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무서운 녀석(사울 왕의 처지에서)
한없이 무서운 녀석(사울 왕의 처지에서)
내 나이 오십이 되도록 숱한 인물들을 보아왔는데 그중에 제일 알 수 없는 녀석이 다윗이다. 나이라고 해봐야 내 반도 되지 않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고 마주해 보아도 대단한 게 없는데, 한 없이 두렵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점차 그를 좋아하고 그를 돕는다. 심지어 나를 이어 왕이 될 후계자인 맏아들 요나단조차도 철저히 다윗의 사람이 되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딸도 나와 다윗 중에 신뢰할 수 있는 이를 택하라면 그 녀석을 택할 기세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시켜도 힘들이지 않고 해낸다. 무언가 잘못을 찾아내서 처벌을 하려해도 눈에 띄는 잘못도 없다. 군대와 백성의 마음이 날로 그에게 기울고 있으니 너무도 불안하다. 그 녀석은 운도 억세게 좋아서 위기를 잘도 피해간다. 언제부터인가 내 가장 긴급한 목표가 다윗의 신뢰도를 낮추고 나아가 그를 제거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몇 번 내 병을 빙자(憑藉)해 직접 제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치밀히 준비하여 녀석이 가장 허술한 순간을 노렸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내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 녀석도 하프를 들고 급히 오게 되어 있다. 그가 들어와 자리를 잡기 전 온 힘을 다해 창을 던졌는데, 누구도 피하기 어려울 것을 그 녀석은 두 번이나 피했다. 마치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그 녀석을 지켜주는 느낌이 든다. 한동안 증오와 질투의 살기 띤 눈으로 난리를 치다가 한숨을 몰아쉬고 조용히 한다. 그러고는 표정을 바꾸고 어리둥절한 눈치를 보이며 평소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내 병이 온전히 연기(演技)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통제할 수 없는 질병이지만 병을 핑계로 내 뜻을 이뤄보려 한 적이 있었다는 고백이다.
전세가 불리한 전쟁이 있으면 그 녀석을 보낸다. 이겨도 좋고 패해서 그 녀석이 돌아오면 전투능력평가가 낮아지니 좋고 대패해서 전사하면 내 큰 문제 하나가 해결되는 것이니 더욱 좋으리라. 시시한 전쟁에는 그 녀석을 출전시키지 않는다. 괜히 승리의 전적만 쌓아줄 이유는 없다.
녀석에게 내 딸을 준다는 것은 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 안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나는 첫째 딸을 주기 싫어서 다른 이에게 시집보냈다. 그러고는 비공식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적군 백 명을 무찌르라는 무리한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내 사위가 되는 것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전쟁에 나가서 죽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녀석은 그 짧은 기간도 앞당겨서 두 배인 이백 명을 무찌르고 내 앞에 나타났다. 다른 이들은 나를 볼 때 두려워하는데 나는 이제 그 녀석 보기가 두렵다. 할 수 없이 내 딸을 다윗에게 주었다.
내가 이렇게 그 녀석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은 나를 왕으로 삼은 사무엘선지자가 왕권이 나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옮겨갔다고 한 이후부터인 듯하다. 그 선지자는 그것이 확실하다고 거듭 확인을 했고 얼마 후에 은밀히 다음 왕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그것이 다윗이라고 내 측근의 사람들이 나에게 알려 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오랫동안 후계자 수업을 해온 내 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어야 신하들도 동요하지 않고 백성들도 편할 것 같다. 또 왕은 아버지를 이어 맏아들이 되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니 그 규칙이 깨어지면 너도 나도 왕이 되려고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그러면 국력이 약화되어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 나의 깊은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나단 자신도 다윗 그 녀석을 편들고 다윗의 일이라면 제 일 이상으로 마음을 쓴다. 아직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다윗이 될 것을 모르는 듯하다.
마음이 급하여 비밀리에 내각과 관계기관에 “다윗제거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어이없게도 요나단이 다윗에게 그것을 알려주어 무산이 되었다. 또 한 번은 그 녀석의 집에 한밤중에 군사들을 보내 체포해 내 앞에서 직접 처치하려 했는데 어떻게 정보가 샜는지 그 밤에 도주해 버리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그 녀석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다윗을 돕는 얼빠진 놈들이 너무도 많다. 도대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고 함께 있지도 않는 그 녀석은 내 신하들을 무슨 수로 나보다 더 잘 부리는지 알 수 없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세가 기울기 전에 어떻게 하든 다윗을 제거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그것이다. 온 나라에 다윗을 보는 자는 즉각적으로 관계기관에 신고하라고 포고령을 내리고 관계기관에는 다윗에 관한 사항은 왕에게 직보(直報)하도록 지시를 했다. 덧붙여 시급할 때에는 다윗의 생명을 해쳐도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며 다윗 제거에 직접적 공이 있는 자는 포상할 것임을 알렸다.
그럴수록 더욱 불안하다. 무슨 수를 써도 그 녀석을 제거할 수 없을 것 같고 반드시 다윗이 왕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리고 다윗에 의해 쫓겨나는 나와 일가친척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안 된다. 그럴 수 없다. 나라는 안정이 유지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내가 오랫동안 왕위를 지키고 그 후에는 내 맏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어야 한다. 그 외의 대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