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득이
찐득이로 살아야지
집을 나서려 하는데 머리를 빗기던 아내가 머리가 찐득찐득하다고 한마디 한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머리카락이 찰싹 달라붙었다는 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반짝하며 스치는 게 있다. 거리를 두지 않고 밀착되어 좋은 것이 있을 듯해서다. 난방을 위한 불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불에 타버리거나 델 것이다. 하지만 부부사이는 가까울수록 좋다. 꿈을 이루려 하면 몰입을 해야 하고 그것은 대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대상에 달라붙어 뜻을 이루기 전에는 떨어지지 않는 찐득함이 있어야 목표를 이룬다.
이런저런 기회에 내 특징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낱말들이 있다. 유야무야(有耶無耶), 흐지부지도 그런 것들이다. 목회자 모임에 새로 들어가면서 내 자신 유야무야하게 살겠다고 소개를 했다. 그런 유(類)의 말을 들으면 은연(隱然) 중에 달갑지 않게 여기고 언짢아하는 분들도 있다. 내 근본 의도는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어떤 일에 깊이 얽히지 않고 내 할 일에 힘써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고 서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不可近不可遠], 없어도 있는 것처럼 편하게 행동하겠다는 뜻이다. 있어도 거리적 거리지 않는 삶은 승용차로 잘 포장된 도로를 가는 것 같은 유연한 삶이다.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이상적인가. 그렇게 살지 못해 한이지 부정적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어떤 이들은 나를 가리켜 존재감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 자신이 그렇지도 못하거니와 만약 그 상태가 된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게다. 아직 모나고 울퉁불퉁한 껄끄러운 존재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있고 없을 때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공기나 물, 몸의 어느 부분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그 존재를 제대로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정상에서 벗어나 문제가 생겨야 그 심각성과 중요성을 알고 허둥댄다.
다른 어휘 중 하나가 “흐지부지”이다. 시작은 요란한데 끝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해지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보았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해서 경계하자는 의미와 내 삶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적지 않으니 크게 기대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리는 게다. 용두사미(龍頭蛇尾), 작심삼일(作心三日), 유시유종(有始有終), 초지일관(初志一貫) 같은 말들이 괜히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달라져도 흐지부지한 사람이 환영받는 것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으리라. 마음이 느슨해지고 소홀해져 하던 일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주도하는 이와 참여하는 이 모두가 미진함을 지울 수 없다.
그에 비하면 “찐득이”는 얼마나 대조적이고 선망할만한 자세인가. “스티커(sticker)", "스티커사진”이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것들을 생각만 해도 얼마나 집착력이 대단한가 알 수 있다. 책이나 문구류 등에 가격을 표시하기 위해 붙이는 작은 스티커들은 나중에 일부러 떼어내려 해도 쉽게 분리되지 않고 때로는 물건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 의미가 찐득하다는 어휘와 통한다. 찐득하다는 말의 어감을 작게 하면 “진득하다”는 낱말이 된다. 사람을 소개할 때, “그 사람 참 진득해”라고 하면 긍정적 평가다. 쉽게 변덕을 부리지 않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
성경에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게 붙어 있으라.”는 구절이 있다. 올바른 이를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그리운 때가 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할 때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곤 한다. 자신이 확신한 일을 진득하게 계속하면 힘쓴 만큼 얻게 되지[盡得] 않을까. 이 진득을 강하게 소리 낸 것이 찐득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현대인의 집중력이 점차 짧아진다고 한다. 어떤 이는 한 가지 일에 15분 이상 집중하는 게 무리이므로 일을 계획할 때 15분 단위로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스스로의 일을 이루는 이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한 가지 일에 쏟을 수 있는 이들이다. 순간적인 집중력이 불을 일으킨다고 하면 지속적인 집중력은 바위를 뚫는다. 두 가지가 다 필요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뒤엣것을 더욱 갖고 싶다.
유야무야나 흐지부지가 부정적인 어감을 준다면 진득하다는 표현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찐득이’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듣는 이들이야 어떻게 이해하든 스스로는 새로운 다짐으로 내 하는 일에 지속적인 열심을 쏟아보겠다는 내 나름의 결심을 드러낸 것이다. 나와 친연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가 관여하고 있는 일들을 행함에 있어 언제 그만두었는지 모르게 흐지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과 열심을 쏟아 붓고, 아니라고 판단이 서면 분명하게 선언하고 끝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와중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마치 포장된 도로를 승용차로 달리는 듯한 유야뮤야한 상태를 유지하면 더욱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까.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로 굳어지도록 기회가 되는대로 찐득이를 진득하게 써먹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