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
한 강
- 현실의 욕망과 이상의 좌절 -
일제 강점에서 해방되자 다시 사회주의 이념이 이 땅에 휘몰아쳤다. 반민족 친일의 청산도 이루지 못한 채 어수선한 상태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국토는 황폐해지고 서민들의 삶은 바닥일 수밖에 없었다. 처참함 속에서도 권력에 눈 먼 이들은 독재를 휘두르고 깨어있는 이들에 의해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지만 곧이어 박정희 군사독재가 이어진다. ‘한강’은 박정희시대와 겹친다. 4⦁19로 시작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 것으로 끝나니 레드 콤플렉스가 관통하던 시대얘기일 수밖에 없다.
그 시대 절묘한 시기에 김신조를 비롯한 북의 특공대가 대통령을 암살하러 남파되어 이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정권은 더욱 강하게 병영국가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그 시대 가난으로 농촌에서도 버티지 못한 이들이 서울로 모여들고 그들 중에 긴 이야기의 주인공인 유일민, 일표 형제가 있다. 아버지가 북으로 가버려 불쌍하게 남겨진 그들은 문제의 가정이요 빨갱이들이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연좌제에 시달리는 이들이 되어야 했다.
똑똑한 청년들, 특히 유일민은 잊을만하면 불려가 고문과 심문에 시달려야 했다. 천형과도 같은 벗을 수 없는 굴레, 뭔가를 의욕적으로 해보려 하면 나타나 걸림돌이 아니라 폭력배처럼 몸과 마음을 피폐케 했다. 그 소용돌이 속에도 그들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이들이 있었다. 탄탄한 기득권을 누리는 가정의 딸들인 강숙자와 임채옥 같은 이들과 서동철, 그리고 학교와 그 주변의 친구들이다.
원병균과 이상재, 그들은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무관의 제왕, 사회의 목탁, 하지만 자본주의 속의 재력과 권력은 그들을 절망하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도 재력과 권력을 넘어서긴 힘겹다. 힘이 있는 이들은 유지하고 더 힘을 불리기 쉽고, 재력은 더 많은 축재를 가능케 하고 정경유착은 견고해져 도시의 하층민의 삶은 시름겹기만 하다.
나득삼은 천두만과 석탄을 훔치다 석탄더미에 깔려 죽는다.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천두만은 천막집을 처분해 나득삼의 장남 복남을 스텐리스 공장에 취직시키지만 복남은 그 공장에서 손가락 네 개가 잘리고 해고당한다. 정당한 보상은커녕 어려움만 당하고 울분을 품고 복수를 노리던 복남은 서동철에게 소개되고 동철과 그 일당은 사장을 찾아가 혼내주고 가게를 낼만한 배상금을 받아낸다.
독립투사의 후손인 허진은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철공소를 위시한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그의 여동생 미경을 허진의 친구 이상재가 좋아하며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귀나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군에서 자원해 월남으로 간다. 미경에 대한 그리움과 편지로 마음을 달래고 삶을 이어가나 국내의 미경은 가정형편상 오빠 친구의 도움으로 탄탄한 회사에 취직이 되고 회장 비서로 일하다 회장의 폭압으로 임신을 하고 회장의 아이를 낳지만 그 아이를 빼앗긴다. 이상재는 허미경을 그리워하다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그는 미경을 잊지 못하고 끝까지 그리워한다.
월남은 미군이 철수하자 공산화되고 미국의 신화는 타격을 입는다. 경제성장을 위해 차관에 목을 매는 정부는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으로 파견한다. 유일문은 광부를 지원하나 또 다시 신원조회를 통과하지 못해 빚만 지고 만다. 오빠가 검사인 김광자는 서독으로 건너가 간호원으로 일하면서 시간을 아껴 의사공부를 하지만 디스크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다.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짐스러워하는 걸 알고 다시 독일로 떠나려한다.
정권에 붙어 권력과 재력을 탐하는 이들은 그들 나름의 다툼이 치열하고 정권유지를 위한 집권자들의 압박과 회유도 지속된다. 박정희는 평생 독재를 위해 유신헌법을 공포하고 사회를 공포정치로 몰아간다. 온갖 방법을 동원한 선거로 합법화하여 정권을 이어간다.
언론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은 직장을 잃고 세월이 흘러도 복직은 되지 않는다. 일상적 생활을 체념한 유일민은 첫사랑 임채옥의 도움과 친구 서동철의 배려로 주류유통업으로 입지를 다져간다. 하지만 그 일도 관계기관에 다시 불려가 심문을 받으며 자금의 출처를 의심받자 임채옥 아닌 서동철을 지목하며 서동철과도 멀어진다. 친정이 이민을 가면서 떼어준 자금을 임채옥은 다시 유일민에게 준다. 플라스틱 공장을 차란 일민은 사업을 이어가고 남편을 사별한 임채옥과 부부가 된다.
남북관계는 조금씩 진전이 되는 것 같지만 늘 불안하다. 어찌 보면 양쪽이 서로의 정권을 위해 안보를 이용하는 듯도 하다. 사회 각 영역에 감시의 눈초리와 보안을 미끼로 하는 세력들이 촘촘히 퍼져있다. 정치인과 교수를 포함하여 누구도 편안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 지금은 유일민 일표 같은 이들이 없나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블랙리스트란 말이 돌았으니 말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박정희 시대가 끝났다. 사람들은 이제 좋은 시대가 오리라 예상하지만 또 다시 암흑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유를 갈구하는 대학생들과 정권을 노리는 이들이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대단하다. 태백산맥으로 시작하여 아리랑을 거쳐 한강에 이르도록 우리민족의 근현대사 백여 년을 소설로 썼다. 20여 년을 글 감옥에 갇혀 살았다고 했다. 육체적으로도 기침 위궤양 오른 손 마비 둔부의 종기 탈장 같은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작가의 그런 노고가 있어 독자들은 좋은 글들을 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대단한 작품이 있어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