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굳어짐에 대한 경계

변두리1 2018. 4. 20. 11:17

굳어짐에 대한 경계

 

  팝 아트 분야 대표적인 화가 다섯 사람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하는 곳이 있었다. 대단하다는 이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짧은 시간 스치듯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시대에 유명한 이들이어서 대개 작품 한 점이 수백억 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거리로 나온 예술전시회의 부제다. 익숙한 듯 낯선 그들의 이름, 그들의 노력과 시선과 개성이 내 눈을 잡아끈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진선미를 추구하는 진지한 고민은 없다. 권위와 특권의식에 저항하면서 상업주의를 활용하려는 강한 의지를 본다. 폐자재를 이용해 예술품을 만들고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것들이 예술임을 보여준다. 지하철에 낙서한 것이, 신문이나 잡지를 오려붙인 것이, 그대로 작품이 되었고, 만화가 대중에게 친숙한 예술품으로 재탄생했다. 권위 있다고 하는 작품들이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금기를 없애자는 것이리라.

  작품 앞에 서서 제목을 읽으려하고 작품 속에서 구체적 형상을 찾으려하는 나 자신을 본다. 정의되어지고 의미 있는 모습을 통해 편안함과 안정을 찾으려는 게다. 추상적이고 애매한 모습에 어쩌지 못하고,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려는 내 행동에 마음이 쓰인다. 아무 선입견 없이 편안하게 느끼고 작가가 의도하는 바와 다른 것을 생각한다고 해서 잘못될 건 없다. 최소한의 공통경험이 있으면 비슷하게 느낄 게고, 작품에서 전해지는 자극에 나름대로 반응하는 게 자연스러움이다.

  누구였던가, 모나리자에 낙서를 하듯 가위표를 치기도 학고, 수염을 붙였다 떼기도 했다. 유명인의 그림을 받아 며칠을 애써 지우고 빈 종이를 전시하고는 지워진 작품이라 이름붙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화실을 아예 공장이라 이름 짓고 많은 작품을 찍어내기도 했다. 판화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었나 보다. 꼭 원작이 하나일 이유가 있느냐는 거다. 마릴린 먼로를 대상으로 색의 배치를 달리한 많은 작품이 있다. 느낌이 다 다르다. 어떤 게 낫고 못하고를 따질 게 무엇이 있는가. 개인의 기호에 따라 즐기고 선택하면 족하다.

  상업성을 보여주듯 캠벨사의 수많은 캔 상품을 그대로 나타낸 작품이 있다. 쇼핑몰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게다. 이걸 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없느냐는 항변과 저항이 담겨있다. 일련의 코카콜라 작품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읽는다. 특별함이 별 건가. 일반적인 게 특별할 수 있다는 걸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러고 보면 보통사람이 위대한 게고 그들이 역사의 근본이요 이 시대의 주인공들인 게지.

  그들의 시선과 의식이 예술을 대중들의 눈높이로 끌어내린 것이요, 일상을 예술이 되게 한 게다. 학창시절에 보고 배웠던 지도책은 가변성이 없는 누구에게나 같은 크기와 축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터넷과 모바일 지도는 가변성이 놀랍다. 필요한 만큼 확대하고 축소하고 당겨보고 길을 따라 가보기도 한다. 이 놀라운 다양성과 실용성이 어디에서 온 걸까. 사고를 고정시키지 않은 유연성이 아닐까.

팝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 대중적인 게 인기 있는 것이요, 인기 있는 건 대중적인 게다. 군중을 신뢰하는 거다. 마치 좋은 상품은 많은 이들이 살 것이고 많은 이들이 찾는 게 좋은 상품이라는 논리다. 이 지점에서 시류에 영합하는, 진지함과 깊이의 결여가 문제 될 수 있다. 어느 칼럼에서 요즈음의 TV대화를 분류해 보았더니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진짜대박이라 했다. 이 두 단어로 추임새를 넣으면 지루함 없이 긴 대화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어휘가 추임새로 쓰인다고 하면 서로 나누는 대화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서 일어난 시시콜콜한 이야기, 다른 이들을 흉보는 내용, 해외에 다녀온 여행담과 쇼핑, 자기 자녀들에 관한 고민을 빙자한 자랑들이 아닐까 싶다.

  유연한 사고와 더불어 필요한 게 진지한 성찰이다. 이 둘이 함께 가야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고가 굳어져 간다. 자신의 틀에 갇히는 게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사고방식을 과신하고 새 것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기존의 틀이 익숙하고 편하다.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오해도 유연성의 부족에서 올 수 있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경우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것들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이 사용한 방법으로만 이해하려 할 때 상대를 오해하게 된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처음 보게 된 팝아트 그림은 왜 유연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마르셀 뒤샹은 유명 전시회에 시중에서 판매하는 변기를 설치하고는 이라 제목을 달았다. 많은 이들이 항의를 하고 그 작품이 철수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런 시도가 오늘의 팝아트를 이루어 냈다. 그 때에는 설치작가 외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다. 사고의 유연함이 부족했던 게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많은 이들이 그 유연함을 받아들였다.

  시대에 너무 뒤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굳어짐을 경계하고 유연함과 진지한 성찰을 함께 갖춰 나가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