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변두리1 2014. 7. 1. 09:42

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우리 군사들이 에브라임 숲에서 반란군과 싸우는 동안 나는 마하나임 성안에서 승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성(城)의 내외문(內外門) 사이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졸음이 밀려온다. 깜빡 조는 동안에 꿈을 꾸었다. 압살롬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 그의 신음소리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 깨어보니 성루의 파수꾼이 무어라 외치고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단다. 보고내용이 있는가 보다. 그 뒤를 따라 한 사람이 또 달려오고 있단다. 무엇인가 중요한 보고 내용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방금 꾼 꿈의 여운이 남아 머릿속이 어지럽고 소식이 압살롬과 관련될 것처럼 느껴진다. 먼저 달려온 제사장 사독의 아들이 “하나님께서 손을 드셔서 반란군을 쳐 왕께 승리를 주셨습니다.” 라고 보고를 한다. 보고 내용이 명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어린 압살롬은 잘 있느냐 라고 묻자 그는 자신이 출발할 때 뭔가 소동이 일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고 한다.

  뒤이어 구스 사람이 숨이 턱에 닿게 헐떡이며 도착을 했다. 그는 쉴 틈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보고를 한다. “하나님께서 오늘 왕의 모든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내가 어린 압살롬은 잘 있느냐 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왕의 원수와 왕의 모든 대적들이 다 압살롬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압살롬이 죽었다. 그가 죽은 것이다. 아마도 그의 혼령이 죽음의 순간을 나에게 알렸나 보다. 가슴이 아파오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가 죽은 모습이라도, 그가 죽임을 당한 곳이라도 보아야겠다. 휘청거리는 다리로 위층으로 오른다. 넋이 나간 듯 신음 섞인 탄식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북쪽으로 들판과 숲들이 보이고 한 여름의 한가로운 구름이 보인다. 이 땅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하늘은 지극히 평화롭다. 눈물 속에 보이는 하늘 한복판에 압살롬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있다. 무엇을 해도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였는데, 왜 언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아이가 형 암논을 살해했다고 했을 때 나는 경악했었다. 그가 그술에 있는 외가로 도망가서 수 년 동안 아무 연락이 없고 들리는 소식으로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생소했었다. 그 아이의 외조부인 그술왕 달매는 그 아이가 왕이 될 수업을 받고 있다고 했다. 왕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럴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압살롬이 그술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취했던 행동들은 나와 많이 달라져 있었고 나로부터 많이 어긋나가고 있었다.

 

  그 아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그냥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이해되지 않고 책망했을 일도 그 녀석이 한 것은 그럴 수도 있고 그것이 맞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를테면 다말의 사건으로 형 암논을 살해했을 때도 다른 사람이라면 처벌했을 것이지만 그 녀석이 했을 때는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이 치욕을 당했으니 원한을 품을만하고 동생의 한을 풀어 주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사건을 저지르고 그술로 도피했을 때도 국내에 머물면, 나와 녀석에게 집중될 백성들의 원성을 차단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나도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녀석에게는 나의 합리적인 사고(思考)와 냉철한 판단력이 소용이 없다. 결국은 그것이 아이의 삶을 망가뜨렸다.

 

  지금도, 나를 거역하고 죽이려던 반란군이 진압되었으니 기뻐하고, 고생한 군인들을 격려하고 노고를 치하해야 하는데, 나는 한없이 슬프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내가 슬퍼하는 모습에 승전한 군인들이 발자국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패전한 군인들처럼 숨죽여가며 돌아오고 있다. 나도 내가 이성(理性)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 마음과 감정이 그렇게 따라가 주지 않는 것을 어쩌랴. 나도 많은 이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침에 군인들이 출전할 때만해도 그 많은 말들을 두고 하필이면 “어린 압살롬에게 너그러이 대우하라.”는 말을 했을까. 원래 하고자 했던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여러분 모두가 많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이번 전투에 온 이스라엘의 운명이 걸려 있으니 온 힘을 다해서 싸워주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같은 격려의 말을 하려 했는데 실제로 내가 한 말은 달랐다.

  여하튼 싸움은 끝나고 반란은 진압되었다. 나는 다시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갈 것이고 예전처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부자(父子) 때문에 온 백성이 모진 괴로움을 겪었다.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나라가 강하여지고 백성의 삶이 부유해지는 것이다. 속히 압살롬에 대한 연민에서 벗어나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것이다. 죽은 녀석은 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