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성악가 조수미의 힘겨운 삶과 사랑 -
여러 콩쿠르에서 1위를 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세계 주요 5대 극장 무대에 섰다는 여인, 한 해에 330일 가량을 공연을 다니며 집 아닌 곳에서 머문다는 불쌍한 여인이 조수미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 극찬을 받으며 최고의 밤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듣는다. 신의 은총을 받고 여러 번의 우연, 은혜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행운을 누리고 무수한 노력으로 도달한 정상을 지키는 성악가, 그가 조수미다.
누군가 그녀에게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 무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자신감’이라 대답한단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올까. 어렸을 때 그녀가 무엇을 하든, 폭풍처럼 퍼부었던 부모님의 칭찬이란다. 거듭되는 칭찬에 자신은 무엇이든 잘한다고 생각했더랬다. 비슷한 능력이었을 테지만 칭찬을 들으니 더 열심히 해서 자신감이 생겼을 거란다. 주변에서 인정을 받으면 자신감이 솟구친다.
그녀는 성공을 재능에 노력이 더해진 것으로 설명한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에 피나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일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수미와 같이 콩쿠르에 세 번 참여해 번번이 그녀에 밀려 2등을 한 루마니아 사람 레오티나 바두바라는 소프라노가 있다고 한다. 왜 그녀라고 재능이 없고 덜 노력했다고 하겠는가. 일등은 한 명 밖에 없다. 일등만 필요하고 살아남는 세상은 아니다. 자신의 일에 전문가가 되는 게 중요하다.
한번은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한 주간 휴가를 갔단다. 한 주간의 휴가가 쉽진 않지만 강아지와 함께 가서 다 잊고 푹 쉬고 새 힘을 얻고 돌아 왔단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이 “너무 연주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에게 헌신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충고가 철저하게 휴식을 취하라는 의미라는 걸 그 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철저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일과 휴식이 잘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살면 ‘일도 휴식, 휴식도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자세로는 제대로 어떤 일도 해내기 어렵다.
그녀의 오늘을 있게 해준 결정적 순간에 만난 사람들과 주어진 재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면 스스로 내세울 일이 아니라할 수도 있다.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타고난 절대음감과 기억력, 시기적절하게 조언하고 도와준 이들. 그러한 요소들이 그녀의 성공을 만든 한 부분들이다. 피아노와 성악의 갈림길에서 성악으로 강력하게 권해준 유병무 선생, 젊음의 한 때를 방황하며 소비하고 있을 때 유학을 하도록 인도한 이경숙 교수, 곳곳에서 만난 고마운 이들이 은인일 수밖에 없다.
노력해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그로인해 피곤한 삶을 사는 건 행복이며 그 과정의 힘겨움은 복에 겨운 투정이다. 보통사람들은 노력한다고 최고가 되지 못한다. 온 힘을 쏟아도 큰 성과가 없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던가 하는 자책을 피하지 못한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다. 최고의 고통을 ‘백척간두에 서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아래로부터 후배들이 계속 밀려와 가만히 서있을 수도 없고, 발을 내딛자니 발밑은 까마득한 허공으로 스스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찔한 추락만 기다리고 있는 자리가 최고의 위치라는 것이다.
겨루어 져본 적이 별로 없고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오만, 애인이 있다는 이에게 사귀자고 대드는 자신감, 그런 풋내기에서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무수한 천재들과 부딪쳐 자신을 갈고 닦아 불리한 면들을 장점으로 만든 여인, 한국인들은 그녀가 자랑스럽다. 될 수 없는 것을 재능으로 감동시켜 거장들을 움직이게 해 이루어낸 각기 다른 세 개 회사에서 3년 만에 나온 마술피리 음반들, 그를 위한 거장 ‘솔티’의 호소를 담은 끈기와 기적 같은 반전들은 그녀의 대단함을 웅변하고 있다.
힘겨운 삶을 극복해 나가는 그녀만의 방법, 셈치고 놀이. 자신의 것을 지키고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물질적이고 외적인 조건이 곧 성공과 행복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일정에 쫓겨 살아가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다. 본인의 진술대로 노래가 그녀의 전부이고 존재이유다. 그를 위해 그녀의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인기를 누리고 사는 유명인의 삶, 다수가 그렇게 되기를 꿈꾸며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삶이 꼭 행복하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재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삶의 갈림길에 은인이 나타나 꼭 필요한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내 삶을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게다.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에서 천재를 만나면 그와 한 시대를 사는 걸 감사하고 인정하고 능가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앞서가는 이들을 시샘할 게 아니라 그들이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방향을 정하려 애쓰지 않고 뒤를 따라가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를 감사하면 된다. 언젠가 그가 사라지는 순간이 오면 그 힘든 일이 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앞서 방향을 잡을 필요가 없다면 그것도 즐기며 살 일이다. 꼭 최고가 아니라도 즐거운 인생이면 행복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