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최인호의 인 연

변두리1 2018. 7. 5. 10:23

최인호의 인 연

- 세상은 다 연결된 하나다 -

 

  지은이가 편하게 쓴 글 같다. 독자들은 읽기 쉬워도 저자는 힘겨웠을지 모른다. 부모와 형제자매, 아내와 자녀, 풀과 나무와 살던 곳들, 이름도 없이 죽어간 이들까지도 인연의 줄로 얽혀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 송이의 꽃도 서로 관련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무관한 것이 없다. 국외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삶에 영향이 되어 돌아온다. 함께 사는 공동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구나 부모의 영향은 지대하다. 한 개인으로 의사결정이 가능하지 않은 수년간 가장 큰 영향을 그분들에게서 받으며 결정적인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저자의 부친은 변호사였단다. 이 사회의 상류층이었던 셈이다. 아버지께 안마해 드리던 기억을 되새기고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부친은 이 땅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긴다. 스물다섯 해가 지나 저자에게 전달된 유언은 아버지의 사랑을 전달해준다. 그 내용은 효력을 내지 못해도 가족을 향한 사랑은 남아 전해져 온다. 어머니의 생신잔치를 자녀들은 멋있게 해드리고 싶어 하지만 정작 본인은 조촐하게 하자고 고집한다. 가족들과 몇 친척들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도 어머니는 남은 음식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으신다. 어렵던 시절을 잊을 수 없으신 게다. 자녀에게도 향하는 모성은 본능일 게다. 그 덕에 자녀들은 별 탈 없이 성장한다. 어린 시절, 부끄럽기만 하던 어머니의 모습, 왜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처럼 예쁘지도 않고 화사하게 화장을 하지도 않으시나, 옷이라도 세련되게 입으시지, 남의 그릇에 콩이 더 커 보인다고 그런 열등감을 느끼지 않은 이들이 드물게다. 그 시절 어머니께는 그런 여절이 없었을 게다.

  형제자매들 사이에 갈등은 얼마나 많았던가.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니 부딪칠 일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 때문이었는지 온 가족이 한 방에서 한 이불 덥고 살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그립다. 자녀들이 집에 들어와도 인사만 나누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면 그만인 게 오늘의 가족관계의 현실인 것만 같다. 서로의 삶에 직접 영향이 오간다. 형의 모든 걸 물려받는 저자가 한 편 안됐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힘이 되어주는 게 형제요 자매간이 아닌가.

  대학 때 만나 결혼한 아내, 저자의 아내사랑은 대단하다.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남녀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도 상대를 사랑해야 결혼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산다는 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기적인가. 더하여 서로의 유전자를 나누고 많은 부분을 닮은 새로운 생명들이 자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일 수밖에 없다. 서로 독립하고 헤어질 때까지 많은 감정의 진폭을 경험하며 산다. 저자가 신혼 초에 목욕탕 이층에서 물난리를 만나고 그 와중에 부부가 산책을 하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순간에 보여주는 삶의 여유 같기도 하다.

  ‘봄의 냇가라는 춘천에 가서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흔적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과 전쟁시절 보냈던 피난지를 찾아 힘겨웠던 시절을 돌아보려는 모친의 행동은 닮아있다. 삶의 순간이 담겨있는 공간을 오롯이 돌아볼 수 있는 이들은 행복하다. 우연히 내 살던 지역을 지나다 유년의 때에 살던 집이 헐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음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쉬움과 아릿한 그리움이 스며들었다.

  그가 스승으로 모시는 황순원 선생과 친구처럼 지내는 안성기, 배창호 같은 영화인들, 짧은 만남에도 자주 기도해 준다는 이해인 수녀 같은 이들, 그의 글을 기다리며 읽어주는 독자들, 그의 핏줄을 타고 이 땅에 와준 외손자들, 모두 잊을 수 없는 인연의 끈들이다.

  사람들뿐 아니라 마당에 심겨진 나무와 풀들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풀 섶의 개구리 한 마리를 기억하고 다시 보고 싶어 한다. 버려진 난을 들여와 때맞춰 물을 주었더니 꽃대가 벌고 꽃을 피웠다고 감탄하고 즐거워한다. 옷과 신발 같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연결된 인연이다.

  건축과정에서 부딪친 이웃과 맺어진 인연들, 한적한 곳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자신의 일처럼 나서 도와준 천사 같은 사람들. 저자는 그들을 천사라고 말한다. 천사들이 때로는 우락부락한 모습으로 곤경의 때에 나타나 감동을 준다. 지은이는 자신도 남들을 향해 그런 천사가 되고 싶으리라.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게 연결되어 있는 인연이요, 고마움이다. 뜰에 심긴 꽃과 나무들이 철을 따라 열심히 살아내 꽃을 피우고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도시 한복판에 벌과 나비가 찾아 날아온다. 그들이 가루받이를 하고 열매 맺고 통통해져 가을햇살에 익어간다. 그 생명들이 내어주는 열매를 먹으며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했던 이가 방문했던 인도의 그 어느 곳, 그가 바라본 비행기 창문 밖의 아름다운 풍경과 찬란한 햇빛들,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결심을 만들어낸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보고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형편이 되어보면 좋겠다. 최근 들어 인간들이 고통을 준 긴 세월을 이어온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생물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