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잠 못 이루는 밤에

변두리1 2016. 12. 18. 18:32

잠 못 이루는 밤에

 

   오래 전에 귀뚜라미가 자취를 감췄고 날마다 기온은 낮아져 간다. 십이월이 깊어가도 가게들 불빛만 요란할 뿐 분위기는 차분하다. 밤 깊어 사위는 고요한데 자리에 누워도 잠은 오지 않는다. 일어나려니 잠든 아내 깰까 조심스러워 누운 채 낮의 일들을 되돌아본다. 분주하기만 했을 뿐 딱히 이런 일을 했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일주일에서 한 달, 반 년, 올 한해를 통째로 돌아보아도 내 놓을 게 신통치 않다.

 

   크르륵, 크르륵 갑자기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오늘 하루 피곤했었나 보다. 나는 잠 못 이루고 점점 정신이 말짱해지는데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상상은 30년을 더 넘어 멀리 날아가 신혼시절로 나를 데려간다. 결혼식을 치른 지 며칠도 되지 않았을 저녁인데 아내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겁이 덜컥 났다. 밝히지 않은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평소에 위장이 자주 아프고 가끔 편두통이 있단다. 나는 몸이 약하기는 했어도 이렇다하게 아픈 곳은 없어 누구나 건강한 것인 줄 알았다. 다행히 아내는 그 후로 이제까지 큰 병치레 없이 살아오고 있다. 아내는 코를 자주 골고 가끔은 숨이 멎을 듯하다 이어지기도 한다. 옆에서 자는 내가 불편하기도 하고 몇 번은 겁도 났었지만 이제는 무감각해졌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니 모르는 눈치로 내가 피곤해 어쩌다 코를 골면 아내가 흉을 본다.

   어느새 아내의 숨소리가 고르다. 새근새근 편안한 호흡으로 수면을 취하고 있다. 부부가 산다는 게 다 그런 것인가. 그저 모든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긴 세월 자녀 셋 키우고 힘들게 살아온 것이 안쓰럽게 여겨진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좋아 보이고 남의 밥그릇이 더 커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뚜렷한 내 삶의 철학을 가지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여름철 하늘마냥 수시로 개었다 흐렸다를 오가며 겨울인양 얼었다 풀리기를 되풀이 한다. 드러내 표현하지 않으니 자신들은 흔들려도 내가 중심을 잡아 주리라 여기겠지만 서로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몸과 마음의 느낌이 같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음이 편하고 당위성이 분명한데도 몸은 따라가지 않고 불편을 느낄 때가 많다. 전문과정과 훈련을 거친 내가 이런데 아내와 자녀들이 느끼는 것은 어떨까.

   알 수 없는 것은 아이들에게서 그러한 기색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끔 이야기를 해보면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단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셋이 함께 성장했어도 그 과정이 좋았단다. 다른 친구들보다 열악한 형편이었음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라주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최근에야 우리 집이 부유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단다.

 

   아내가 몸을 틀어 내 목 쪽으로 숨을 내쉬고 있다. 서늘한 기운이 규칙적으로 느껴진다. 잠을 깨울 수도 없고 돌아누워도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왜 이리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일까. 얼마 남지 않은 이 해의 마지막 며칠을 어떻게 서너 달처럼 살아볼 수는 없을까 하는 궁리라도 해보아야겠다. 세월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몰입이 중요하다. 느슨하게 일 년을 해도 못할 일을 몰입해서 일주일에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아직 이 해가 반달도 더 남아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몰입만 하면 한 해를 의미 있게 살았다고 돌아볼 수 있으리라. 삼사십년의 생애를 살다간 이들도 후세인들이 기릴 만한 일들을 남겼는데 오늘날의 문화와 문명이라면 훨씬 짧은 기간에라도 못할 일이 없을 게다. 의지와 노력이 문제다.  

   점점 갈등이 된다. 지금이라도 일어나 밀린 책을 읽으며 아침을 맞아야 하나, 힘겨워도 잠을 청해 적은 피로라도 풀어야 하나. 요즘은 하루라도 밤을 새우면 그 피로가 삼사일 간다. 이대로 일어나 이런 저런 일들을 한다면 며칠을 몽롱하게 보내야 할 듯하니 조금이라도 자두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이따금 부지런한 이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어디론가 일찍 떠나는 이들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부지런한 배달원이 신문을 던져 넣는 소리도 나는 것 같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내는 일어나 또 하루를 시작하고 나는 겨우 잠들어 늦잠을 잘 것 같다.

   지난 밤 내가 잠 못 이루고 돌아보았던 날들과 결심들이 나로 하루를 한 달처럼 살게 하려나. 사나흘만 몰입해 열심히 살아도 느슨하게 한 철을 사는 것보다 나을 것인가.

 

   내 형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또 다시 몸을 뒤척이며 크르륵, 크르륵 코를 곤다. 내일도 아내가 코 골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