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반갑구나
정말 반갑구나
성격이 엄마를 닮은 것 같구나, 그렇게 느긋한 걸 보니. 하긴 거친 세상보다 엄마 뱃속이 더 좋을지 모르지. 아기만을 위한 궁전[子宮]이니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니. 그래도 그렇지, 예정일을 일주일이나 넘기고도 아무런 기별이 없어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는데 그러고도 또 하루를 넘겨 수술을 했다하니 그 여유를 누가 당할 수 있을까. 네 엄마가 몇 달 전에 너의 초음파 모습이라고 보여 주는데 세상에 나오면 보겠다고 안 봤다. 물론 그 후에 내 전화기 화면으로 몇 번 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그저 아빠 닮은 듯하더라.
내 소개가 늦었구나, 난 네 외할아버지야. 병원이나, 몇 일후면 가게 될 너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교회 일을 받들며 살아가고 있어. 물론 너보다 엄청 나이가 많지. 엄마, 아빠가 주일마다 교회에 오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난 지금도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게 달갑지만은 않아. 갑자기 나이가 많이 들고 폭삭 늙어버린 느낌이 들 것 같아. 네 외할머니는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다면서 나를 힐책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듣기 좋은 말은 없겠냐고 해서 같이 찾아보고 있는 중이야.
신생아실에는 너 혼자만 있더라. 세상에 처음 나와서도 큰 방을 혼자 쓰는 걸 보니 넉넉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하구나. 네 모습을 대하니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데다 순하기까지 하다니 고마울 뿐이다. 아빠는 손발 다 있고 잘못된데 없다고 기뻐하더라. 외할머니, 아빠와 나는 네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준 것이 고맙고 대견했지.
내가 다른 이들 이름을 여럿 지어 줬어. 가게 이름도 많이 지어주고…. 하지만 네 이름은 쉽지가 않구나. 지구촌 시대니 외국에 가서도 사용하기 좋게 부르기 쉽고 적기 편한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가 않아. 좋은 이름을 추천하지 못했더니 엄마, 아빠가 상의해서 “하율”이라 하기로 했다더라. 이름은 본인이 지을 권리가 없으니 이제부터 하율이가 되는 거야. 내가 농담 삼아 하나님의 율법이냐고 물었더니 하나님의 선율이라 하더라. 네 성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정하율” 품격도 있는 듯하고 세련된 듯도 하잖아. 이름처럼 하나님을 노래하며 살아라. 새로 지은 이름이 익숙지 않아 아직은 모두들 “깜짝이”라고 부르고 있어. 병원에서 네가 새 생명으로 찾아온 걸 알고는 엄마, 아빠가 깜짝 놀랐다는 거야. 네가 그렇게 빨리 오리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나봐. 이 세상에 오는 게 힘들었는지 머리가 조금 길쭉하더라. 한 이삼 일만 지나도 정상으로 돌아온다니 다행이지. 작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고 우는 모습도 예쁘더구나.
너를 맞이하기 위해 엄마 아빠가 무던히 애쓴 것을 나는 안다. 태중에 너를 안고부터 엄마는 부지런히 병원을 다니고 마음을 편케 하고 네게 해롭다는 건 하지도 먹지도 않으려고 노력하는 걸 자주 보았어. 아빠도 수시로 너를 안고 씻기고 돌보는 법을 알려주는 강좌들을 들으러 다니는 것 같았지. 출생하기 몇 달 전부터 너를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눈치더라. 언젠가는 네게 필요하다고 무언가를 사러 한밤중에 먼 곳까지 가는데 나도 따라 가본적도 있단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관점에서 엄마 아빠가 하율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자녀에게 부모가 잘 되기를 원하는 건 당연하고, 자신의 자녀가 대단하다는 착각을 갖는 게 흉이 될 수는 없지. 그렇지만 지나친 기대는 서로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해. 난 그냥 개개인의 인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 부모는 자녀를 지지하고 지켜보는 게 바람직한 것 같아. 모든 사람이 잘나고 대단하다고 인정할 만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단다. 오히려 수시로 혼란과 좌절을 안겨주는 곳이 세상인지 몰라….
엄마 뱃속에서, 신생아실에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동생이 생길 때가지는 온전히 너만을 위한 세상이겠지. 하지만 유치원, 학교, 직장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삶에서 세상이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알게 될 거야. 함께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내 생각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거지. 서로 한 발씩 물러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거야. 양보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건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지금 얘기해도 알기 어려우니 살아가면서 익히고 깨달아가는 게 살아가는 방법이야.
너를 위해 동화를 배우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내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고. 무엇보다 사건에 따른 오르내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명확히 모르겠어. 네 동생들과 이종사촌들이 생길 테니 그들에게 외할아버지가 직접 동화를 써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긴 한데 너무 어려워. 멀지 않은 때에 다시 도전해 봐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반갑고 고마워, 우리에게 와 주어서…. 얼마나 긴 세월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잘 지내보자. 날마다 휴대폰 화면에 올라오는 네 모습을 보는 게 요즘 나의 큰 즐거움이야. 수일 내에 만나러 갈 테니 그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렴. 외할머니도 잘 지내고 너를 몹시 보고 싶어 한단다. 기쁘게 만날 날을 기다리며. 외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