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부끄럽다 콜로세움이여

변두리1 2017. 2. 15. 16:38

부끄럽다 콜로세움이여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홀연 거대한 건축물이 앞을 가로 막고 서있다. 콜로세움이었다.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압도하는 정도가 크게 달랐다. 곧잘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휴관일이 아니면 언제나 길게 줄을 선다는 관람객들. 1세기에, 2000여 년 전에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기둥 하나하나가 사람들을 위축시키기에 넉넉하다.

 

   평민출신 베스파시아누스황제가 황제 소유였던 것을 평민들에게 돌려주는 의미로 황제의 인공호수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만들도록 지시한 것이라 한다. 서기 72년 경 건축이 시작되어 80년쯤에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10만 명을 노예로 잡아왔는데 그 중 4만 명이 이 건축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높이 50여 미터의 4층 건물, 45,000여 좌석과 5,000여 입석 가득 차면 80,000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는 초대형 건물. 이 건물의 완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과 피를 쏟고 부상을 당하고 생명을 잃었을까. 동원된 많은 이들이 권력도 없고 기댈 곳도 없는 이들이었을 테니, 그 희망 없는 이들을 다루는 방법이 폭력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멀쩡한 이들을 노예로 삼는 전쟁도 끔찍하고 폭력적인 것은 결코 덜하지 않다. 힘이 정의였을 그 세계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전쟁에 지고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는 이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요, 어머니요, 형제 자매였을 것인데 그들의 의지와 무관한 전쟁의 패배로 삶 전체가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콜로세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개선문이 서 있고 그곳에 예루살렘에서 전리품을 약탈해오는 것을 묘사한 광경이 있다. 유대인들이 왕관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성전의 촛대를 빼앗아 오는 장면이다.

   콜로세움은 좌석배치부터 철저히 신분중심이다. 행해진 일들은 얼마나 참혹한가. 죄수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고 기독교인들을 맹수들의 밥으로 던져주고 노예와 죄수들을 훈련시켜 검투를 시키고 그것을 보고 즐겼다. 아레나라고 불리던 그 경기장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을까. 죽어가는 그들을 보며 쾌감을 느끼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그 희생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집단적인 쾌감과 공포. 통치자들이 콜로세움을 통해서 얻기를 기대하는 것들이었을 게다.

   콜로세움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다. 바닥 아래에, 지하에 많은 방들이 줄을 맞춰 지어져 있다. 그곳에 죄수들과 검투사 맹수들, 그리고 여러 기구와 장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지하의 좁은 방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신들의 끔찍한 최후를 기다리다 생애를 마감하는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으려나.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면서,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자신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는 절망과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놀랍게도 경기장에서 해전(海戰)도 전개가 되었다고 한다. 구경하는 이들이야 흥미로웠겠지만 참전해 승패를 가리는 이들은 더 없이 고통스러웠으리라. 적지 않은 이들이 해전 가운데 생명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중단이 되고 검투경기는 400년 경 황제의 지시로 중단이 된다고 한다.

   아무리 폭력의 광기에 중독이 되었다고 해도 공공연히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나아가 사람을 맹수의 먹이로 제공하는 일이 어떻게 행해질 수 있었을까. 집단적 최면이라 해도 그들에게 이성 아니 인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그러한 일을 자행하던 로마인들을 선진시민들이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 당시에 살았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나도 희생을 당했거나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무리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인간으로 콜로세움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 경이로움과 인간의 위대함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지난날 집단적 폭력의 광기를 돌아보고 같은 인간으로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로마에 가서 그 굉장한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하는 콜로세움을 보았다는 자랑스러움보다는 그곳에 얽혀 있었을 이들의 처지를 회상해보고 다시는 그런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해야 한다.

   현대인들이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억 년을 이어온 지구의 환경을 최근의 100여 년 동안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파괴한 것이 우리가 아니라고 변명할 수 없는 처지다. 현대인들이 저들보다 현명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콜로세움은 지진과 중세 교회를 지을 때 무분별하게 그 돌들을 약탈해 사용함으로 원형을 잃고 흉한 모습을 한 채 오늘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허물어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상처를 가리지 못하고 과거의 역사를 부끄러워한다고 인식하면 안 되나. 콜로세움을 보고 나오는 순간만이라도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에 고개 숙이고 한숨을 쉴 수는 없는 것인가. 콜로세움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