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혜곡 최순우 선생의 우리 것에 애틋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유사한 분위기를 느꼈다. 예술품을 보는 안목은 배우는 것이라기보다 타고나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에 그런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이로서 약간의 비애를 느낀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유유상종(類類相從)하는가. 바둑이 이야기를 하면서 또 그가 잊지 못하는 이들을 추억하면서 풀어놓는 얘기들에서 한계와 차이를 절감한다.
저자가 보는 우리 것 다움은 자연스럽고 소박한, 호젓하고 그립고 무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라 한다. 한마디로 대단스럽지 않은 듯하고 주변과 잘 어울리며 질리지 않는 것이다. 어느 나라의 것들은 요란스러워 처음에는 대단한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질리고 만다. 그러기에 우리 것은 귀한 것을 알아보기 쉽지 않고 외려 쉽게 질리는 것들은 초반 우리의 눈과 마음을 강력하게 잡아당긴다. 지은이가 감동하며 보는 것들은 특별한 때에 보는 특이한 것들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보고 대하나 그 귀함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것들에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는 것들이다. 전통적인 것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 주택구조와 우리의 자연, 이 땅의 풀과 나무, 새와 짐승, 일상적인 삶이 모두 기막히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가 추억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내노라’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범인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세대에 길지 않은 삶을 산 그들이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분야 일들을 전문인으로 열정을 가지고 행한다는 것일 게다. 그 자리에 김환기 장욱진과 전형필이 있다. 그가 자신과 가까이 있는 것들을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가를 바둑이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다. 전쟁 통에 미처 데려가지 못하고 이웃에게 부탁했던 강아지, 수복되어 돌아온 서울에서 먼저 그에게 마음이 가고 있다. 마루 위에 죽은 듯 누워있던 강아지를 다시 만나고 미안해하며 용서를 받았다는 마음자세나 다시 피난을 가면서 불안으로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바둑이를 쫓아가 데려오는 심정, 그 바둑이의 후손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계속 안부를 챙기다 어미 바둑이의 죽음과 생애를 애틋해하며 회상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따듯하고 여린가를 보여주기에 부족이 없다.
혜곡 선생이 우리 것을 사랑하는 그 안쪽에는 진정한 우리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아린 마음이 있다. 충분히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중국 것과 서양 것에 눌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것, 오히려 일본인들과 서양인들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지만 때는 이미 늦어서 우리의 많은 것들을 잃고 난 후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 대국과 강국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 살면서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여 변형시키고 재창조하여 우리 것을 만들어 냈던 이들이 우리 선조들이었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우리 것을 철저하고 세세하게 살피고 다듬어 우리 것들을 이루어냈다. 그림과 도자기 목 가구를 비롯한 모든 생활 영역에서 우리다움을 보여주었고 저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안목으로 바라보고 흐뭇해하며 그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살았다. 전문적인 예술분야의 일들이 천시 받았던 적도 많았다. 그 일들을 천직으로 알고 온 힘을 쏟아 한 경지를 이루고, 인정받지 못할 줄 알면서 그 길을 묵묵히 소걸음으로 걸어갔던 이들, 그들이 우리의 아름다움을 만들고 이어온 것이었다. 그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고 그러기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이 될 수 있었을 게다.
단원이나 혜원 같은 이들은 당대의 주류(主流)에서 다루지도 않았던, 무가치하게 여기던 우리의 현실, “지금 여기에”눈을 주고 자신들의 재능을 쏟아 부었던 무모하고 알 수 없었던 이상한 선각자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양반과 지배층을 대상으로 할 때, 서민과 천하게 여기던 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다가갔다. 성인 남자들을 주로 다룰 때, 그들은 여인들과 그들과 어울리는 이들의 기행에 가까운 모습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현실과 유리된 고답적이고 뻔한 것들에 동료들이 매몰되어 있었을 때, 그들은 우리 것, 눈 앞에 펼쳐지지 생생한 것들을 찾아냈다. 이론적이고 대의(大義)적인 것에 빠져 있었을 때에 실제의 삶을 표현했다.
많은 것들이 너무도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사라져 간다. 생각할 여유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멈추어 생각하노라면 늦고 경쟁에 처진다는 압박감을 느끼나보다. 순간적인 감각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시대를 살아가는가. 얼마가지 않아 후회할 것만 같다. 조금 뒤지더라도 모든 것을 다 하지는 못해도 잠시 멈추어 서서 숨도 돌리고 찬찬히 이성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 좋은 것을 버리고 더 못한 것을 애써 취하려는 것을 아닌지를….
나는 서양식 침대와 가구, 교육제도와 농사방법 등 그러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활약하고 있을 수많은 혜곡과 그 부류의 선생들 소식을 듣고 싶고 그들이 그립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