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당신들의 천국

변두리1 2018. 8. 28. 16:27

당신들의 천국

명분과 실리, 무엇이 더 중요한가 -

 

  작가 이청준의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인 모양이다. 외부인들이 방문해보면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란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소설 속 주정수 원장의 공로가 컸겠다. 하지만 그는 원생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동상도 철거가 되었다. 낙원을 이루겠다는 건물이 하나씩 들어설 때마다 원장과 외부인들은 기쁨과 감탄이 되었겠지만 원생들은 그만큼 지옥이요 불평이 늘어난 듯하다. 누구를 위한 낙원이고 천국인가. 본인들이 아니라 하는데 오늘이 너무 고통스러운데 내일의 낙원이 얼마나 위로가 될까.

  전 원장 주정수가 잊히지 않는다. 그의 명분과 의도는 좋았다. 자신의 이익을 취하지 않고 소록도와 원생들의 권익을 위해 하고자 했을 게다. 목표가 정해지고 할 일을 확정한다. 일의 진행과정에서 간호장인 사토의 잔학성이 드러난다. 과업이 빠르게 달성되고 결과가 눈에 보인다. 하지만 원생들은 수단이 되고 고통을 겪는다. 많은 것을 이루고 외부인들의 칭송이 늘어나도 소록도의 주민들은 행복하지 않다. 주정수의 동상을 세우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실제로는 강제적인 모금이 이루어진다. 동상이 완성되고 매달 치러지는 보은 감사의 날에 동상 앞에서 칼에 맞아 죽는다. 동상이 감사가 아닌 원한의 대상이 되어 그 주인도 죽고 동상도 헐리고 만다.

  새로운 병원장으로 현역 대령 조백헌이 부임해온다. 부임선물처럼 발생하는 원생의 섬 탈출사건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어난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안전하게 나갈 수 있는데도 생명을 건 위험한 탈출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환자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향한 갈구라고 보건과장 이상욱은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새 원장을 향해 자신들을 환자로 대하기보다 자유를 원하는 인간으로 대해달라는 요구일지도 모른다.

  신임 병원장 조백헌, 그가 만나 이야기하는 상대들은 하나같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냉담함, 마치 당신은 이야기하시오, 우리는 관계없습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투다. 그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인물의 말에 보이는 냉담함은 무엇일까. 이상욱 식의 표현을 하자면 자신들과는 너무 다른 타인의 이야기라는 게다. 나병 환자가 아닌 정상 건강인, 주어진 기간이 차면 떠나갈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슨 말을 해도 자신들을 위하기보다 동상을 만들기 위한 술책이라는 게다.

  동상이란 무엇인가. 동상의 본인에게 영광이 있을지 모르나 동상을 위해 고생하는 이들은 기억되지 않고 오히려 그 동상에 매이고 예속당할 뿐이다. 원장은 동상을 위해 애쓰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가 소록도 사람들과 서약을 하고 난 이후에야 그 의심에서 조금 벗어난다. 하지만 그 유혹과 비난의 여지는 그 섬을 떠나는 순간까지 남는다. 원장은 원생들로 축구팀을 만들어 본인이 의도한 성과를 이끌어낸다. 섬사람들의 무반응을 깨고 응집할 대상을 찾아 활력을 불어넣어 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보자는 게 그 의도였을 게다.

  원장은 물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어 330만 평의 땅을 확보하는 일에 착수한다. 섬사람들을 설득하고 가까운 뭍사람들의 방해를 넘어선다. 돌산으로 된 섬이 하나 흔적 없이 사라지는 엄청난 작업이다. 그 일은 쉽지 않았다. 바다를 막는 일은 좀처럼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지치고 모두의 인내심을 시험하고야 돌둑은 물위에 떠올랐다. 모두들 시닝 나고 힘이 솟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태풍에 둑이 쓸려가고 또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쌓고 무너지고 날마다 여기저기가 유실되면서 조 원장은 위기를 맞는다.

  원생들이자 섬 주민들이 몰려와 초기의 서약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원장에게 죽으라는 게다. 이 위기에 그들의 대표 격인 황희백 장로는 원장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원장이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위기에서 이상욱 과장이 나타나 소요를 가라앉히고 사태를 수습한다.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원장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 조백헌은 타지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개인자격으로 다시 소록도에 들어와 그들 틈에 섞여 산다. 그 섬에 보육교사를 근무하는 건강한 정상인 서미연과 나병 경력자 윤해원의 결혼식을 주선하고 신혼집을 건강인과 환자들의 중간지대에 마련한다. 그의 바람은 그 완충지대가 넓혀져 섬 전체가 하나로 되는 것 일게다. 소설은 그 섬을 취재하러 왔던 이정태기자가 다시 오고 섬을 탈출했던 이상욱이 다시 돌아와 조 전 원장이 결혼식 축사를 예행 연습하는 것을 듣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조백헌 원장을 향해 했던 황 장로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사람의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 명분과 목표가 아무리 좋아도 대가가 너무 큰 것을 힘없는 공동체에게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가. 그러한 일들은 곧잘 폭압적인 독재로 이어지기 쉽다. 주정수와 사토가 그 유혹에 빠진 것이다. 임면권자가 있는 한시적인 직책에서 그런 거대한 사업을 벌이는 것이 옳은가. 그 일을 시작했다면 욕심을 버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기만큼만 해야 하고 공인으로서 윗선의 결정에 따라야 할 것 같다. 또한 공직을 떠난 후에 다시 소록도에 들어온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내 일은 끝이 났다고 여기고 그곳에 발 딛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동상에의 유혹은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을 듯하다. 자유가 사랑에 바탕하고 그 사랑은 또 믿음에 근거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삶에서 한 단계를 올라간 듯 느껴진다. 동상들을 볼 때 생각이 더 많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