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어쩌란 말인가.(요압을 향한 다윗의 한탄)
그를 어쩌란 말인가.(요압을 향한 다윗의 한탄)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되고 왕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반란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벤야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였는데 예루살렘 환궁 때에 드러났던 이스라엘 지파들의 불만에 편승(便乘)하여 일으킨 반역으로 많은 이들이 합세하여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는 반란군의 장수였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대장관으로 삼아 모병과 진압을 맡겼다. 그는 내 조카였고 요압보다 껄끄럽지 않고 나와 나라에 대한 미안함도 있어서 온 힘을 다해 맡겨준 일을 완수할 것이다.
그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백성들의 호응이 미약해서인지 정한 기한 안에 아마사는 모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세바가 반역의 무리들을 이끌고 견고한 성읍으로 들어가면 단기간 내 평정은 어려워진다. 상황이 급박함을 파악하고 나는 아비새에게 군사들을 주어서 세바를 추격하게 했다. 일이 잘못되면 압살롬의 반역보다 더 큰 피해와 어려움을 당할 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일에 의식적으로 요압을 배제했다. 그는 너무 높아져 있다. 내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고 나를 협박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두렵기조차 하다. 더러는 압살롬을 죽인데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를 향한 일회성 경고요 힘의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이 안 되어 기막힌 보고를 받았다. 요압이 아마사를 죽이고 스스로 군대장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임면권(任免權)이 분명히 나에게 있는데 내가 임명한 상관을 죽이고 나의 허락도 없이 유사시(有事時) 승계자인 아비새를 제치고 멋대로 군사를 통솔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할 수가 없다. 상황이 너무 다급하니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때에 그를 파면(罷免) 하거나 징계하면 내부분열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나고 세바의 무리들은 그 틈을 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불편하다. 요압과 그 무리들을 어떻게 다룰 수가 없다. 아마사와 그 일족들에게 미안하고 백성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요압은 유능하니 세바를 진압하고 돌아올 것이다.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하다. 우리사이가 언제부터 어긋난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유능하고 강직한 군인이다. 나에게 하는 말들도 잘못된 것은 없다. 요압만큼 오랜 세월을 생사를 같이 한 이도 없고 그의 충성심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그와는 삼촌과 조카로 혈연관계도 있어서 못 믿을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요압이 내게 너무도 불편하다.
예상대로 요압은 세바의 반란을 평정했다. 그는 곧 예루살렘으로 당당하게 귀환할 것이다. 그가 큰 공을 세웠다고 치하하러 내가 나가야 하는가. 최근 들어 요압이 나를 넘어뜨리고 나를 깔고 앉아 내 목을 조르는 꿈을 자주 꾼다. 그에 대한 피해의식이 나에게 있는 것 같다.
그가 귀환하기 전에 서로 부딪혔거나 껄끄러웠던 일들을 정리해 보아야 겠다. 누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기보다 서로 주고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처음으로 의견이 달랐던 사건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맞았을 때였다. 그 때는 내 의견이 강경했고 그도 순순히 따라 주었다. 나라의 분열을 막기 위해 아브넬이 협상 차 왔다가 돌아갈 때 그가 자신의 동생을 죽였었다는 것 때문에 아브넬을 살해했을 때 처음으로 그를 향해 나의 서운함과 분노가 폭발했었다. 그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다행이 사건에 내가 관여된 바가 없음이 밝혀지고 여론이 호전되어 수습이 되었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요압의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밧세바의 남편이었던 우리아의 처리에 있어서 내 명령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을 그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내 명령에 따라서 일을 처리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강직한 요압이 내 명령을 순순히 따라줄 것인가에 대해 나도 약간의 우려는 있었다. 그도 틀림없이 하루저녁쯤 그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와 결정적으로 사이가 벌어진 것이 최근의 압살롬을 죽인 것과 그 후의 일련의 일처리였다. 내가 그토록 호소하고 부탁을 했는데도 다른 사람도 아닌 요압이 사촌동생이기도 한 그를 너무 잔인하고 불쌍하게 죽였다. 나는 그 일을 겪고 나서 그의 인간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압살롬을 죽이고도 아들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나를 협박하듯 대한 일은 지금도 수치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왕을 무시하는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의 처신이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가 임명한 아마사를 죽이고 자신이 스스로 군대장관이 되어 세바의 반란을 진압했다. 군사적으로는 더없이 유능하지만 더 이상 같이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었나. 우리는 거의 한평생을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지내왔다. 이 긴 세월동안 다져진 우정과 충성이 이제 금이 가고 있다. 죽음의 순간까지 지속되는 우정은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상처를 최소화하며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것이 요압과 나 사이의 숙제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이 지난한 문제도 이제 그분께 넘긴다. 하나님, 요압과의 관계를 책임져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