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볼 수 있다면…
멀리 볼 수 있다면…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한반도를 둘러싼 현 정세가 그러하다. 예측이 어려운 이들이 나라를 이끄니 만만치 않다. 올 정월만 해도 바짝 마른 들판 같은 형세에 작은 불씨만 튀어도 한반도와 미국이 전쟁터가 될 듯했다. 한겨울 평창(平昌)에서 시작된 평화[平]의 확산[昌]이 무성한 잎사귀를 내면서 남북정상회담을 넘어 북미정상회담으로 벋어가고 있다. 당사국뿐 아니라 온 세계가 마음을 모아 좋은 결실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총력을 기울여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하고 있다. 미국과 있을 때는 미국편인 듯하고 북한과 있을 때는 또 북한편인 듯하니, 그 고생이 얼마나 심할까. 착한 듯 보이는 양반이 두 거친 이들 사이에서 늘 치이는 것 같다. 내 보기에 트럼프는 문대통령을 신뢰하는 것 같지 않고 김정은은 너무 아쉬우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아닌가 한다.
내적으로는 두 전직대통령을 옥에 가두고 나라를 여러 가지로 나눠 놓았다. 오늘이나 내일을 향한 대비보다 과거의 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밖으로는 전통적인 외교노선을 버리고 반미(反美), 혐일(嫌日), 친중(親中), 종북(從北)의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여기저기서 보여주는 얕고 순진한 모습도 불안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4⦁27 회담으로 나라의 분위기를 한층 띄워놓더니, 대통령과 그 일행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배가 부른듯하다. 남북고위급회담이 북의 트집으로 연기되고 핵 실험장 폐기행사에도 취재진이 따돌림을 당하다 가까스로 갔다. 트럼프와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무시를 당하고 20분 남짓 정상회담을 하고도 북미정상회담을 99.9% 확신했다. 돌아와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트럼프는 북미회담을 취소하고, 북한은 허세가 통하지 않음에 당황하면서 급히 얌전한 태도로 꼬리를 내렸다. 중국을 든든한 배후로 두려던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김정은은 서둘러 문대통령을 찾았다. 대통령은 반가워 달려가고 남북관계가 밀월을 맞은 듯 자랑한다. 트럼프는 기선을 제압한 듯, 북미회담을 밀어붙이니 우리의 절실한 문제들이 북미에 의해 결정되어간다.
내 판단력이 시원찮지만 왜 내 나라 대통령이 하는 일보다 천방지축 같은 예측 못할 트럼프의 행동에 더 공감이 가는 걸까. 북은 나름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어쩌면 당면한 경제문제의 해결과 시간을 벌 목적으로 회담에 임하지 않나 싶다. 미국은 자국에 위협이 되는 핵미사일 해결에 전력을 기울일 게다. 온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에 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민주국가의 위대함은 모두가 마음을 모아 일을 해결해가는 민주적 과정을 중시함에 있다. 그 일을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언론이다. 하나같이 잘되리라고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잘 안될 때를 걱정하는 그 재미도 인기고 없는 일을 자신의 일로 알고 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건 무슨 의도인가. 많은 국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현 정권의 집행부가 진보좌파라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장거리 핵미사일만 확실히 제거하고 핵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거나 핵 기술자를 소수라도 남겨두면 우리에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를 외치며 남한의 핵우산은 제거하고 북핵은 잔존하는 경우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미군의 완전한 철수와 연합훈련의 금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도 우리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 싸움을 거쳐 엎어질 위기를 넘고 미⦁북 회담은 이제 세기적인 지구촌의 이벤트가 되고 있다. 두 정상이 모두 외부에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즐기는 돈키호테 같은 이들이니, 어떤 경우에도 외부적으로는 대단한 성공이라고 포장되어질 게다. 그 후로는 미⦁북 관계가 호전되고 수교를 위해 노력하면서 제재는 느슨해지고 경제지원이 활발해지리라. 북한이 원하던 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여기까지만 해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하나있다. 그동안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온갖 고생을 겪게 하고 핵을 가진 게, 진정 잘한 일이란 말인가. 핵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해도 경제발전과 체제보장이 된다면 가장 효과적인 일을 해 온 셈이다. 온 인류에게 위협을 안기고 막무가내, 폭력배처럼 처신해 온 걸 더없이 잘 한일이라 해야 하는가. 북한과 비슷한 국가에서 북한 따라 하기에 나선다면 무슨 논리로 그들을 억제할 수 있으려나.
북⦁미 회담을 앞두고 아무리 여러 번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평화분위기가 무르익는다고 해도 이 땅에 항구적인 평화가 오고 다시는 전쟁이 없을 듯이 기뻐할 수는 없다. 이산가족들이 서로의 가정을 오가며 만나고, 남북의 명승고적을 방문해 관광하고, 문화와 스포츠교류가 줄을 잇는다 해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집단이나 국가 사이에 언제나 갈등은 생길 수 있고, 무력충돌로 번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와 대통령을 미더워하지 못하는 게 내 소심함과 성격 탓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철저한 대비가 없으면 장밋빛 꿈은 오래가지 못한다. 한 주, 한 달이 아니라 적어도 오 년, 혹은 십 년 앞을 준비하는 현명한 국민, 그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현명한 지도자가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