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
- 소설가 이윤기의 문화비평 -
신화의 연구로 유명한 저자 이윤기, 그가 굳이 소설가의 직함을 붙였다. 그는 좋은 걸 많이 가지고 태어난 듯하다. 건장한 신체에 대단한 기억력,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환경에 언어적 능력까지 많은 것이 부럽다. 그는 예순셋을 살고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고집이 세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했던 자유인, 고전에서 현대까지, 나름 막힐 것이 없을 것 같은 이가 이윤기가 아닐까 싶다.
문화 비평이라 한 말이 딱 맞다. 거침이 없고 분명한 논리가 있다. 남의 것을 무시해도 안 되고 제 것을 추켜올려도 큰 의미가 없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먹는 샌드위치나 제대로 한 상 차려먹는 한식의 식사나 너무 우열을 따지지 말자는 거다. 상황에 따라 어느 것이든 문제 될 것이 무어냐는 게다. 그것이 노름이나 예술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급하면 급한 대로 하고 여유가 있고 격식을 차리고 싶으면 또 그렇게 할 일이지 남의 일에 옳다 그르다 할 일이 아니다.
그의 삶에서 보여주는 다기능 도구들이 매력적이다. 기존의 틀에 묶여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자신의 필요에 맞춰 편리하게 사용하는 개인중심 사회가 이미 열려 있다. 아무도 규제하지 않는데 스스로 묶이지 말자.
개인 간의 거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데에는 의식구조에 따라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도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지 누구에게 강요하지는 않을 게다. 농경에 기반 했던 습성을 따라 지역과 혈연 중심 공동체에 익숙하면 거리에 어색할 수밖에 없다. 달라도 안 되고 나대도 곤란하고 혼자 감추어도 살아가기 어렵다. 그런가하면 수렵유목에 뿌리를 둔 공동체는 서로가 경쟁자고 시간이 생명이다. 쉽게 눈에 띄어야 하고 먼저 찾아내야 한다.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없고 알려 해서도 안 된다. 정보가 힘이고 승리의 핵심요소다. 그런 사회에서는 일체감을 형성하고 느끼기 어렵고 신바람에 근거한 시너지를 내기도 어렵다.
그가 보여주는 자연을 향한 사랑이 뜨겁다. 풀과 나무와 물과 동식물, 이것들이 자연이다.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 안에 사는 인간들이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함부로 살면 제 발등 찍는 격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멀리 볼 수 없고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면 넓게 조망할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자연을 우리 대에 망가뜨리는 우를 범한다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자신을 이야기하며 들려주는 회색인의 삶이 인상적이다. 교회에서 절 얘기를 많이 해 따돌림을 받고 절에선 예수쟁이로 눈 밖에 난다. 경상도 출신인데 친구들은 하나같이 전라도여서 눈총을 받는다. 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사람들은 입장을 나누려 하지만 본인은 그러고 싶지 않다. 사과도 좋고 애플이어도 문제될 것이 무어냐는 거다. 나는 여기에 동양인으로 한자(漢字)가 포함되면 얼마나 금상첨화일까 생각한다. 말과 글의 사용에서 보여주는 치열함과 고집스러움은 존경스럽다.
새로운 것에의 도전, 남의 눈으로부터의 자유, 내 주견대로 살아가기의 본보기가 나비넥타이다. 선뜻 나비넥타이를 맬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세상은 그런 이들이 있어 느리게나마 바뀌어 간다. 그들이 이 땅의 한 구석을 지키므로 관습을 깨고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움에 발 디디는 일이 쉬워진다. 너무 주눅 들거나 염려하지 말고 응원하는 이들도 있거니 마음먹고 마음 가는 대로 시도해 볼 일이다. 또 핀잔의 말을 몇 마디 들으면 어떤가. 목숨 걸고 반대할 이들은 많지 않다. 그저 한 번 던져보는 일이 다반사일 뿐이다.
갈비집 주인이 들려주는 맞수는 적이 아니란 말이 관자놀이를 치지 않는가. 맞수가 있으므로 자극을 받고 서로 성장할 계기가 된다. 맞수를 인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서로 잘 되는 지름길이다.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이들이 맞수다. 한 번도 지지 않으려는 의도는 문제가 많다. 가능하면 맞수에게 좋은 조건에서 맞붙게 하라. 그러면 진다고 해도 이긴 것과 다름이 없다.
못나고 내 놓을 것이 없다는 불출. 누가 자신은 불출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랴. 아예 드러내 선언하고 나면 문제될 게 없다. 못난 게 많을수록 다른 이들의 도움을 편하게 받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의 경계대상에서 벗어난다. 오늘의 사회가 만능을 요구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면 불출이 무슨 흉인가.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도 못하면서 나서는 게 더 문제다. 예부터 재주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고 했다. 저자는 잘 하는 게 너무 많다. 심지어 노래까지 잘 한단다. 무슨 불출인가. 불출들 염장지르기요, 기죽이기다.
끝부분에 들려주는 버그이야기가 압권이다. 버그가 골칫거리인 것 같지만 꼭 필요한 것이요 역사발전의 핵심이라는 논지다. 문제아 이단아 삼천포로 빠지는 이들이 오히려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가면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소수는 엉뚱한 길을 가야 한다. 전체를 거스르고 걱정거리가 되고 속을 썩여야 한다. 그것이 전체의 건강을 지키고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이윤기식 사고를 엿보는 신선한 간접경험의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