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을 보며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을 보며
2박3일 정상회담이 끝났습니다. 대통령은 피곤한 모습도 없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단히 수고하셨다는 인사가 너무도 당연합니다. 감격적인 장면들을 보는 남북한 모든 이들의 마음은 뜨겁게 달구어지고 70여년 분단의 고통이 끝나는가 보다 하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화해의 기운이 일 년 내내 이어지고 있습니다. 4월의 판문점에서 분계선을 넘는 깜짝 행동과 5월 두 정상의 깜짝 만남 그리고 그것들을 토대로 6월의 세계적인 미⦁북회담을 거쳐 8월 아시안게임에서 공동입장과 남북단일팀으로 이어지다 마침내 9월 평양에서 세 번째 정상들의 만남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연내에 김정은 위원장 답방이 예정되어 있으니 올해는 화해와 평화로 가득한 한 해입니다.
이 잘나가는 만남을 가끔 미국대통령이 눈치를 주고 훼방합니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느니 국제제재결의 위반이니 하면서 못마땅해 합니다. 옆 나라 일본은 은근히 몸 달아 합니다. 자신만 따돌림 당하는 것처럼 느끼는 모양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슬며시 북한을 편들며 미국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몸을 삐딱하게 뒤틉니다. 우리는 예전에는 북한을 극히 불신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경계하고 일본을 싫어했습니다. 오직 미국만이 우리의 참 우방이요 기댈 언덕이었습니다. 미국과 유엔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한국이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한국이 조금씩 미국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더니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고 미국은 생각할지 모릅니다.
평양에서의 2박3일이 숨 가쁘게 지났습니다. 남한에서 대통령으로서 보낸 열여섯 달보다 더 꿈같았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공항부터 길게 이어져 맞이해준 평양시민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을 겁니다. 둘째 날 보았던 “빛나는 조국”도 좋았겠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 소개로 15만 평양시민들을 상대로 한 연설은 한민족 누가 들어도 감동이었습니다. 연설 중간 중간 터지는 박수와 환호성은 평생 잊을 수 없겠지요. 마지막 날, 새벽 여섯 시 반 전후에 출발하는 일정에 맞춰 평양의 수많은 시민들이 한복을 곱게 입고 꽃술을 흔들며 열정적인 환송을 해주었습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신비한 천지를 김정은 부부를 비롯해 양쪽 수행원들과 함께 올라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함께 감격했습니다.
풍성한 성과를 이루고 돌아왔습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방송은 2박3일 내내 들뜬 분위기로 잔치 같은 화면과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신문도 큼직한 사진과 함께 관련기사가 가득합니다. 남북한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시작됨을 실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오천년을 함께 산 민족이 칠십년을 헤어져 산 것뿐입니다. 그래도 핵을 두고는 개운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비핵화가 되어야 안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며칠 이 기분을 만끽하고 나서 천천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흥분가운데 놓친 진지한 일들은 없는지, 소수의 목소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우리 대표단이 관람한 “빛나는 조국”이라는 집단체조를 방송으로 잠깐 보면서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그런 공연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그 정교하고 아찔한 묘기가 환호성과 어떤 돌발 상황에도 자연스레 나와야하고, 카드섹션은 한 사람이라도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금방 표가 나고 흉해보이니, 얼마나 긴 세월을 철저하게 손발을 맞춰야 그 경지에 이를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한 시간여에 이른다는 공연을 방북단에 맞추어 다시 연습했을 걸 생각하니 놀랍습니다. 그 공연을 한 달가량 한다고 합니다. 오만여 명이 함께 하는 그런 공연을 내용을 바꾸기도 하고, 그렇게 긴 기간 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평양시민들 중 그 많은 이들이 방북단의 일정에 맞추어 2박3일을 산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마지막 날 새벽에 보여준 그들의 환송물결은 대통령부부의 구십도 인사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여섯시 사십분이 채 못 된 시간에 출발하는 이들을 위해 곱게 성장하고 거리에 나와 대기하려면 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할까요. 북한 사회가 우리와 다른 것이 많다는 걸 느낍니다. 그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장점이라면 우리는 여러 목소리를 낸다는 게 장점입니다. 소수의 의견이 다수에 묻히는 사회가 그들이라면 우리는 소수의 목소리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한 목소리는 결집된 전체 의견처럼 들리지만 여러 의견이 묻혀 버린 셈입니다. 박수소리와 환호성에 취하긴 쉽지만 비판과 야유에는 내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오만 군중을 연습시켜 일사불란하게 멋진 장면을 보여주거나, 꼭두새벽에 수만의 환송인파를 내세울 순 없습니다. 어쩌면 어딜 가나 환영뿐 아니라 반대의 인파를 만날지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사회의 진실한 반응일 겁니다.
남북관계는 오천년을 내려온 형제일 뿐 아니라 서로 피를 흘리고 막대한 피해를 준 전쟁 상대입니다. 최근 칠십년의 역사에 어려움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나라의 안보에는 지나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경우를 상정해 철저히 대비하고 최선의 진전을 기대해야 합니다. 선을 기대하다 큰 어려움을 겪는다면 순진한 것일 순 있어도 현명하다 할 순 없습니다.
현명함을 잃지 않으며 보내는 화해와 평화의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회담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