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의 수필집을 읽으며
목성균의 수필집을 읽으며
- 그는 수필계의 기형도다 -
어느 수필에서 그분은 자신의 얼굴이 원숭이 같다고 했다. 선하고 수더분한 인상이다. 책 표지 안쪽의 사진을 보고 있다. 꽃다발을 안고 네댓 살쯤의 여자아이를 오른팔로 감싸 안고 있다. 뭔가 상을 받는 날 같고 손녀인지 모르겠다. 무척 행복해 보인다. 충북 괴산 연풍, 나 스스로 지연 학연 혈연을 혐오하는 줄 알았더니 동향임을 확인하니 무척 반갑다. 청주상고, 가까운 곳에서 늘 보던 학교, 그 이름이 친숙하다. 그분은 25년 간 산림직 공무원을 지냈다고 한다.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중퇴하고 인생의 황금기 같은 세월을 산림직 공무원으로 어떻게 지냈을까, 그가 퇴직을 하고 서원대 평생교육원에서 문학공부를 다시 하면서 갈고 닦은 실력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실력을 인정받고서 수필을 맹렬히 써 세상에 내 놓는다. 열정적으로 사오년 활동을 하고 그 이름을 수필계에 각인시키고는 2004년 5월 홀연히 세상을 버린다. 수필계의 한 저명한 이는 누구에게든 목성균의 수필을 천거하면 실망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하면서 그를 수필계의 기형도라고 했다.
수필집을 몇 권 대해보지만 개인의 수필전집을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수필전집(全集)이라니, 대개는 누구의 수필집 내지는 수필선집은 보았어도 전집을 보기는 처음이다. 수필전집이 무슨 말인가. 그가 쓴 모든 수필을 모았다는 것 아닌가. 그는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을 2003년에 출간하여 우수문학작품집으로 선정된다. 그것으로 끝이다. 이듬해 타계하니 웬만하면 흔적 없이 잊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 후에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유고집 《생명》이 2004년 11월 발간되고 2010년에 《행복한 고구마》와 《돼지불알》이 연이어 출판된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그의 수필전집 《누비처네》가 출간되니 저자에겐 더 없는 호사와 찬사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음이다.
목성균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찬탄과 한탄이 함께 나오고 존경과 부러움 그리고 자괴감이 든다. 그가 지리적으로 가까이 살았었다는 것이 큰 위안이며 자랑이다. 수필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치 맛있는 곰국을 먹는 느낌이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들과 글 속의 정감어린 분위기, 여유로우며 빈틈없는 구성까지 맛깔나고 감칠맛이 있다. 한편 한편이 먹기 아까운 사탕이요 과자고 맛난 고기국이다.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큰 소망도 글의 품격도 없지만 나름대로 수필 몇 편을 쓰고 지금도 끙끙거리는 수필인으로서 그는 내게 넘기 어려운 산처럼 여겨진다. 읽다보면 때로 유사한 제목이 있고 내용도 있다. 그러면 자연히 비교를 해보게 되는데 이건 급(級)이 다른 유치원생과 대학원생의 작품 같다. 어쩌란 말인가. 그것이 내 현주소인 것을. 수필의 산을 한 계단씩 멈추지 않고 오르다보면 언젠가 꽤 높은 곳에 오르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위안을 삼는다(어지러움이나 멀미로 그전에 내려올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서 그만의 체취를 맡는다. 그 많은 글들 중 어느 것도 가벼운 것이 없고 나를 실망케 하는 것이 없다.
유고집 《생명》의 첫 번째 작품 “고모부”에서부터 잔잔하면서도 압도적이다. 고모 없는 고모부, 그 고모부가 환갑을 차리고 가져온 작은 돼지다리 하나, 그 고모부를 며칠 머물게 하려고 멀쩡한 두루마기를 빨게 하는 일들이 따스함과 친인척의 정을 물씬 느끼게 한다. 친구의 연하장을 받고 답장을 하는 평범해 보이는 글에도 스스럼없이 주민들 방에 끼어드는 우체부, 우편물 속에서 받아보는 눈 오는 날 면소재지까지 걸어와 부친 연하장, 그것을 받아 읽고 또 눈 속을 곤두박질을 하며 연풍 장터 우체국에 찾아가 부치는 엽서와 난로 곁을 내주는 우체국 직원들, 친구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음은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읽게 하기에 넉넉하다. 민족적 슬픔이 한 가족에게 녹아들어 전해지는 “소년병”은 이념을 넘어서는 인간애적 고통이다. 무심한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창에 불들이 켜지는 것을 십자말풀이에서 정답으로 채워진 것으로 보고 불 켜지지 않은 곳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을 생각하며 가보는 “찔레꽃 필 무렵”도 면허를 처음 따고 녹동항을 찾아가며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을 보면서 고통스런 병을 앓고 살다간 시인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의 수필”은 수필로 쓴 수필 강의록이다. 자신의 수필 “세한도(歲寒圖)”를 예로 들어 문학으로써의 수필에서 허구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를 호소력 있게 설득한다. 기억나지 않는 것, 상황에 맞는 것, 문학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스스로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 그가 허용하는 허구의 한계라는 것이다.
목성균의 수필은 가슴을 따듯하게 하고 무릎을 치고 감탄하게 하고 맛있는 것을 아껴먹듯 그의 수필을 탐독하게 한다. 수필가 목성균이 있었다는 사실이 수필을 아끼는 이들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그로 이 땅에 좀 더 머물게 해 더 많은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게 한 것은 우리의 영역 밖의 일이다. 수필가 목성균으로 인해 나는 행복하고 또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