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재난의 현장에 함께 하는 이들-
세월호 사건은 너무도 서글픈 일이었다. 우리의 외화내빈(外華內貧)한 자화상의 민낯을 보았고 그 많은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안전에 둔감하고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한편 좋은 사람들도 한 없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알려진 것 외에도 많은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 기록된 이들도 그러한 이들이다. 상처 입은 이들은 치유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한 걸음씩 성숙해 가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모습과 개혁을 위한 맹성이 요청된다.
몇 가지를 들어보면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이는 강력한 연대의식(連帶意識)과 그것을 연결고리로 하여 공(公)적 영역까지 쉽게 파고드는 우리의 사적문화(私的文化)를 바꿔야 한다. 공무원과 그들에 대한 의식의 혁명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하여 부단한 훈련을 통하여 약점과 단점들을 보완해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우리의 사고(思考)가 경직성을 벗어나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세월호 사고는 물리적 법칙에 의해 일어났다. 화물을 과적(過積)하고 배가 복원력(復原力)을 잃으면 배는 엎어지고 가라앉는다. 그것은 실무자가 잘못한 것이지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누구인가와 전혀 관계가 없다. 사고의 수습도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과 총리가 그곳에 있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전문가 아닌 이들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할수록 일이 복잡해지고 시행착오(試行錯誤)가 늘어날 수 있다. 그 사건에만 모든 눈과 귀가 집중되어 대한민국 전체가 침몰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자신의 방법대로 슬픔을 표현하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유연한 사회다.
일시적으로 흥분하고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철저히 바꾸어야 한다. 희생된 그 많은 청소년들을 생각해서라도 근본적인 폐단들을 확실히 고쳐야 한다.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서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불필요하고 힘겨운 요소들을 제거하고 의식을 합리적으로 전환하여 위기에 처해도 유연함을 잃지 말라는 것이 세월호사고의 경고(警告)이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유사한 사고가 재발(再發)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는 것은 사고에 대해 단기적으로 흥분하다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그와 같은 이들을 보았다. 사회를 보는 따듯한 눈과 우리가 공동체(共同體)라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따듯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천사 같은 이들이 많은 이들이 함께 아파하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 온 국민이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곳으로 마음이 향하고 아픔을 나누었지만 현장에 함께 있고 그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일들을 뒤로 돌리고 아픔을 위로하고 수습하는 일이 가장 먼저임을 알아 달려갔던 그들이었다. 저자의 헌신을 통해 아픔을 당한 이들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보는 것도 놀라움이다.
때로는 우리 사회를 보는 그의 시각이 나와 다르다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각이야 다를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모두가 하나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속적인 집단적 세뇌를 거치는 사회거나 격변의 상황을 맞으면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회는 하나의 현상에 여러 가지 해석과 반응이 있고 대처 방식도 다른 것이 특징일 게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의 일로 알아 나서는 이들, 그것이 아파하는 우리 이웃들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고 등을 다독여 우리 사회를 따듯하게 하는 일일 때 그들을 천사라 불러 마땅하리라. 여러 번 언론은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아픔을 온 몸으로 겪는 이들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방향으로 몰아갔던 일들을 여러 차례 보아서인지 노동운동과 파업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선입견을 갖게 된다.
그들의 편에 서서 돕는 이들에게도 은연중에 같은 부류로 인식한다. 스스로의 경험과 인식의 틀이 협소함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현장을 함께 하지 않고 일방적인 언론과 자기 확신으로 형성된 이들이 많을수록 대립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가 있다.
저자와 같은 사고와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펼치는 활동과 시도들이 점차 늘어나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이웃에, 혹은 옆에 내 편인 나를 도와 줄 능력을 지닌 천사가 있다는 걸 기뻐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진지하게 나를 상대하고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행운이요 축복이다. 우리 모두에게 천사가 하나씩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