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눈먼 자들의 도시

변두리1 2017. 11. 1. 21:13

눈먼 자들의 도시

- 문명의 초기화와 본능적 사회 -

 

   포르투갈의 노벨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다. 붐비는 도시의 신호등 앞에서 원인미상의 눈이 머는 병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한 도시가 통째로 눈이 머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다 원인을 모르는 채 어느 순간 시력이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최초로 눈이 먼 이와 한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눈이 먼다. 전염병임을 알게 된 행정부는 그들을 격리수용하고 그 사회의 일부인 수용소는 전염된 이들을 이 땅에서 사라져 주길 바라고 인간이하의 동물처럼 다룬다. 점차 존엄성을 상실해가는 그들은 생존을 위해 본능을 따라 살아간다.

 

   눈 먼 첫 환자를 진료했던 안과의사도 전염이 되고 최초 피전염자에게 호의를 보이며 운전을 해 집에 데려다 주고는 차를 훔쳤던 이도 같은 처지가 되어 수용소에 오게 된다. 안과의사의 부인은 눈이 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편을 도우려고 눈이 먼 것처럼 행동하며 함께 수용소에 가고 그곳에서 눈먼 이들을 도우며 생활한다. 그곳에는 눈병으로 치료를 받던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도 오게 된다. 수용소초기에 차 절도범은 성적 매력이 있는 여인에게 치근거리다 그녀의 구둣발에 차여 세균에 감염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며 정문으로 기다시피 나가다가 초병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들을 감시하는 군인들은 환자와의 접촉을 꺼리고 그들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음식을 통제하고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므로 살기위한 인간의 본능이 그대로 드러난다. 군인들에 의해 살상이 행해져도 피해자들은 어떤 의식 없이 수용소마당에 묻히고 그것도 환자들이 처리한다. 먹을 것에 밀려 시신처리가 며칠씩 늦추어지기도 한다. 수용소는 얼마가지 않아 최소한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오물로 넘쳐난다. 그 와중에도 환자들은 계속 밀려들어 수용소의 환경은 악화되어 간다. 수용소안에서 남녀 간의 성 접촉이 행해지고 때로는 부부이외에도 이루어진다. 심지어는 안과의사와 성적 매력이 있는 여인은 그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관계를 갖는다.

   인원이 늘어나고 군인들의 묵인 하에 수감된 이들 안에서 자체 권력이 발생한다. 총을 가진 두목과 깡패집단을 연상케 하는 추종자들이 그들이다. 권력자들은 무료로 공급되던 음식을 유료화한다. 비논리적인 규율로 한 번에 소유하고 있는 모든 돈과 귀중품을 거둬들인다. 그들은 무법과 폭력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폭력집단은 여인들에게 성적 폭력을 자행한다. 힘을 가진 집단은 약자를 괴롭히게 마련이고 그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성적인 수탈이다. 의사부인과 그녀와 함께 있는 여인들도 그 대상이 되고 그들은 갖은 모욕을 당하고 한 여인은 죽임을 당한다. 수탈의 대가로 남성들은 음식을 받아온다. 계속되는 폭력에 의사부인은 조직의 두목을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옆방의 여인들이 성적 요구를 위해 총을 가진 권력자들에게 갈 때, 가위를 가지고 함께 간다. 의사 부인은 마침내 두목을 죽이고 돌아온다. 권력의 교체기에, 지배를 당하던 이들은 건물에 불을 지른다. 강력한 저항을 예상했지만 창궐한 전염병으로 군인들도 철수한 뒤여서 그들은 수용소에서 나온다.

   그들이 접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말 그대로 문명이 멈춘 초기화된 사회였다. 도시는 오물로 넘쳐나고 문명시설은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자동차는 멈추었고 주거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온 도시는 양식을 구하는 것이 일차적 관심사였다. 눈이 멀지 않은 의사부인이 마트에서 먹을 것을 챙겨 나오자 음식 냄새를 맡은 이들의 공격으로 큰 곤욕을 치른다.

   수용소를 나온 이들은 몇 군데를 거쳐 의사부부가 살던 곳에 거처를 정한다. 그곳에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안정을 찾는다. 세 여인이 베란다에서 벗은 몸으로 빨래를 하고 쏟아지는 빗속에 목욕을 하는 부분은 이 소설에서 가장 흥겹고 신선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이 시력의 상실로 어려움을 겪을 때, 자연과 동물은 오히려 그 힘을 회복하는 것 같다. 거리에는 개들이 넘치고 그들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사람들은 적응해 간다.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돕고 싸우며 살아간다. 그 기간 동안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졌다면 말할 수 없는 혼란과 고통이 더해졌을 텐데 그런 문제는 다행히 묘사되지 않았다.

   눈이 먼 이들이 하나 둘 시력을 되찾아 갈 때, 그때까지 시력을 유지하던 의사부인은 시력을 잃는다. 그녀는 남편을 향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할 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눈이 멀었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본다는 것은 위대하다. 삶의 거의 전부가 보는 것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시각이 없다면 우리의 문명은 급격히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만이 보는 것은 아니다. 시력을 잃는 것만 비극은 아니다. 꼭 필요한,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면 그 분야는 눈이 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눈먼 자들일지 모른다. 본다고 하나 눈이 먼 자들. 우리의 오늘의 삶과 사회가 눈먼 자들의 삶이요, 도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