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둥지
구름둥지
‘구름으로 된 새들의 둥지’를 보러 간다. 큰 길이 끝나고 차 두 대가 겨우 비켜 갈만한 길을 조금 따라가니 일(一)자로 펼쳐진 긴 행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 향해 솟은 나무 위 둥지를 늘여 눕혀 놓았을까. 구름이 무심히 산봉우리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쉴 곳을 아네. 공중곡예를 하는 이들을 위한 발아래 그물,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목마름을 배려하는 약수터처럼 그곳에 운조루(雲鳥樓)가 있었다.
솟을 대문 지나니 저만치에 당당한 사랑채가 있다. 집 떠나 먼 길 가는 선비는 긴장과 불안으로 하인들을 불렀을 게다. 또 주인은 넉넉한 마음으로 먹이고 재우고 함께 한 잔 술 기울였으리니 어찌 피곤한 과객에게 구름둥지 아니었으랴. 사랑채끝 봉당에는‘타인능해(他人能解)’라 쓰인 두 가마 반들이 쌀뒤주가 놓여있다. 마을주민 가운데 어려워 끼니를 잇지 못할 형편이면 남의 눈에 안 띄게 접근해 뒤주 마개를 열고 두 되쯤 받아갈 수 있었단다. 그때에는 어려운 이들이 쉽게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봉당이 아닌 곳에 있었다고 한다. 내 삶이 바닥에 닿았을 때, 잠시나마 기댈 곳이 있다는 게, 힘겨운 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운조루의 주인 유이주 가문은 동학난과 일제치하, 여순반란과 한국동란을 거치며 많은 사대부가문이 겪었던 모진 풍파를 피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은혜를 입은 이들이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 것이리라.
경상도에서 삼백여 년 부를 이어온 가문의 가훈 중 하나가“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였다고 한다. 이들과 운조루 사람들은 부자면서 지역의 어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얻지 못해 어려워하고 미래를 불안해한다. 힘겨워하는 이들의 고통을 적게나마 함께 나누어 질 이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춥고 배고픈 삶의 바닥에서 잠시 기댈 구름둥지를 찾기 어렵다. 땅을 기반으로 한 마을에서 살아가던 이들은 모두가 커다란 한 가족이었다. 많이는 혈족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아도 함께 사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정 형편을 웬만큼은 알고 있어서 어려운 집 굴뚝에 밥 짓는 연기가 제 때 오르는가를 살필 수 있었다. 어느 집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듯싶으면 동병상련이라고 형편이 조금 나은 동료가 챙기거나 마음이 넉넉한 부자가 있다면 사정을 알려 도왔을 게다.
어려운 사람은 운조루의 쌀뒤주 같이 고마운 곳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었고 ‘마당 쓸기’라는 풍습에 기댈 수도 있었다. 날이 밝기 전 형편이 넉넉한 양반집을 찾아가 마당을 깨끗이 쓸면, 형편이 다급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정을 안 주인은 다급한 이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마당 쓴 값으로 푼푼하게 양식을 주곤 했던 것이다. 어느 소설에서 본 듯하다. 끼니를 잇지 못하는 마을 주민이 양반집 곳간에 들어가 쌀을 훔치다 현장에서 발각 되었다. 바깥주인은 죽고 안주인이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했는데 그 여인은 모든 이들을 내보내고 그 사람과 마주 섰다.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지고갈 수 있을 만큼 쌀을 가져가게 하고는 그 일을 재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은혜를 입은 이는 평생 잊지 못하고 그 안주인께 잘 했음은 물론이다.
운조루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펼침막 두어 장을 보았다. 서기관 승진을 축하하는 것과 지역 기관장으로 취임하는 이를 경축하는 내용이다. 그걸 내건 이들은 그 지역 주민 일동이었다. 대도시인들이 보면 그리 자랑스레 내걸 일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내가 뜻 깊게 생각하는 건 삶의 감정이 출렁일 때에 함께 할 이들이 있다는 게다. 자랑스러워 축하받고 싶을 때 그걸 알아주고 같이 기뻐하고, 슬프고 힘겨울 때 함께 아파해 줄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게 커다란 복이다. 위기의 순간에 아무도 주변에 없고 기댈 곳이 전혀 없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 때가 지친 새에게 구름 둥지가 필요한 순간이다. 경제적 도움이 아니라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 주고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따스한 구름둥지가 될 게다.
상류층 사람들은 하는 일이 잘못되어도 다시 일어날 기회가 있고 위험을 분담할 이들이 있다. 학교 동창들과 직업과 취미로 연결된 이들, 친인척이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정작 이런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 하층부를 이루는 어려운 사람들인데 이들을 돕고 응원 해줄 이들이 적다. 충격을 완화하고 흡수할 장치가 없으니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삶은 그대로 위기에 노출되어 커다란 좌절을 겪는다. 삶의 바닥에서 만나는 매서운 추위는 홀로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다. 이 때는 누군가 손만 잡아주어도 가슴이 훈훈해지고 힘이 날 텐데….
옛적에 누군가 “태어남은 조각구름 하나 일어남이요, 죽음은 그 구름이 사라짐이라”했다. 삶이 하나의 조각구름이라면 같은 시대와 장소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모여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는 뭉게구름을 이루자. 머지않아 사라질 구름이라면 잠간이라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구름둥지가 될 일이다. 누군들 눈비오고 바람 부는 이 땅에 긴 세월 살면서 지치는 순간이 오지 않으랴. 모진 바람 불고 지친 날개 힘겨울 때에 한 순간 쉬어갈 구름둥지를 만나면 어찌 반갑고 기쁘지 않으랴. 붉은 석양에 둥지 모양 구름들이 한결 따사롭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