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파리에서 보낸 사흘

변두리1 2017. 2. 15. 16:41

파리에서 보낸 사흘

 

   내 생에 처음으로 나가본 외국여행에서 사흘을 파리에 머물렀다. 그곳에 다시 가볼 기회가 있으려나. 해외에 나갈 기회야 생길 수 있겠지만 파리를 다시 가기는 쉽지 않을 게다. 미술이나 패션과 무관하게 살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전혀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알만하고 들어봤을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내가 받은 파리의 느낌은 사람들은 문화적 자부심을 가지고 내적인 탐구에 몰두하는 듯하고 도시가 오래된 탓인지 길이 좁고 서점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세느강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고 오르세 미술관과 노틀담 성당이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었다. 식료품 가게를 찾아가 고추장을 사려했더니 없었다. 쌀도 마땅치 않아 차라리 한인마트를 찾아갔다. 그곳에 들어서니 숨통이 트였다.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구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했더니 열리지 않았다. 열쇠를 넣고 돌려도 열리지 않아 당황하면서 긴 시간을 기다렸다. 알고 보니 열쇠를 강하게 돌려야 했다. 주인이 야속했다. 우리와 비슷한 일들을 당한 이들로부터 불만을 들었을 텐데 알려주지 않다니.

   집에서처럼 익숙한 식단으로 저녁을 먹었다. 여행을 가서까지 한식을 먹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현지 음식이 불편하기도 하고 뭔가 아쉽고 허전하고 힘도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식당에서 자연스럽지도 않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인다. 평소대로 우리음식을 먹고 나니 새 힘이 나는 것 같다. 한국시간이 자주 떠오르고 생체리듬이 빗나간다. 다른 숙소보다 집이 좁아 조금은 답답하다.

   오르세 미술관을 걸어갔다. 기차역이었던 곳이 미술관으로 변모시켰다. 조각과 그림 가구들을 모아 놓았다. 너무 많으니 대충 보게 된다. 알려진 밀레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어느 작가의 작품은 굉장히 많다. 작품수로 기울인 노력을 평가할 순 없지만 대단하게 느껴진다. 오후에는 노틀담 성당을 보았다. 나는 큰 특징은 찾을 수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돌아와 집 주변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아도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나나 아내나 나이도 많지 않은데 저녁에는 쉬고 싶어 집에만 머문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밤에도 그 나름의 일정을 보내는 듯하다. 가족이니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밤이 늦었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기록물이 있다고 같이 보잔다. 몇 가지 흥미로운 것을 소개해준다.

   에펠탑을 그 다음 역에서 내려 바라본다. 바로 앞에서 보면 까마득히 올려보아야 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단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전체를 볼 수 있고 사진을 찍어도 에펠탑과 균형이 맞는다. 어디에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때에 따라 그 거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겠지만 그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날아 탈출하던 이카루스가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추락해 죽음을 맞이하듯 거리유지가 중요하다.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갔다. 어디가나 이어지는 소지품검사. 편하게 보고 입구에서 만나자며 헤어졌다. 관람동선이 없다. 발길 가는대로 걸었더니 밖이다. 짐 검사를 다시하고 재 입장을 했다.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듯하다. 방이 여러 개에 전시물이 엄청나니 차례대로 보기가 어렵다. 벽과 진열대뿐 아니라 천장에도 많은 그림들이 있다. 루브르의 3대 소장품이라고 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상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친숙하고 유명한 것에 더욱 끌리는가 보다.

   수많은 유명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니 한 번에 보기가 힘겹다. 그 대단한 것들을 건성건성 대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민망하다. 3대 소장품 중 어느 것도 프랑스작품이 아닌데 왜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을까. 가끔씩 쉬며 보아도 다리가 아프다. 폐관시간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 세계 사람들을 이렇게 한 곳에 모으기도 어려울 게다. 작품들이 모이니 사람들도 모이나보다. 폐관 후에도 기념품 가게는 영업을 하니 그것도 신기하다. 가게에 인파가 적지 않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여기서도 보인다. 오르세 미술관의 조각과 그림들, 그리고 루브르의 작품들이 한데 엉겨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굳이 그것을 분류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분류할 능력도 없다.

 

  아이들은 세느강 유람선을 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기념품들을 파는 좌판들과 연이어 있는 비슷한 건물들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세느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파리의 일부분을 보았지만 좁고 답답해 보인다. 좁은 길과 손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붙여지은 건물들이 여유를 느낄 수 없게 한다. 바르비종 지역에서 전원 풍경을 대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이들이 그립다. 내 생애에 다시 보기 어려울 파리를 주마간산처럼 그것도 몇 곳만 보았다. 그것만 해도 뜻 깊은 파리에서의 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