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동(騷動)
작은 소동(騷動)
한 달여 전의 일이다. 오른쪽 눈과 안경지지대 사이가 가려운가 싶더니 뾰루지가 올라와 손으로 만졌더니 떼어지지 않고 늘어났다. 수일 후에는 머리빗의 살처럼 비죽이 올라와 보기에 이상한데다 불편하기까지 했다. 안경에 가려 홀로 고민을 했는데 뭔가에 닿기라도 하면 적잖은 통증이 전해졌다. 피부과에서 마취크림 바르고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지만 겁 많고 병원가기 싫어하는 내겐 쉬운 일이 아니다.
모처럼 가족이 외식을 하던 중, 딸아이가 내 얼굴을 보더니 눈가가 이상하단다. 안경을 벗어 보이며 얘기를 했더니 예약을 해주었다. 불편함에다 약간의 두려움이 더해져 긴장 속에 병원을 찾았다. 전문가 같지는 않은 이가 바이러스성 사마귀라며 언제 어디든 생길 수 있는 거란다. 들은 말처럼 마취크림을 바르고 기다리라더니 얼마 안 되어 제거를 위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예상 밖 출혈이었는지 의사는 처치를 중단하고 눈 곁 혈관들이 지나는 예민한 부분이니 지혈이 가능한 더 큰 병원을 가란다. 같은 건물에 있는 성형외과에 가서 오랜 시간 기다린 후 의사에게 들은 말은 간단했다. 눈물샘이 있는 예민한 부위이니 종합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단다.
딸아이에게 상황이 이러하니 지역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돌아온 대답은 진료의뢰서를 받아 직접 접수를 해야 어디에서 치료를 할지 정할 수 있단다. 그 날은 시간이 늦어 다음날 의뢰서를 받아 대학병원을 가기로 했다. 일이 점점 커져 간다. 대학병원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접수부터 기다려야 했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 안과에 갔더니 안과에서 처치할 것은 아닌 듯하다 해서 혈관과 눈물샘을 언급하니 타 대학 성형안과를 소개해준다.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닐듯해 피부과를 찾아가 접수를 하니 휴가 중이어서 보름쯤 후로 첫 진료를 잡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 흐를수록 마음이 심란하다. 나타난 증상이 사마귀라 할 수 있는 지도 확신이 없다. 가려우니 자주 손이 가고 날씨가 추우면 따끔거리기도 했다. 밤에는 거의 뾰루지가 사라지는 것 같다가 아침 거울을 보면 다시 뻣뻣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절망스러웠다. 작은 일 같지도 않고 게다가 수술이라니…, 긴장이 된다. 얼굴 한부분에 돌출해 있는 게, 남들 눈에 띄는 것도 불편하고 스칠 때 전해지는 통증도 만만치 않다.
내 삶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께 간청을 했다. 그분이 고쳐주실 것 같은 확신이 온다. 가족에게나 가까이 하는 이들에게 신앙으로 나았다는 얘기를 못했다. 예전 내 어릴 때도 이마에 사마귀가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한동안 고생을 했고 주변에서는 혹이 났다고 놀렸었다. 다행이 입학 전에 사마귀가 떨어졌다. 많이 가려워 자다가도 긁어 아침에 일어나 보면 이불에 핏자국이 붉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언제까지 이 불편함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 정해진 날에 병원에서는 온전한 처치를 할 수 있으려나. 더 큰 걱정이 드러나지는 않으려나. 언제든 몸 어느 부분에라도 날 수 있다니 더 두렵다. 돌아보면 그동안 건강에 별 탈이 없는 걸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음이 신기하다. 긴 세월 상존하는 위험을 겪지 않고 지낸 게 대단한 일만 같다. 신체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하며 운동을 멀리하고 산 것이 아쉽다. 세월이 흐르면 나이만 늘어가는 게 아니라 심신의 기능이 약해져간다. 주변에 적지 않은 이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겪으며 삶의 후반부를 보내고 있음을 본다.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일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느낀다.
위세를 떨치던 사마귀 같은 뾰루지가 언제부턴가 약회되고 있었다. 더 이상 자라지도 않고 통증도 시나브로 약해지더니 작은 딱지로 고정되어 눈에만 거슬렸다. 지난밤에 가려움이 느껴져 만져보려니 마침내 미간에서 분리되어 떨어졌다.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 거울을 보니 미간 옆으로 바늘구멍만한 핏자국만 응고되어 있을 뿐 깨끗하다. 피가 흐르거나 눈물샘에 영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잠자는 아내를 깨워 얘기했더니 참 잘됐단다. 신앙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부끄러움이 솟았다. 고쳐주신다는 확신이 올 때, 담대하게 주변에 알리면 좋았을 것을 그러지 못한 게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그러다 수술을 하게 되면 어쩌나, 그것 하나 구분하지 못하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제외하면 무엇이 남을까. 생활의 여러 가지 일들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하면서 신앙이 영롱하게 빛나는 글들을 기록하지 못함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이 되니 뾰루지 떨어진 자리가 좁고 하얗게 드러나 있다. 큰 부담을 덜어 몸과 마음이 한결 상쾌하다. 무탈한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귀한 건지 알게 해준 한 달여의 날들이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기쁜 마음으로 예약을 취소했다. 내 기분을 알 리 없는 담당자는 사무적으로 전화를 받고‘그러니까 예약을 취소한다는 말이지요?’하고 다시 확인을 한다. 치료할 게 없어졌어요. 내 목소리는 들떠 있었을 게다. 이제 기분 좋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