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일을 한 게지
내가 무슨 일을 한 게지
서준이 생일 파티다. 나와 우리 반 네 친구가 초대를 받았다.
“야, 조금만 쉬자”
“과일 좀 먹고 편히 놀다 가라”
한 시간이 넘게 먹고 얘기하고 게임을 했다. 이런 날은 참 좋다. 엄마도 학원 빠지는 걸 이해해 준다.
“아버님, 이제 오세요?”
“할아버지, 오늘 내 생일이라 친구들을 초대했어요. 다 같은 반이예요”
서준이 말에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잘 놀다 가라고 말씀하시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셨다.
“할아버지, 오늘 내 생일이고 친구들도 있잖아요, 진짜 재미있는 얘기 하나만 해 주세요”
“응…, 그럼 오늘은 이야기를 보여 줄게. 친구들이랑 내 방으로 오거라”
서준이는 이야기를 듣는 게 신이 나는지 우리에게 얼른 가자며 앞장서 할아버지 방으로 갔다.
“벌써 왔어? 내가 아주 유명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보여주지”
할아버지께서 리모컨을 누르자 커튼이 처지고 방이 캄캄해지더니 큰 화면이 나타났다.
“못을 박아라”
“땅. 땅. 땅. 땅….” 방 안 가득 망치소리가 울리고 여기저기서 탄식소리가 흘러나온다. 고통으로 이를 악문 텁수룩한 한 아저씨가 망치질을 할 때마다 몸을 떨며 비명을 참아내고 있다.
“일으켜라. 똑바로 세우고, 흔들리지 않게 잘 고정시켜라”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저 녀석에겐 안 됐지만 며칠 걸려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일만 남았다. 구경꾼과 지인들이야 저 녀석이 숨을 거두면 다 가버릴 거고 그 후에는 소수의 경비병을 남기고 우리도 철수할 것이다.
이곳은 유월절 즈음에 해마다 비상근무를 한다. 예루살렘에 파견된 로마군 백부장으로 세 해 째다. 이 사건이 로마도 무시하기 어려운 주요 문제가 되자 사건 책임자로 내가 지명되었다. 한 달여간,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어제 저녁 녀석의 제자였다는 제보자의 협조로 체포에서 처형에 이르기까지 너무 순조로웠다.
“조장들, 들어라. 놈들이 전면에 있다. 작전대로 행동한다. 모든 조 정위치. 선발조, 행동개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탈자가 군병을 이끌고 나타나니 저들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 건장한 사내가 칼을 가진 모습이 보인다. 저들도 주모자를 보호하려 둘러싸고 있다.
“쥬다스, 네가 입맞춤으로 나를 파느냐?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
칼 가진 사내의 작은 돌발행동이 있었지만 그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찾는 게 누구요?”
조금은 슬픔에 잠긴 듯하고 낮지만 묵직한 위엄 있는 목소리였다.
“나사렛 예수를 찾고 있소”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안전히 가게 하시오”
잡히는 그가 아닌 오히려 우리 편이 당황스러웠다. 선발 체포조는 땅에 엎드러졌다.
“체포하라, 단단히 묶어라. 대제사장 관저로 간다.”
감람원에서 그를 체포해 지체치 않고 호송했다. 대제사장 관저에서 총독공관을 거쳐 헤롯 궁으로 또 다시 빌라도 총독에게로 숨 가쁘게 이송을 거듭하고 매번 비슷한 심문이 날카롭게 밤새워 계속되었다.
‘내가 이렇게 피곤한데, 놀랍게도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전면에는 십자가 세 개가 서있다. 썰렁한 언덕, 언제던가 처형당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러 간혹 유골들이 눈에 띄고, 언덕 모양이 해골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 골고다.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머문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서…, 당신 뿐 아니라 우리를 살리라고”
“야, 하나님이 두렵지 않냐? 이 분은 죄가 없어, 그 나라가 임할 때에 저를 기억하소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처참한 고통을 겪으며 저들은 뭔 얘기를 하고 있는가. 종교와 정치의 최고 권력자들이 그에게 심문한 건 결국 한 가지였다.
“당신이 왕인가? 왕이면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왕이다. 내 나라는 여기에 있지 않다”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당당하게 마치 당연히 겪어야 할 것 인양 참고 견디는 모습이 힘과 위엄을 느끼게 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온 이들과 이 사람의 다른 점이 무얼까.
잡히지 않으려 숨고 도망치고 최후의 항거를 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이 사람은 왜 살려 달라고 애원, 호소, 협박에 발악을 하지 않는가.
“나사렛 예수, 십자가 처형. 금일 아홉시 집행에 처함”
이례적으로 빨랐던 재판, 여러 불법요소에 신속하다 못해 당국이 위기를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 집행, 이것들은 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십자가형 선고를 받고 처형장으로 가는 ‘슬픔의 길’800미터. 그 길을 따르며 가슴을 치고 슬피 우는 이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인가.
더욱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빌라도 총독은 이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세 번씩이나 공언하고도 십자가형을 선고한 이유는 무언가.
군중들도 그렇다. 유월절 특사로 살인자 바라바와 이 사람을 선택하라 했을 때 당연히 이 사람을 선택할 걸로 알았는데 왜 살인자를 살려주라 했을까.
“할아버지, 무섭고 재미없어요. 친구들도 다 자는 거 같아요.”
“그래, 나는 눈물이 나는데…, 재미가 다는 아니지, 너라도 조금 더 봐.”
“백부장님, 성전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위 아래로 완전히 찢어졌다고 합니다.”
“그래…? 알았다. 평소와 다른 일은 계속 보고하도록 해”
무슨 일인가? 그러면 거룩함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건가. 대제사장이 아니어도 지극히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혹시 지금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갔다는 말인가? 따듯한 봄 날씨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다.
‘ 이 분이 죽은 후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지.’
어쩌면 범상치 않은 이 사람이 평소에 했던 말처럼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병사들은 시끌벅적 주사위 놀이를 한다. 세 사람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현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행하고 통으로 짠 속옷을 차지하기 위한 게임으로 심심함을 달래는 것이다.
‘유대 경전에서 비슷한 상황을 읽은 듯하다.’
이 사건을 맡고 이 분에 대해 집중적인 감시를 하고, 소문을 수집하고 유용한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를 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으로 오천 명을 먹였다”
“눈 먼 이를 보게 하고 다리 저는 이를 온전케 했다”
“바람을 그치게 하고 풍랑을 잔잔케 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니 말라 죽었다”
“죽은 이를 살렸다”
“………………….”
군중들은 그리스도가 와도 이 사람보다 더 큰 일을 하지는 못할 거라고 하더란다. 민심을 현혹하는 이들이 퍼뜨리는 전형적인 소문들이다. 그 보고를 받으니 내 할 일이 더 분명해졌다. 이런 해로운 존재는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런 허무맹랑한 이들을 따라다니는 군중들은 누구인가. 왜 이 험하고 수치스러운 처형장까지 따라와 눈물짓고 있을까. 괜히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에 달린 이들끼리 벌이던 언쟁이 떠오른다. 그에 대한 이 분의 답인가 보다. 순간 옆에 한 사람의 표정이 고통 속에서도 밝아진다.
‘사람이 죽음에 임해서는 말이 선해진다고 하던데….’
이 순간까지 거짓말을 하는 건가.
이 분을 집중 감시한 부하로부터 이번 주간에 받았던 보고들이 떠오른다. 이 분이 예루살렘에 새끼나귀를 타고 들어올 때, 주변의 무리들이 겉옷과 종려가지를 길에 깔고 펴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하고 외쳤다고 한다. 또 어떤 날은 아버지께 가서 처소를 예비한 후 다시 오겠다고 했단다.
정보를 수집해 온 부하는 언젠가 이 민족의 고위관료도 밤중에 이 분을 방문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갔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선지자는 이 분에게 침례를 베풀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했다고 들려주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어린 양, 유월절…,유월절 어린 양, 유월절 만찬. 내가 보고 받은 어젯밤의 최후의 만찬, “너희를 위한 나의 피, 나의 살…. ”
무언가 혼란스러우면서도 일관적인 것이 있다. 스스로 놀랍다. 이게 사실일 수도 있을까.
어떤 이는 이 분이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조심스레 귀띔해주더라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께로, 내 나라는…, 죄에서 구할 자, 다시 온다,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유월절 명절, 성전 휘장이, 사흘 만에…’
조금 전에 십자가 가까이에 있던 병사가 찾아와 하던 보고가 떠오른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자신의 고통을 견디기도 어려운데 남을 위한 기도를 하다니, 이해가 쉽지 않다.
그 분이 한말 가운데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단다. ‘하늘의 힘에 의한 깨달음’그런 걸 말하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복잡하다. 이 사건에서 속히 벗어나고 싶다.
“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다 이루었다”
하늘과 땅에 울려 퍼진 두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과 세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속일 수 있는 이가 있는가.
천지를 덮었던 어둠이 사라졌다. 하루 중 가장 밝은 정오부터 세 시까지 이유 없이 어둠이 끼더니 이 분의 두 마디 외침이 울리며 일시에 환해졌다. 깜짝 놀라 십자가 선 하늘을 바라보니 햇살이 십자가 끝에 부딪쳐 반짝 빛나고 무언가 하늘로 치솟는 느낌이다.
“이 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게지…? 내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체포하고 십자가 처형을 집행했단 말인가’
어렴풋하고 복잡하던 게 명료하고 단순해졌다. 사흘 후가 몹시 기다려진다. 나는 백부장 컨페세르다.
“야, 너네 다 자는 거야”
“아니, 보고 있었어.”
나는 정말로 안자고 있었다. 친구들은 자다 깬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할아버지, 이제 그만 봐요. 힘들어요.”
“그래, 고생들 했다. 때로는 어려운 일도 해야 하는 거야”
잠시 후 화면이 멈추고 커튼이 젖혀졌다. 밖은 이미 어둑하다.
“얘들아, 뭐가 기억나니?”
“어떤 아저씨가 나무에 달렸고요, 누군가 큰 소리로‘다 이루었다’고 소리쳤어요.”
내가 대답하니 서준이 할아버지는 “그래…, 지금은 잘 몰라도 세월 지나면 기억 날 거야”하신다. 방을 나오니 서준이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늦었다고 말씀드리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조금 늦었네, 재미있게 놀았니?”
“응, 서준이 할아버지와 영화도 봤어.”
엄마는 친구 할아버지와 웬 영화를 봤을까하고 놀라는 눈치다.
“뭔 영화야?”
“잘은 모르겠는데, 한 아저씨가 나무에 달려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소리쳤고 지켜보던 높은 사람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하는 영화였어.”
엄마는 감이 잡히는 모양이다.
“좋은 영화 봤네, 두고두고 생각해야 할 영화 같네….”
엄마는 무엇이 좋은지 계속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 끝 -
어쩔 수 없는 현재의 제 한계입니다. 실력에 비약이나 생략은 없지요.
한 걸음씩 가는 것이 제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