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당신은 나의 안식처입니다.(아비가일의 고백)

변두리1 2014. 6. 30. 22:02

당신은 나의 안식처입니다.(아비가일의 고백)

 

  나는 아비가일입니다. 남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발이었지만 이제는 다윗입니다. 나는 지금 더없이 행복합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 내가 변화된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예쁘고 똑똑하다고 칭찬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우리가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십대 초반에 아버지가 알 수 없는 병으로 돌아가시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전 남편인 나발은 이웃마을의 소문난 부잣집 맏아들이었습니다. 나발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평생 고생하지 않아도 될 줄로 알고 어머니는 결혼을 허락하고 신랑 집에서는 우리 친정에 넉넉하게 신부 값을 치렀습니다. 결혼 후 얼마 안가 시부모님들이 돌아가셔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나는 안주인이 되었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한없이 행복했겠지만 문제는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체격이 우람하고 고집이 세고 이기적인데다 합리적인 사고가 부족했습니다. 언제나 남편이 문제를 만들고 수습은 내가 해야 했습니다. 집과 농장이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는데 농장문제를 해결하면 집안 문제를 만들고 집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농장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남편은 잔치하기를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즐기는데 그 끝은 늘 싸움이고 그때마다 치료비와 합의금이 나갑니다. 사람들도 이제는 남편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주로 나와 상의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도 남편의 단골 시비 거리입니다.

 

  한 달여 전 이야기입니다. 그날은 우리농장에서 양털을 깎는 날이었습니다. 양털 깎는 날은 많은 노동력도 필요하고 그로인한 경제적 이득도 커서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고 모두가 넉넉히 즐기는 날입니다. 그날은 고아와 나그네도 대접을 받으며 얼마나 많은 음식을 소비하는 가로 그 가문의 융성을 논하곤 합니다. 워낙 많은 이들이 음식을 먹고 들고 나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낯선 건장한 이들 십여 명이 왔다가 잠시 후에 굳은 얼굴로 휑하니 가는 듯 했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거슬리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 한 하인이 나를 찾아와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로 이야기했습니다. 평소에 우리 일꾼들을 불량배로부터 보호해주고 양떼들을 돌봐준 다윗의 사람들이 잔치음식을 조금 요구했는데 남편 나발이 다윗과 그들을 비난하고 무시한 채 빈손으로 내쫓아서 분노한 다윗과 그 부하들 수 백 명이 무기를 가지고 몰려오고 있는데 나발에게는 말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나에게 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하인들에게 오백여 명분의 음식을 속히 준비해서 이십여 마리의 나귀에 싣고 먼저 다윗과 그 부하들에게로 출발하게 했습니다. 서둘러 몸을 꾸미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고 나귀를 타고 그들이 올만한 길로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만났습니다. 누가 다윗인지는 자리배치와 위엄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귀에서 내려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들의 탄성과 술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도 뜻밖의 사태에 약간은 당황하는 듯 했습니다. 나는 음성을 돋우어 무슨 말인가를 한참을 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대충 이런 말을 한듯합니다. “주와 주의 사람들을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모두가 저의 불찰입니다. 제 남편은 사리분별이 잘 안 되는 위인입니다. 약소한 음식을 가져 왔으니 받으시고 노를 푸시기 바랍니다.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계시고 왕이 되실 분이며 늘 하나님 편에 서십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주를 지키시고 하나님께서 주의 대적 자와 싸우십니다. 싸울 가치도 없는 이와 싸우는 수고를 하지 마시고 왕이 되시면 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놀란 듯 했습니다. 모두가 고요했는데 그분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피 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인이여 정말 지혜롭습니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그대 집안에 남자의 씨가 말랐을 것입니다.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내 그대의 간청을 받아들입니다.” 말하는 동안 그분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떨렸고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맴돌았습니다. 나는 절하고 일어나 음식을 인계하고 돌아 왔습니다. 또 다시 탄성과 술렁거림이 느껴졌습니다. 농장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은 술에 취해 무엇이 좋은지 헤벌쭉해 있고 잔치 뒷자리는 어수선하기만해서 말없이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술이 깬 남편에게 전날의 일을 말하니 기죽고 겁먹는 표정이었습니다. 남자들이 다 죽을 뻔했다고 할 때는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남편은 그 후로 시름시름 앓다가 근육이 점점 굳어지더니 열흘 되던 날 죽었습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망연히 있던 어느 날, 그분이 보낸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분이 나를 아내로 맞기를 원하니 지난날을 정리하고 자신에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나를 데려가기 위해 부하들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먹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가 통하는 곳에서 내 말을 들어 줄 수 있는 이, 나를 인격체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이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 왔습니다. 그날 뵌 그분을 먼발치에서라도 자주 뵐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농장과 집과 많은 재산들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가문과 재산은 내가 아니라도 관리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내가 그분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자유롭고 편안하게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분이야말로 내가 쉴 수 있는 안식처입니다. 나는 그 길로 그 분의 사람들을 따라서 지금의 남편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