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알고 지내는 이의 아들이, 얼굴의 여드름 흉터를 지우기 위해 수술을 한단다. 취직을 하려면 면접도 적지 않고, 어떤 일이든 대인관계를 무시할 수 없으니 그 고민을 모를 바도 아니다. 남성화장품도 호황을 누린다고 하고 화장의 연령이 초등학생까지 낮아졌다니 판단이 쉽지 않다. 우리사회의 날씬해지기 열풍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예뻐지려는 것이 다수의 욕망을 넘어 시대적 열망이 되었다.
왜 아름다워지려는 것인가. 다른 이들의 시각을 장악하려는 것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것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예술의 목적이 진선미(眞善美)의 추구에 있다면 아름다움은 권장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지나쳐 한 방향으로 현격히 기울어져 있다는 게다. 우리사회가 하나가 되어 외모지상주의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비극이다. 육체적 아름다움이 모든 것인 양 평가하고 그 밖의 의미 있는 많은 요소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외적인 아름다움이 경쟁력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불공평하다.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부모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면이 많다. 20대 후반까지의 신장 피부 미모 몸매는, 물려받고 타고 난 것이라 하겠다. 큰 키에 희고 투명한 피부, 부러워할만한 몸매와 외모가 정말로 좋기만 한 축복인가를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간의 시각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산과 강, 나무로 상징되는 자연뿐 아니라 동식물 모두에게서 예쁜 모습을 찾기 원한다. 시장에 가보면 채소와 과일이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탐스러우며 먹음직스러운지 감탄하게 된다. 집에서 재배해보면 그렇게 수확하기가 쉽지 않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려고 특별한 처리를 했음직하다.
온 세상이 지나치게 인간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인간이 숱한 생명체 중 하나지만 스스로 깨닫고 겸허해지기 전에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망상(妄想)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아름다움을 향한 욕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리스ㆍ로마 신화에도 불화의 여신이 초대받지 못한 결혼식에 찾아와 “제일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기록한 사과 하나를 던지고 간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다가 양치기 파리스에게 판결을 부탁하고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준다. 여신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 왕비 헬레네와 파리스는 사랑에 빠지고, 그 사건으로 무려 10년 동안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다. 철저히 아름다움으로 시작해서 아름다움으로 망가진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끈질기게 되풀이 되는 사건들이다.
동화와 신화, 심지어 만화까지 아름다움의 추구는 맹목(盲目)에 가깝다. 그들의 마지막이 모두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가 시기와 다툼의 원인이 되고 혼란에 빠져 모두가 파국으로 치달아,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사에 드러나는 아름다운 이들은 흔히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평온한 삶이 허락되기 어려운가 보다. 타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면 차라리 아름다움과 일정한 거리가 있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할 순 없을까. 주변의 시선에 초연하게 자신이 세운 목표를 긴 세월 묵묵히 좇아가 그 분야에서 우뚝 서려면 오히려 남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면 억지이려나.
삼국지의 제갈공명의 아내 황씨는 학식이 대단하나 박색(薄色)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고대소설인 박씨전에 등장하는 주인공 박씨 부인도 재주는 비상하나 무척 박색이었다. 우리 민족의 착한 성품은 박씨 부인의 외모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허물을 벗겨 천하일색으로 변신시킨다.
우리 사회가 지나친 신체적 아름다움의 추구로 기울어져 있다.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 싶다. 이 시대의 사상의 깊이가 얕다는 반증은 아닐까. 현시대 문화의 여러 면에서 찰나적이고 표피적인 특성들을 언뜻언뜻 본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전통을 가졌다는 우리다. 긴 역사에서 어느 순간 휘청거렸던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힘을 모아 지혜롭게 극복해왔다.
일대 대오각성(大悟覺醒)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는 느낌이다. 남들의 칭송에 마음 뺏기지 말고 내실을 단단히 다지는 기풍이 일었으면 좋겠다.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라 개개인이 육체적 아름다움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쌓자는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이들은 혼신을 다해 자신의 일에 몰입해 있는 이들이 아닐까.
나 스스로 상대를 신체적 감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려는 잣대를 내려놓고 보다 깊이 있는 안목을 가지려는 노력을 기울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