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적 고통
숙명적 고통
어제 사온 우유가 이상하다. 길쭉한 종이 곽이 볼록해, 열어 조금 맛보니 심상치 않다. 유통기한은 남아있고 물러달랄 사이도 아니니, 버리는 수밖에 없다. 밤 지난 나물국도 쉰 맛을 풍기고 있다. 음식을 버릴 때는 늘 부모님 생각이 난다. 부모님은 양식을 걱정하시며, 마음조리며 평생을 사셨던 것 같다. 좁은 꽃밭을 파고 상한 음식을 묻는다.
모종삽으로 한편 흙을 파 빈 곳에 놓다가 흠칫 놀랐다. 몇 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고 소름이 돋는 분홍갈색의 무리들이다. 정작 놀란 건 자신들이라는 듯, 격렬히 온몸을 흔들며 뒤챈다. 지렁이다.
지렁이에게는 재난일 게다. 예고 없이 닥친 일에 대응이 쉬울 리 없다. 눈과 귀와 코가 없단다. 어떻게 살아갈까. 그 기본적인 기능들이 없이 생을 살아내는 게 안쓰럽다. 입과 배설기관과 암수 한 쌍의 생식기관만 있을 뿐, 다리도 없어 빠르게 도망도 못 가는 극히 불리한 생존조건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땅과 식물에 크게 기여하는 이로운 존재다. 토질을 기름지게 하고 흙속에 공기가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좋은 일을 하면서 혐오를 당함이 애석하지만, 언제보아도 깜짝깜짝 놀랄 뿐 정이 가지 않는다. 얼마나 억울할까. 힘써 자신의 역할을 다해도 사랑은커녕 오해 속에 미움을 당하니 원망스러우리라.
지렁이 중에는 낚시 미끼로 쓰이는 것도 많은 모양이다. 얼마나 원통할까. 스스로의 몸에 바늘이 박히는 고통을 겪고, 생명을 빼앗기며 하는 일이 물고기를 유인해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이라니…. 속 모르는 물고기들은 또 얼마나 그들에게 한을 품을까. 지렁이의 유혹으로 불의에 생명을 잃었다고 하리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냄새 맡지 못한 채 고통에 몸부림친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그것도 스스로 원해서 한 일도 아닌 것을.
그들은 새, 쥐, 개구리, 개미를 비롯해 많은 생명체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지렁이가 어떻게 그들을 피할 수 있으랴. 다리도 없이 마디로 온 몸을 밀고 당기며 느릿느릿 움직일 뿐이니 생명을 지킬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지렁이로부터 유익을 얻지 않는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흙에서 출발하여 식물과 곤충을 거쳐 새들과 사람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익을 누리면서, 모두가 그들을 너무 못살게 구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무엇인가의 생명을 에너지로 삼아야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게 생태계의 피할 수 없는 법칙이다. 이 냉엄한 현실 속에 어떻게 그토록 무력하게 운명이 정해졌을까. 사랑스럽게 생기든지, 다른 종보다 신체조건이 더 낫든지, 도망이라도 빨리 갈 수 있든지, 아니면 악취나 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배운 이들은 그래도 그들을 대우해 준듯하다. 힘없는 그들을 벌레라하지 않고 이름이라도 동물로 인정해 환형동물이라 불렀다. 또 약을 짓는 이들은 그들의 효험을 알아 지룡(地龍)으로 인정했다. 하늘에는 익룡(翼龍), 물속에 수룡(水龍), 그리고 그들이 땅에 지룡(地龍)이다.
처지를 비관해 사라지지 않고 맡은 바 역할을 감당하고 운명을 받아들여, 대를 이어 이 땅에 살아온 지 수 억년이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긴 세월을 그들은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다.
눈 귀 코와 다리가 없어도 큰 불편이 없는 곳, 땅 속에서 긴 세월을 살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빛과 진동에 대한 감각에 의지하여, 앞에 놓인 알 수 없는 삶을 순간순간 살아간다.
상해가는 음식들을 쏟아 붓고는 조심스레 흙을 덮는다. 눈에 거슬리는 그들의 몸부림을 보며 가능하면 흙속에 넣어주려 마음을 쓴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더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며 살고 싶다.
열악한 삶의 조건에서 생태계에 큰 도움을 주는 지렁이를 보며 생각한다. 지렁이와는 비교자체가 안될 만큼 대단한 재능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생태계에 이익은커녕 큰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지…. 그 결과를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의 한시적인 편리함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다. 더하여 항상 지역과 나라와 인류의 복지와 발전을 위한다는 변명을 한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지렁이보다 못한 존재라는 책망을 들을지도 모른다. 여름이 더 더워지고 하늘이 뿌연 것이 꼭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어울려 위로받고 잊어버리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사는 것이 인간들이다. 좋은 일을 하고도 생명을 위협받으며 숙명적인 오해와 고통을 겪는 지렁이들만 안됐다.
사는 곳을 망가뜨리며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들, 온 몸으로 망가져 가는 것들을 고치며 고통 속에 오해받는 지렁이들, 그들 처지가 모두 불쌍하다.
왠지 상한 음식을 땅에 묻고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