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
진중권을 잘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무식하다고 해도 마음 쓰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토록 관심을 가질리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글 싸움에서 진중권을 이길 사람 없고, 말싸움에서 유시민 이길 사람 없을” 게라고 했단다. 세상 넓다는 걸 모르는 말 같긴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말일 게다. 그 진중권이 쓴 책이 《호모 코레아니쿠스》다. 한국인이 변해온 모습을 정리해 준 셈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자극을 받아 내 나름으로 구분해 보고 싶다. 개항으로 상징되는 구한말부터 대충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듯하다. 일본에 의해 강점이 되는 1910년까지는 혼돈과 불안의 시기였으리라. 조선후기가 여러모로 불안하고 국가적 안정이 흔들렸던 시기다. 신분제도 점차 와해되어 1894년에는 공식적으로 폐지가 된다. 강화도나 대동강 같은 지역에 이양선은 자주 나타나고 서학의 가르침은 뒤숭숭하게 불안을 더했을 게다. 개국과 통상의 요구는 점증하고 국론도 엇갈렸을 게다.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쇄국을 강화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고 나오는 일본을 물리치고 쇄국을 유지하기는 힘에 겨웠다. 이 시기만 해도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이들이 대세였으리라.
1910년부터 1950년 전후까지는 이중적 가치관과 불분명한 처신의 시기였을 게다. 전통적인 한 민족인 동족이 있고 언제 물러갈지 알 수 없는 강한 일본집권층이 있었다. 한학중심의 서당이 있고 신식학교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 공간에 두 초점이 병존하는 시기였다. 애족과 독립이 바른 것 같은데 학교와 현실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고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시절이었다. 지식인들은 서구와 일본과 중국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접했는데 그게 사회주의와 공산사상이었다. 우리의 현실이 암혹한데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은 신 이념은 신기루처럼 매력적이었다. 친일 집권층도 공출과 국방헌금과 자원입대를 독려하고, 독립군도 자금이 필요하고 인력을 요청했으리라. 해방정국도 미국파와 중국파가 만만치 않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도 맞서 있었다. 단독정부와 통일정부, 반탁과 찬탁도 거셌다. 미군정은 일제 때의 사람들을 다시 기용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을 어렵게 했다. 한국전쟁은 일본에게 다시 힘을 낼 기회를 준 꼴이 되었고, 국토를 두 번이나 휩쓸었던 전쟁은 생존을 위한 삶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절감하게 했다.
1950년경부터 1990년경까지는 온 나라가 병영인 전 국민이 군인인 시대였다. 전쟁이 실제로 행해지던 그렇지 않던 분위기 자체가 전쟁이 끝나지 않은 긴장을 풀 수 없는 시기였다. 반공이 국가의 국시였고, 대통령이 군 출신이었다. 군의 위세가 가장 강하고 나라 전체가 군대 같았다. 국가의 경제발전이 군 작전처럼 진행되었다. 과정은 생략되고 힘이 강조되었다. 대통령의 결정이 법이었고 고등학교에서 열병이 행해지고 총검술을 가르쳤다. 고교와 대학은 군대체제였고 대학 1,2학년 때는 군부대에서 한 주간을 보내고, 대학에 학군단이 운영되고 있었다. 남자 대학생은 일주일에 4시간 군사훈련을 교련과목으로 이수하고 3년을 마치면 6개월의 군복무단축혜택을 받았다. 어디서나 행사 때는 매스게임과 카드섹션이 행해졌다. 이 기간에 대통령에 의한 새마을 운동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국민교육헌장을 행사 때마다 낭독하고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국기게양식과 하강식이 행해졌다. 군사문화가 나라 전체에 가득했고 어디나 선착순의 문화가 퍼져있었다.
1990년 이후부터 2010년경까지는 정보통신과 시장중심의 문화가 휘몰아쳤다. 1997년의 IMF체험은 사회 모든 부분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선거마다 최대이슈는 경제였다. 학교와 병원과 공공부문조차 본래의 목적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경영적인 면으로 치우쳐갔다. 세계는 정보통신의 눈부신 발달로 생활은 좋아진 듯하나 개인화되어 갔다. 개인과 집단과 국가 간 관계도 이익을 최우선하게 되었다. 흐름이 완연히 전체에서 개인으로 이동되었고 이념보다는 경제가 앞섰다. 남북관계가 완화되면서도 가끔씩 긴장관계로 되돌아갔다. 청년과 노년층의 구분과 차이가 확연해졌고 정보통신기기의 활용에 따른 청소년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안보를 내세우는 보수층이 쇠퇴하고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진보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커졌다.
2010년 이후의 우리 삶의 모습은 인공지능의 현실화와 전 세계가 하나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생태계의 역습을 걱정하는 시기가 되었다. 알파고로 갑자기 다가온 인공지능의 경고는 두려움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정분야뿐 아니라 종합적으로도 인간을 능가하기는 시간문제가 되었다. 어느 곳에선가 누구에 의해 악용되어 인류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 실제적 위협이 되었다. 빠른 속도로 강자가 약자를 통합하는 사회가 되었다. 거대 쇼핑몰이 재래시장의 존립을 위협하고 대형 배급사의 영화가 상영관을 독식한다. 교통과 통신의 첨단화로 도시가 시골을 삼키고 상권과 자본이 도시에 흡수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과 일반화로 최고만 살아남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류는 잊히고 전 세계가 메이저리그 야구와 헐리우드 영화와 윔블던 테니스와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일류만 살아남고 일류에 빠져드는 무섭고 매력적인 시대, 최고의 것들을 보면서 바보가 되어가는 때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