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힐빌리의 노래
삶과 가정과 교육 그리고 인생 -
‘힐빌리’가난한 사람들 혹은 촌 동네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세계인 모두가 부러워하는 꿈의 나라다. 하지만 꿈의 나라라고 모두가 잘 사는 건 아니다. 그곳에도 한물간 지역이 있고 못 사는 동네가 있다. 글쓴이가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 러스트벨트라고 하는 녹슨 지역이다. 그가 앞부분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른한 살, 무슨 대단한 걸 쓸 수 있을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내용도 그랬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흔하지 않을까. 열악한 환경에서 주인공의 처절한 노력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입지를 굳힌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인공은 오하이오 주에서 성장한다.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어서인지 아버지 후보자들이 무척 많다. 3학년부터 한 해에 한 번 꼴로 가정완경이 바뀐다고 할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낸다. 그런 생활 속에서 안정을 찾기는 어렵다. 겨우 10학년이 되어서 조부모의 도움으로 환경이 안정되어간다. 따라갈 수 있는 본보기가 없는 삶은 얼마나 막막하고 긴 방황을 초래하는가. 주변의 환경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치관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가 한 개인의 삶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저자에게 군대는 삶의 한 획을 긋는 역할을 한다. 해병으로 입대하여 이라크에 파병되고 그 사 년간의 경험은 그를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이끌었다. 각지에서 모여든 동료들과 강한 훈련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시야를 넓혀 주었다. 군을 제대하고 난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일들이 그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군 생활과 비교하면 그가 해내지 못할 일이 별반 없었다. 그의 삶 속에 오래 각인된 잊지 못할 마치 에피파니(Epiphany)와 같은 순간이 있었다. 이라크에서 근무할 때, 값싼 지우개 하나를 선물 받고 너무도 기뻐하던 아이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이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를 늘 생각한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마치고 그는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다. 학비가 비싼 유명 사립대가 가난한 이들이 다니기에 더 좋다는 그의 논리에 무릎을 친다. 그런 곳이 장학혜택이 더 많고 부유한 이들이 많기에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장학혜택을 얻기가 수월하단다. 동료학생들의 부모들 직업과 가정형편에서 자신과의 큰 차이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좌절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 선택받은 곳에서 아내가 되는 우샤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그는 많은 도움을 받는다. 주변 동료들도 좋지만 교수진도 큰 힘이 된다. 인생의 조언자요 참 스승인 에이미 교수를 만나게 된 것은 큰 축복이었다. 예일대 로스쿨은 그에게 새 세상을 열어 주었다.
가끔 ‘노는 물’이 다르다는 말을 듣는다. 그 학교가 그런 곳이었다. 그가 파악한 바로는 친구들이 파티에 임하는 자세들이 미래의 직업에 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생의 파트너를 찾으려 하는 데 있었다. 직장을 찾는 방식부터 다르다. 마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월드컵 같은 무대에 이름난 클럽의 스카우터들이 몰려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요청하는 것처럼 유명 직장에서 찾아와 그들과의 자리를 마련하고 가능성 있는 인재들을 모셔가는 격이다. 구직자가 이력서를 수십 장 준비해서 여기저기 지원하고 을의 처지로 면접을 치르고 여러 번 낙방을 경험하면서 직장을 구하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그들의 세계에도 견고히 존재하는 학연을 본다. 동기들뿐 아니라 선후배로 이어질 그 견고한 줄은 자신들에겐 더없이 편리한 통로가 될 수 있지만 배타적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불편한 꽉 막힌 길은 아닌지 따져보게 한다. 글쓴이는 그 험한 러스트벨트를 벗어난다. 그러나 아직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온 세계를 돌아본다면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더 많고 어떤 나라는 전체가 러스트벨트이고 그 국민들은 그 자체도 알지 못하고 살아갈지 모른다.
인간이라고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 가운데서도 합법적인 신분상승의 도구가 교육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조차 대물림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가능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교육이며, 또 교육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가정환경이다. 말할 것 없이 개인의 깨우침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에 이르는 길이 환경과 교육일 수 있다는 게다.
능력 있고 행운이 따라주는 개인이 성공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지역이 함께 좋아지고 공동체에 속한 많은 이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길은 없을까. 소수의 사람들이 잘되어도 그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희망을 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서로의 자리바꿈으로 그칠지 모른다. 함께 잘 되고 함께 행복한 길이, 찾으면 반드시 있으리라는 기대를 포기할 수 없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지역사회에서 나라로, 세계를 향해 함께 즐겁고, 행복한 지구촌을 만드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의 성공을 그리는 이런 글들도 그 나름의 가치는 있지만 그다지 새롭고 감동적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내 이상론(理想論)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