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때가 되면…

변두리1 2017. 10. 7. 15:44

때가 되면

 

   열시 반을 넘고 있다. 언제부턴가 시간에 많은 신경이 쓰인다. 가족 중 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첫째는 일본어 야간과정을 수강하고 있으니 그곳에 있을 테고, 막내가 걱정이다. 회사 끝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니 아마도 회사에 있을 게다. 외지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집에 있으니 험한 세상에 더욱 마음이 쓰인다. 말은 하지 않아도 아내는 염려가 더 많으리라.

 

   이제는 열한시 하고도 반을 넘기고 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문자를 한다. 안 보아도 내용을 안다. “어디에 있나요?”아니면 언제 옵니까?”일 것이다. 조금 지나니 답이 온다. “조금 더 있다 갈게요.”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데 몇 분 후에 도착한다고 하면 좋을 텐데, 거두절미하고 짤막하다.

   지난날의 내 모습이 겹친다. 집에 전화도 없던 시절, 방학에는 어쩌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이튿날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도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매사에 내가 알아서 잘 하리라고 믿으시는 구나’ ‘부모님도 평소와 같이 주무셨겠다.’고만 생각했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게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정이 되어서는 아직도 안 들어왔냐고 서로 묻고 답하고는 불도 끄지 못한 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게다.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난 막내를 대하시면서 말은 하지 않아도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고, 행여 비뚤게 반응할까 지난밤에 어디서 무엇했는지 묻지 못하셨을 게다.

   학교를 마치고 귀가가 늦는 날은 막내가 고등학생임에도 어머니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였든지 자주 골목 모퉁이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컴컴한 골목에 내 흐릿한 모습이 보이면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때는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어머니는 삼십 분이나 한 시간 혹은 그 이상을 어둠과 추위 속에 날 기다리셨는지 모른다.

   둘째는 주말에 집에 왔다가 일요일 늦은 시각에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기차에서 내리면 택시로 사오 분 거리니 도착시간을 뻔히 알면서도 잘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둘째는 나름대로 다음날을 준비하느라 까맣게 잊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게다.

   일 년에 몇 차례, 절기를 따라 원주사시는 여든셋 되신 이모님을 뵙고 온다. 출발하여 세 시간 정도면 청주에 닿는데 너댓 시간 지나면 전화를 하신다. 매번 잘 왔다고 연락을 드려야지 하다가 도착하면 긴장이 풀리고, 옷 갈아입고 이것저것 점검을 하다보면 곧잘 잊어버린다.

   어느덧 한 시 반을 넘고 있다. TV는 철지난 재방송을 하며 혼자 떠들고 있다. 그저 무료함과 졸음을 쫒기 위한 수단이다. 삐그덕하고 대문 닫히는 소리 들리고 뒤따라 문소리와 함께 막내가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내가 늦었네, 얼른 올라가 자.”하면 , 올라가 잘게요.”하고는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사라져 간다.

   아이는 어쩌면 나와 아내가 예능을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늦게 돌아오면 항상 틀어놓고 보는 것 같으니. 막내가 올라가면 곧바로 아내와 나는 TV를 끄고 잠자리에 든다.

 

   막내에게 네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우리가 잠잘 수 없으니 일찍 다니라고 하면 그럴 필요 없어요. 저 들어오는 거하고 상관없이 주무세요라고 대답할 게다. 그 말이 논리적으로 맞고 우리가 깨어있든 잠을 자든 아무 차이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다르다. 자녀들이 다 들어온 걸 확인하고 자는 것과 다 들어오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드는 건 잠의 깊이와 질에 차이가 난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듯, 아이들도 아직은 우리 마음을 깊이 알기 어려울 게다. 이 심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던 농경시대를 지나 산업화의 길을 걸어온 후로 부모들의 심신에 새겨진 문화인자가 아닐까 싶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성장하여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막내에게도 자연히 발현되어 오늘의 내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