이 대두된다. 현실에 유용한 주장과 책들이 발간되었을 게다. 그 이전에도 농사와 의학서 같은 서적들이 있어 왔다. 그러한 책들을 보는 성리학자들의 시선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저런 생각 없고 수준 낮은 것들을 책이라 할 수 있을까, 책이라면 우주의 원리와 전대의 전적과 성인들의 말씀이 근본을 이루어야지, 그런 책을 쓰고 읽는 데 들어갈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 오늘날은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설, 아니 문학의 기능이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생각할 문제들을 던져 줄 것이다.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들이 문제작이다. 그러려면 현실을 보여주어야 하고 현실을 드러내게 된다. 소설이 개연성 있는 이야기이라고 하는 이유다. 실생활에서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꿈꿔보는 일탈의 공간으로 대리만족을 준다. 소설에서 그토록 많은 사건과 일들이 일어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즐거움의 반대편에 있는 고통도 같은 의미일 수 있겠다. 또한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간과 인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문학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한다.
마치 시류에 민감한 언론과 방송처럼 독자들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해 그에 영합하려는 유혹을 받지는 않는가 생각한다. 인간뿐 아니라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 주어진 커다란 명제가‘생존과 번식’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 번식으로 이르는 길이 사랑이다. 살아있는 존재에게서 사랑을 제외하면 또 무엇이 남을까. 시대와 분야를 넘어 영원한 인류의 주제가 사랑임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 사랑 중에 가장 강하게 끌리는 게 이성간의 사랑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해도 과도한 추구는 집착과 영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것 아닌가.‘읽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수요가 적으면 그런 작품을 누가 쓰겠는가,’그런 논란은 닭과 달걀의 선후관계를 논하는 류의 일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상이 그런 작품에 수여되면 독자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한다. 그것이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인가. 성경 창세기에도 여기저기 나타나고 로마시대의 삶의 모습에도 허다하고 인류의 자산인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그런 장면들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에게 고전이 된 작품에도 적지 않은 것들이 그러하지 않은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읽고 있는 것들 중에 다른 이들이 보자고 하면 ‘이런 걸 읽고 있었네?’하는 반응을 보일 게 적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참 소재를 찾느라고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나하나가 흔치 않고 웬만한 집중력이 아니면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것들이다. 곳곳에 버무려진 성과 현실에 대한 묘사도 만만치 않다. 그 가운데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듯도 하다. ‘매일 기다려’, ‘웰컴, 마미’에서 자각의 예리함과 끈기를 볼 수 있다.‘사랑의 후방낙법’에서도 늘 뒷전으로 밀리던 민숙은 중량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고 국가대표가 되지만 관심의 중심에 있었던 많은 걸 가진 유진이 메달을 결정하고 대표후보군에 오르는 대결에서 패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마지막 수록작인 ‘굿바이 투 로맨스’는 참 어렵다. 인간관계에 어찌 정답이 있을까를 되새겨 준다. 우리 사회가 투명해지고 억울한 이가 없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허점이 보이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숱하게 드러날 게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하는 염려를 자주 하게 된다. 그 생각을 따라 가다보면 자본주의 시장원리와 만나는 일이 많다. 어떤 제도가 완벽할 수 있겠는가만 그 폐해가 너무도 크다. 마치 자본이 주가 되다보니 자본주들이 완전히 중심이 되고 주역이요 주인공으로 이 세상이 돌아가는 듯하다. 자본이 과녁삼고 있는 곳이 개인의 욕망이요, 개인에게서 꼭 한 발 나아간 가족과 가정의 경제적 욕망이다. 그리고 그 집착과 추구는 한계가 없고 열 배의 성취가 있어도 통장에 동그라미 하나 추가되는 것으로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된다.
모든 것이 상품이고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는 곳이 자본주의 시장이다.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회, 어디서도 눈과 귀를 잡아끄는 광고를 피하기 어려운 것이 이 땅의 모습이다. 빠르고 영악하게 자신과 가족을 생각하며 큰 그림은‘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기고 사는 건 아닌지, 이제는 달려가기를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하는 시간과 천천히 걷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문학의 역할 중에 하나가 그것이지 싶다. 그의 작품은 여러 가지를 떠나서 재미있고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