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청춘의 독서

변두리1 2018. 6. 22. 16:02

청춘의 독서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

 

  백분 토론을 거치며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가 국회의원을 하고 노무현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행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내 성향 때문인지 이유 없이 싫어하게 된 이가 저자 유시민이다. 근거 없이 얍삽하게 느껴졌다. 주는 것 없이 밉다는 말이 딱 맞는 듯하다. 방송을 보다가도 그가 나오는 방송은 피하게 되었다.

  이 책을 보니 그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을 나이 들어 다시 보면서 새롭게 느끼기도 하고 젊은 때에 보지 못했던 것을 세월이 흐르고 알게 된 것들을 기록해 놓았다. 어린 시절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세계사 선생님이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사회적인 분야에 더 일찍 관심을 갖고, 집에 놓여 있었을 많은 서적들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을 게다.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책을 읽으셨다는 부친, 그 분위기에 젖어 습관이 일찍 형성되었음직하다. 그 당시에 서울대에 진학했으니 유전적인 면도 있었겠고 노력도 대단했을 것임을 알겠다. 가족이 다 한 가닥씩 하는 것 같다. 나라와 국민으로 고마울 뿐이다. 누이도 작가이고 딸도 똑똑하다고 한다. 부럽기가 한이 없다.

  그가 젊었을 때 읽었다고 하는 책들을 보니 대단하다. 러시아서적을 특히 많이 읽었던 모양이다. 사회학도여서 그런지 그 계통이 여럿일 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책들이 두루 언급되어 있다. 대학에서 했던 동아리 활동, 농촌법학회의 영향도 컸을 듯하다. 또한 치열한 현장에서 날카롭게 바라보고 고민했을 테니 더 상승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열네 권의 책들 가운데 저자의 젊은 시절의 두 배쯤 되었을 지금의 나는 대충이라도 읽었다고 할 만한 게 두 권, 낯설지 않고 일부라도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두 권이다. 민망함이 일긴 하지만 서로 다르다는 걸로 위로를 삼을 수밖에 없다.

  그의 책읽기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조금은 알겠다. 책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지난날의 그의 삶에서 지식인답게 살려했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나름대로 진지한 문제들, 지금 생각해도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각 책들에 들어있다. 좋은 책, 긴 세월 속에 검증된 고전들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제시하고 독자들로 생각하게 하는 책들이다.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 느꼈을 감정들을 생각한다.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은 공산당과 사회주의의 실험이 휩쓸고 지나가 웬만한 답을 알고 있다. 당시에 젊은이와 식자층에 불었을 그 거대한 바람은 추측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자신들의 국가와 사회의 모순을 보면서 모든 해결책을 제시해 줄 듯한 이론을 대할 때, 누군들 흥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만날 때, 미래를 알 수 없으니 과거를 참고하는 걸 탓하기 어려웠을 게다. 어쩌면 그러한 일단의 고민과 이상과 현실이 보여주는 괴리의 아픔이 최인훈의 광장에서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다. 남북한 어디도 택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가다가 연인과 딸이 다가오는 모습으로 연상되는 새들을 보고 바다로 뛰어든다. 그 말로 할 수 없는 고민을 죽음으로 그들을 따라가고 함께 하려는 듯하다.

  어렵다는 다윈의 종의 기원, 내 생전에 읽어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이 책만큼 근현대의 인류사에 영향을 끼친 책도 몇 되지 않으리라. 인간의 사고를 근본부터 흔들어놓아서 생물분야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변화를 일으켰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 발전의 동인으로서의 진화는 근본적 토대를 다시 정비하라고 요구했다. 유한계급론도 적지 않게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진보와 빈곤까지 함께 곁들이면 발전과 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현실감을 상실한 듯한 부의 축적, 상대적으로 같은 생명을 가지고 동시대에 태어난 많은 이들은 절대적인 빈곤을 벗어나지 못해 죽음에 직면해 있는데, 축적과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소수의 천문학적 부의 편중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부러워해야 하는가가 의문이다. 가난한 이들이 세금을 내고 인력을 제공해서 그들의 재산을 지켜주는 것이 바른 일인가. 그러한 부를 소유한 소수에게 그것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인간적이지도 못한 범죄이고 동료들의 것을 나누어 주지 않은 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유한계급은 품질과 무관한 높은 가격의 제품으로(어쩌면 명품이라는), 자신들의 부와 계급을 과시하고 증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 속물스러움을 느낀다. 도시가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할 때, 그 경제적 이득이 토지소유주에게 돌아간다는 설명은 상식적이지만 받아들이기에는 고통이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몸을 재산으로 여기고 사는 이들에게는 절망적인 현실이다. 그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도 한편 가상하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법제화에는 항상 제동이 걸린다. 현 제도에서의 최대의 수혜자요, 개정으로 가장 많은 걸 잃을 이들이 법을 다루는 이들이기에 백년하청의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언론에 의해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카탈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투입된 것이 산출된다는 원칙에 비추어보면 어떤 정보를 접하는가가 중요하다. 그 정보를 제작하고 가공하는 이들에 의해 대중의 생각이 움직여진다. 그 기업의 생리가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음에 문제의 근원이 있다. 사회가 어떻게 성숙해 가는가에 열쇠가 있다. 변화에 민감해서 현 상황에서 과거를 비추어보고 과거의 연장선에서 현재의 문제들을 해석하고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하리라.

  지식의 축적이 인류의 특징이요 위대한 점이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점점 더 얄팍한 흥미에 몰두해 가는 것 같다. 개인의 성숙뿐 아니라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진지한 독서의 기풍이 일어나고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그 일에 저자 같은 지식인들이 더 많이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가 나름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