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꾀를 모르는 너에게
잔꾀를 모르는 너에게
백오십 일쯤 된 하율이에게 -
네 백일에 감상을 적으려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 쓰지 못하고 백오십일 가량이 되어버렸네. 그날 긴 시간동안 의젓하게 주인공 행세를 잘 하는 네가 기특하고 신통하더라고. 사람구경 많이 하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겨 보고 반지도 받고 너는 몰랐겠지만 평생에 의미 있는 날인 거야. 그날 너는 크게 울지 않고 그 분위기에 가끔 웃음을 날려 순한 아이로 인정을 받았지.
이제는 눈동자가 분명하고 향하는 곳이 확실해 큰 아이처럼 느껴져. 자기 주장이 점차로 분명해지고 있다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큰 소리로 골을 부리는 것 같다고도 하고. 지난번에는 네가 엎치려고 하는 걸 처음으로 보았어. 엎치는 걸 시작으로 기고 앉고 일어서고 걷는 긴 과정이 시작되는 거야. 이유식을 할 거라니 얼마안가 이도 생겨날 거고. 어느 날 부턴가 말도 조금씩 배우게 되겠지.
수수 만 년에 걸쳐 뭇사람들이 하나같이 밟아가던 길을 너도 따라가는 거야. 너덧 살만 되어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않지만 결코 건너뛸 수 없는 과정이야. 너의 하나하나 이룸이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기쁨이고 이야기 거리인지를 아직은 모를 거야. 너에게는 영역을 넓혀가는 흥미로운 과정이고 어미에게는 점점 너를 돌보기가 힘겨워지는 이유이기도 하지. 엄마들은 가끔 배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했고 기고 걷기 시작하면 뒤따라 다니기 어렵다고 이야기해.
할아비는 자전거를 못타. 사람들은 자전거를 배울 때, 자주 넘어 지나봐. 넘어지는 게 두려워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도 없고, 배우고 난 후에는 늘 넘어지는 것도 아니야. 아마 넘어지지 않고는 자전거를 배우지 못할 걸, 안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잘하게 되는 거니까. 어려서 말을 배우는 건, 그렇게 좌절을 경험하지 않을 거야. 너도 피하기 어려운 외국어를 배울 때는 숱한 착오를 반복하게 돼. 모국어가 아닌 말과 글을 익히려면 외워야 할 것이 많아. 처음부터 쉽게 익혀지면 외울 필요가 없지. 안 되니까 외우는 거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한 반복일지도 몰라. 습관이 다름 아닌 되풀이로 이루어지는 거잖아. 밤이 깊으면 잠이 들고 아침이 밝으면 일어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양치와 세수를 하고 아침을 챙기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다 반복을 거친 습관이야. 요즘 네가 엎치고 기는 걸 연습하는 게 이런 사소하지만 대단한 일들을 위해 기본을 익히는 일들이야.
아빠가 점잖고 엄마도 상황파악을 잘 하니 어련히 잘 알아 대처할까 싶지만 이 세상은 경쟁이 만만치 않은 곳이야. 몇 해 지나지 않아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네게도 벗어나기 힘든 굴레가 될지 몰라.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이때가 생애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시기기도 할 걸. 서로 다른 처지에서 우열을 가리는 세상을 사람들은 자유사회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살아내기가 힘겨워. 그렇다고 그 맞은편 세상은 편한가, 그것도 아니야. 그 세상을 평등사회라 하는데 어쩌면 최악일 수도 있어.
얼마 전에 보니 네 장난감이 많이 늘어 방에 수북하더라고. 이 땅에 사람들은 평생 동안 돈이라는 걸 벌어 자신의 재산을 모아. 쉬울 것 같지만 아니더라고. 이게 많아도 문제지만 너무 적으면 살아가기 힘들어. 성경에 너무 부하거나 가난하게 말아달라고 했는데 그게 무척 어려워. 부자들은 더 가지려하고 가난한 이들은 아예 없기도 해. 아마 모두 비슷하게 나누면 그리 부족하지 않을 텐데…, 많이 가진 이들은 나누기 보다 더 갖고 싶어 해.
너를 생각하지 않고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네. 살아가며 천천히 조금씩 알게 될 거야. 내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 말해줄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 중에 가장 중요한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거야. 이 세상은 똑똑한 이들이 엄청 많고, 그들 얘기가 옳은 것도 많아. 최근 한 백여 년 동안 사람들이 생각과 지식이 굉장히 많아졌어. 웬만한 지식을 다 찾아낸 것 같아. 남들이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는 싫고, 남들 눈과 귀를 끌어당길 말들을 찾다보니 전과 다른 이상하고 자극적인 말들을 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제쳐놓고 살아가려 해. 자신을 무신론자라 하면서 한편으로 자랑스러워 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하면 된다지만 해도 안 되는 것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건 겸손해 지는 일이야. 네 삶의 바탕이요 근거로 전능자 그 분을 모시는 일이거든.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 분이 내편이고 내게 가장 좋게 그 일들을 이루어 주실 걸 인정하는 거야. 그 분이 내 삶에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바닥이 되어 주시는 거야. 바람 부는 캄캄한 바다위에서 나침반을 갖고 있는 셈이지.
이 세상을 이제 백오십 여일 산, 그리고 집안에서 아버지와 엄마하고만 지낸 너에게 너무 어려운 말들을 한 것 같네. 할아비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거야. 엎치고 기는 걸 더 열심히 연습해. 잇몸이 간질간질하지. 곧 앞니가 나려는 거야. 하율아, 건강하게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