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었네, 이제 그만하시게
되었네, 이제 그만하시게
바쁜 연말을 살고 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한 해가 다사다난(多事多難)했음을 습관처럼 이야기한다. 또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던 해가 없었지 싶다. 이 틀에 박힌 말이 올해도 어김없는 사실이 되었다. 이 공사다망한 시기에 토요일마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방송은 그것을 거의 생중계 수준으로 보여준다. 벌써 여덟 번을 했고 이제는 맞불집회도 열리고 있다. 바라기는 탄핵하라는 외침이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일상의 삶을 보고 싶다.
촛불집회를 이끄는 이들은 9차, 10차 지속적으로 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집회를 거듭할수록 참여하는 이들이 줄어들 것 같다. 탄핵이 가결될 때까지의 그들의 애국심과 충정 그리고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탄핵 후에도 계속되는 집회는 의심을 살 여지가 있다. 그들이 보여준 놀라운 질서와 민주 의식은 세계인이 놀랐다. 그 바탕에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까지가 촛불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탄핵요구는 타당했고 그 외침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 대고 하는 촛불과 보수 양측의 외침은 지나치다. 대통령권한대행을 물러나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가 적합한가, 잘하고 있는가를 떠나서 그러한 일은 나라를 겉잡기 어려운 혼란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하는 요구는 법률이 정한 기한, 재판관들의 양심과 자존심을 자극하는 일이다. 재판관들이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꼿꼿한 이들이 외부의 영향으로 서둘러 판결할 것 같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빨리 결과를 내라는 것은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 더없이 중요한 일이니 신중함이 마땅하다. 휴일도 반납하고 몰두하는 그들에게 무엇을 더 요구하는가. “탄핵을 인용하라”, “기각하라”는 외침은 무책임하다. 그 결정은 재판관들에게 부여한 고유의 영역 아닌가.
정치인들이 촛불집회를 부추기거나 편승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옳지 않다. 이 사태의 본질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고려하면 일차적으로는 대통령에게 있고 다음은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 있다. 최순실과 그 무리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했을 것이고 공적인 위치에 있지 않으니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청와대 사람들은 어쩌면 실세 대통령을 거스르기 어려웠을 것이고 크게 보면 대통령이 임명한 한 무리라고 볼 수 있으니 핵심은 대통령이다. 그 대통령을 필두로 행정부를 견제 감시하는 의무가 국회와 야당에게 있는 것 아닌가. 일반 서민들이야 돌아가는 형편을 몰랐다고 하겠지만 온갖 정보의 수집수단과 능력을 가지고, 그 일을 하도록 국민들에게 위임을 받고, 짧지 않은 세월 그 일을 해 온 이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의 사태라고 여겨진다.
야당에게 수차례의 해결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천금 같은 기회를 더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놓치고 말았다. 판을 더 키우려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그럴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아서다. 국정조사위원회에서 보여주는 그들이 모습들도 희망적이지 않다. 경제계의 증인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한 것이 누구인가. 모두를 싸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야합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좀 더 근원적으로 따지면 어느 쪽이 더 아쉬웠을까. 본질을 더욱 진지하게 물고 늘어질 수는 없었을까.
몇 몇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도 보기에 좋지는 않다. 스스로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고 아예 그런 집회에 나타나지 않을 수는 없을까.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로서 조바심이 나고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에 얼굴이라도 내밀고 한마디 하고 싶어 하는 심정을 모르진 않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그들에게 있는가. 차라리 집회들을 진정시키고 정치권과 자신들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가.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너무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막대한 국력을 소모해야 하는가. 자칫하면 촛불과 맞불이 서로의 세를 과시하려 할지 모른다. 일부 시위를 부추기는 이들은 어떻게든 이 호재를 이어가고 싶어 할 것이다. 촛불을 든 이들이여, 지금까지로 충분하다. 정말 고생했다. 큰일을 했으니 이제는 전담기관을 믿고 기다리라.
내 의견만 옳은 것은 아니다. 상대의 의견도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소수가 결정해 결과를 종용하는 독재의 차이다. 이제는 모두가 일상의 삶에 더욱 충실하면서 알맞은 과정을 거친 잘 익은 열매 같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는 학생들을 위시한 온 국민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였다. 이번에도 그 역할을 많은 이들이 훌륭하게 해냈다.
온 마을이 나서 산을 에워싸고 들짐승을 사냥했다면, 잡은 것을 뒷손질하는 이들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 요리하는 이들의 손을 거쳐 잔치음식을 먹으러 모이라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