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내가 행한 일(멜기세덱).
그에게 내가 행한 일(멜기세덱).
내 이름은 멜기세덱 “의(義)의 왕”이라는 뜻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내가 나를 높이는 것은 오만(傲慢)한 일이 되지만(나는 자신을 결코 높이지 않고 세상에 딱 한번 나타나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내가 섬기는 그분을 높이지 않는 것은 불경(不敬)한 일이다. 나는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어느 날 겪었던 신비한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일은 오전에 갑작스레 그분이 내게 떡과 포도주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분의 말씀에 대해 “아니요, 못 합니다.” 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예.”만 해야 하고 말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제사장이다.
좀 더 나은 이해를 위해서 나에 대한 설명을 일부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제사장이라고 임명받은 적이 없다. 오직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너는 나의 제사장이다.”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마치 이름을 어떤 이들로부터 인정받지 않아도 아버지가 지어 부르면 그대로 내 이름이 되듯이 그분이 말씀하시니 나는 그분의 제사장이 되었다. 그 후로 하나님은 나를 훈련하셨다. 때로는 묻기도 하시고 가르쳐도 주시고 전혀 모르는 것을 말하게도 하셨다. 처음에는 그분 명령을 거역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멀리 돌아서 그분의 명령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곤 했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으니 어느 순간부터 그분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아도 그대로 하는 것이 훨씬 쉽고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느끼기까지 십 수 년의 긴 세월이 흘렀다. 내 주변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욱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더러는 내게 대놓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느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고 대개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나를 점차 멀리했다. 처음에는 저들에게 설명도 하고 변명도 했지만 이제는 세월 속에 서로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는 지체 없이 떡과 포도주를 준비했다. 그분이 명령하시니 뭔가 분명한 용도가 있을 것이고 나를 통해 이룰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떡과 포도주가 갖추어지자 하나님은 소돔 근처 사웨 골짜기로 그것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지명해 주신 곳에 가보니 벌써 소돔 왕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능한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터득한 번거롭지 않게 지내는 방식이다. 구태여 알려하지 않아도 꼭 알아야 할 것들은 주변에서 몇 번씩 이야기를 해서 알 수 있다. 그날도 저들끼리 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대충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북 왕국의 네 왕이 연합하여 이 땅에 쳐들어와 주요도시들을 파괴하고 재산을 약탈하며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서 모두가 실의(失意)에 잠겨 있었는데 헤브론에 사는 아브람이라는 이가 자기 가문의 노비들을 데리고 적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재산과 사람들을 되찾아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모인 이들은 이곳의 다섯 왕이 연합해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가문에서 해낸 것이 믿기지는 않지만 대단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브람을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도 아브람에 대해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 일은 아브람이 한 것이 아니다. 나 하나님이 그 일을 했다. 너를 이곳에 가라고 한 것도 그일 때문이다. 그를 보면 네가 할 일을 지시하겠다. 결국은 저들은 아브람이 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하셨다는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모여 있던 이들이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며 환호성을 질렀다. 모여 있던 이들은 약간은 당황하고 실망한 듯 붙들려갔던 이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지금 도착한 이들은 선발대고 이진과 삼진이 계속해서 도착할 것인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건강하게 돌아오고 있다고 하자 다시 한 번 땅이 떠나갈듯 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소돔 왕이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를 표하고 노고를 치하했다. 아브람은 자신은 별로 한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고 말했다. 아까 하나님께서 내게 했던 말과 같았다. 한줄기 전율이 내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아브람에게 나아가 떡과 포도주를 주고 내가 이르는 말을 그에게 해 주어라. 나는 지체 없이 아브람에게 나아가 떡과 포도주를 내밀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떡을 취하여 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나도 모르게 그의 머리에 내 손을 얹자 내 입에서 그분의 말씀이 나가고 있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내 입의 말이 끝나자 아브람은 그가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게 주었다. 내가 영문을 몰라 사양하려 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받으라. 나는 그분 말씀에 순종했다. 모두가 숙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