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변두리1 2018. 8. 2. 05:38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제주 출신 허영선 시인이 썼다. 25,000 ~ 30,000명이 희생당한 제주도민 아홉 중 한 명이 죽었다는 끔찍한 일은 해방에서 정부수립으로 이어지는 공간에서 시작되어 37개월여 후에 제주도지구의 계엄해제로, 그 후로도 19549월 한라산 금족이 해제되므로 7년 반 만에야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시적인 것일 뿐, 드러낼 수 없는 고통과 사회적 곤경은 지속되었다. 여러 기관과 많은 이들의 노력과 오랜 세월이 흐르고, 199912월에 제주43특별법 통과, 200310월 제주43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 2014“43희생자 추념일국가기념일 지정이 이루어진다. 또한 2008년에는 제주43평화기념관이 12만 평 부지에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상징적 순례지로 문을 열었다.

  사건의 발단은 엄청난 일이 아니었다. 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제주북초등학교에서 남로당 주도로 열렸고 행사 후 관덕정광장으로 진출했다. 긴장해 있던 경찰의 말발굽에 채여 한 아이가 쓰러졌지만 경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시위대는 경찰을 추격하고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과 당국의 대처는 온당치 못해 지역민의 울분을 돋우었다. 미군정당국과 이승만 측의 이익이 서로 맞아 떨어진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건은 그런 양상으로 흘러갔다.

  미군정과 이승만 측은 남한 만의 단독 선거라도 치르고 단독정부가 되더라도 정권을 수립하려 들었고 좌익은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반대했다. 510선거는 실시되었지만 제주도에서는 두 곳에서 국회의원을 선출하지 못했다. 정부의 수립과 출발에 옥에 티처럼 산뜻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미 군정당국도 자신들의 체면을 구긴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제주도 지역민에 대한 압박은 거세지고 좌익을 중심으로 무장대가 꾸려진다. 미군정은 토벌대를 보내고 그들은 경찰과 군인, 서북청년단을 비롯해 가용자원이 많았다. 한 공동체에서 전체적인 집단항거가 아니면 저항봉기세력이 승리하기란 근본적으로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전체적인 승리와 주도권은 항상 집권세력에게 있어서 그들이 너그럽게 대하고 양보하고 다소간 손해를 당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제주43운동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국가권력 혹은 집권세력의 잔인하고 참혹한 대처가 이어졌다. 그 일에는 경찰과 군인과 특정세력들이 동원되었다. 언제 어디를 가릴 것 없이 국가폭력의 현장에는 그들이 있었다. 그 폭력의 원인을 한두 꺼풀만 벗겨보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술수였던 경우가 너무도 잦았다. 정권의 유지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게다. 당시 상황의 잔악하고 끔찍한 모습은 묘사하기도 어렵고 원하지도 않는다.

  국가 기관이 권력에 부당하게 사용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누구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 하고 막아야 한다고 할 게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안이 쉽지 않다는 게다. 여러 방지 장치들이 있지만 집권자가 강한 욕망과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 제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게다.

  경찰은 국민의 재산보호와 치안을 지키기 위해 있고, 군인은 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굳건히 보위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들을 선발 혹은 징집하고 육성하고 명령을 하달하는 것이 국민이라기보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가권력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체제특성상 하급자가 상급자의 명령에 불복하기는 쉽지 않다. 상부로부터 명령이 하달되고 차량이 대기하면 차에 오를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운명이다.

  그들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정보와 그 판단도 문제가 된다. 그들은 집단생활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생활한다. 국가에 의해 동원될 때에는 거의 예외가 없다. 공정치 못한 한 쪽으로 치우친 정보가 제공되고 그들의 임무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으로 호도될 때, 개개인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고 그 판단을 밀고 나가기는 더욱 힘겹다. 한 현장에서 부딪히는 모든 이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을 정당하다고 여길 거란 말이다. 군인과 경찰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재교육의 기회가 얼마나 주어질까. 군인과 경찰들이 교육과 훈련에, 당장 해결해야할 많은 일들에 노출되어있고, 집권층에 의해 실시되는 교육은 그들의 이익에 반하기 어려울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한편으로 민주국가에서 군인과 경찰을 보유하지 말자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양날의 검이다. 특정한 사고나 질병으로 생명을 잃은 이들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군인과 경찰에게 생명을 잃은 이들이 더욱 많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로 이 땅에서 이루어진 일만 해도 여순 반란과 625의 아군에 의한 피해, 419와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다.

  이러한 끔찍한 일들은 국민의 민주화와 의식수준의 향상으로 그 가능성이 점점 적어지기는 하겠지만 다시 우리를 급습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잘못된 일에 대한 분명한 처벌과 사건의 참 모습을 파악하여 알리므로 미리 예방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국가권력이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잘못될 때를 대비해 스스로 대처하고 방비할 수 있는 장치들을 세밀하게 마련해 놓아야 한다. 그것이 평화를 갈망하는 제주43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잊어서는 안 될 값비싼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