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목민심서(牧民心書)

변두리1 2018. 7. 1. 19:20

목민심서(牧民心書)

 

  다산연구회에서 편()하고 역()했다. 꼬박 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니 쉬운 일이 아니었겠다. 겉표지 안쪽에 있는 연구회회원 명단을 보니 열여섯 분 모두가 교수들이다. 그 바쁘고 유능한 분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힘이 들었을지 짐작도 못하겠다. 원저자 정약용은 1762년 현 경기도 남양주에서 출생해 1836년 향리에서 별세했다고 한다.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다. 그 기간에 많은 책들을 펴낸다. 자서(自序)에서 목민(牧民)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어 심서(心書)라고 했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읽기만 할 뿐이니 목민독서(牧民讀書)라고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산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많은 예를 들어서 수령과 현감들이 어떻게 맡은 지역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세세히 기록해 놓았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피곤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진다. 그런 이들 앞에 서면 한없이 왜소해지는 자신을 볼 수밖에 없을 게다. 당시 수령과 현감 같은 이들에게 과중한 업무를 맡긴 건 아닌가 싶다. 혼자 그 모든 업무를 수행하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날에 대여섯이 감당할 일을 혼자서 해낸 셈이다.

  수령과 현감들이 그 지역을 잘 치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실무를 담당했던 아전과 향리들, 그들은 하나같이 악역을 하는 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지역민들을 사랑으로 돌보던 아전과 향리들이 그렇게도 드물었을까. 수령과 현감들을 염두에 둔 글에다, 실행의 기록이 아니라 교훈의 글이니 그러려니 생각한다.

  홀아비 고아 과부 병자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나이가 찬 청년들과 처녀들의 문제, 교육의 진흥 같은 항상 문제가 되는 쉽지 않은 일들을 대하면 사람살이가 언제나 쉽지 않다는 걸 느끼며 행정으로 풀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참 마음으로 지역민들을 대하지 않고 치부(致富)의 수단과 출세의 과정정도로 여기면 양편이 결코 행복하지 못하고 길게 갈 수도 없다. 수령과 현감들이 어떤 일의 결정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형벌을 함에 있어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려하면 피해를 당한 이가 억울해 할 것이고, 그것이 선례로 남을 테니 그럴 수 없고, 가해자의 사정을 들어보면 처자와 늙으신 부모들도 있을 것이고, 한 때의 잘못에 불행을 겪을 이들이 너무 많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게다. 수령과 현감은 외부에서 부임하는 일정기간을 봉직하고 떠나갈 이들이고 아전과 향리는 그 지역에서 살았고 언제까지나 함께 할 이들이니 아전과 향리가 지역민에게는 더 직접적이고 두려운 존재였을 게다. 지역 형편을 잘 알지 못하는, 일정기간 후에는 떠나갈 이들에게 그 지역의 전문가요, 협조하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이들인 아전과 향리들이 그건 이 고을 실정과 맞지 않다고 우길 때, 그들을 누르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삼정의 문란으로 익숙한 군정(軍政), 전정(田政), 환곡(還穀)에 있어서 그들의 농간을 읽다보니 치가 떨린다. 어쩌면 쥐꼬리 같은 권력으로 그렇게 지능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그러고도 그 지역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인다. 수령과 현감들이 어떤 태도로 맡겨진 일에 임하는가에 따라 지역민들의 형편이 너무 달라졌겠다고 여겨진다. 가짜와 진짜의 구별이 쉽지 않듯, 송덕비까지도 강요하고 또는 스스로 세우는 한심한 일들도 적지 않았단다.

  고금을 막론하고 탐욕과 쾌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재물에 있어 청렴하고 성적(性的)으로 절제할 수 있다면 훌륭한 관리가 될 수 있었겠다 싶다. 명예와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빠지는 함정들이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가. 그것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늪처럼 헤어나지 못하니 그 강력한 흡인력이 두려울 뿐이다.

  목민에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지역민을 가족처럼 여기는 게다. 통치의 대상으로 알거나 승진의 과정으로 여기면 제대로 돌볼 수 없다. 그들 자체가 목적(目的)이 되어야지 수단(手段)으로 취급될 수 없다는 게다. 수령과 현감으로서 분명한 철학과 자존심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휘하에 있는 관리뿐 아니라 동료와 선후배, 가족과 친인척들, 지역의 유지들과 무시할 수 없는 이들과의 관계까지도 얼마나 힘겨운 짐이었을까. 가끔 중앙에서 파견되는 감사들과 암행어사들을 대하기 어렵기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몸가짐을 조심하고 욕심을 경계하는 방법밖에 없겠다. 다산이 얼마나 많은 그릇된 관리들을 보았으면 책으로 남겨 교훈하고 싶었을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 시대의 관리와 지역민들보다 어려움에 빠질 근본적 유혹은 적다는 게다.

  내 자신이 목민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마음가짐은 필요하다. 교회를 섬기고 신자들을 돌보는 일도 목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권리를 주장하려 하면 비교가 되지 않지만 의무를 꼽아보려 하면 분명히 더 많으리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한순간에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가다듬고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