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그리고 그 후
휴식 그리고 그 후
내 방에 앉아서 바깥을 보면 5층 아파트의 1,2층쯤의 측면이 눈에 들어온다. 수년 전에 그 벽을 엷은 미색으로 칠해서 깨끗하다. 도로와 면하고 있는 담까지 약간의 공간에 은행나무 한그루와 풀들이 자라고 있다. 풀들이야 키가 작아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은행나무는 담에서 훌쩍 올라와 내가 고개만 들면 내 눈을 피할 수 없다. 아무런 노력을 않고도 관리인들이 철마다 돌보는 그 나무를 편하게 앉아서 거대한 벽면을 배경으로 푸르렀다 노랗게 되었다 잎들이 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으니 남모르는 행운이다.
얼마 전에는 노란 잎들이 성기게 달려있더니 수백 개를 거쳐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어 겨우 십여 개에서, 급기야 배배틀어져 붙어있는 몇 잎을 빼고는 다 떨어져 버렸다. 화단을 돌보는 연례행사인지 어느 날 나무의 윗부분을 댕강 잘라놓았다. 한 해 동안 힘들게 늘여놓은 가지들이 잘리고 줄기도 뭉텅 베어져 나갔다. 보기에 흉하다. 그러려면 잎들이 다 진후에 가지런한 모습으로 정리하면 좋으련만 그것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무는 늦은 봄부터 한 여름을 지나 늦가을에 이르도록 숨 가쁘게 보여주던 삶의 변화를 멈추고 긴 휴식기에 들었다. 미색 벽을 배경으로 느릿느릿 그려내던 움직임의 시대를 끝내고 이제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시침을 떼면서 다시 일고여덟 달 전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난 그 나무가 은행나무인 것을 올해야 알았다. 내 방에서 삼년을 수도 없이 보았을 텐데 아무런 의식이 없다가 봄이 되어도 싹이 틀 기미가 없어 죽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면서 그 존재에 마음이 갔다. 늦은 봄 잎들이 올라오는 게 반가웠고 그때서야 은행나무임을 알았다. 그 나무 아래로 은행이 떨어져 구르는 것을 본 것 같지 않다. 잎들은 수북이 쌓였었지만 열매는 없었으니 이제야 그것이 수나무일 거라는 짐작을 한다.
본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긴 세월 함께 했다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없으면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이들이 있다. 삼 년 가까이 되었어도 잘 모르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오년 지나 우연히 만나는 이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람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세월 속에 많은 변화가 몰아쳤을 텐데 서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다. 아니면 애써 위로하려 변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무도 나이테가 하나 늘어나고 그만큼 덩치가 불어났을 게다.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는 그도 나도 몸에 나이테가 많아지고 주름살이 늘었을 게다. 서로가 몰랐던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있다. 훌쩍 큰 모습으로 나타난 자녀들을 볼 때다. “네가 ××냐, 초등학생이던 네가 고등학생이 되었구나.” “아빠보다 키가 더 크겠네”그들을 통해 지나간 세월을 가늠하고는 흘러간 때를 서로 아쉬워한다.
나뭇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 썩어 또 다른 생명들을 위한 거름이 되 는 것이 자연의 이치건만 포장도로 위를 구르는 낙엽들은 모아져 불타고 만다. 후세들을 위해 기여하지 못한다. 제몫을 다하지 못하는 듯해 이파리마저 안쓰러워 보인다.
여전하다는 건네는 인사말 속에서 후세를 위한 거름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어정쩡히 또 한 해를 보내는 내 모습을 찾아낸다.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눈에 띄게 드러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못내 민망하다. 변함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자녀들은 한 해가 다르게 훌쩍훌쩍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도 겉으로 표현도 못하고 마음만 초조한 채 어찌할 줄 모르고 또 한 해가 저만치 가고 있다.
가끔은 텔레비전에서 출연자들의 나이가 자막에 비춰지는 때가 있다. 겉모습을 보다가 나보다 적은 나이를 확인하고는 놀라곤 한다. 세태를 따라 머리에 물을 들이니 얼마나 센 머리가 있는지 모른다. 차라리 알지 못함을 다행으로 여긴다. 내 어렸을 적 지금의 내 나이였을 부친의 머리모습이 떠오른다. 오래 사신 노련한 노인이라 여겼는데, 상상하는 내 생김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꼭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방 앞의 은행나무는 긴 휴식을 누리고 또 다시 한 해를 새롭고 싱싱하고 황홀하게 되풀이 할 것이다. 밝고 연한 녹색에서 진한 녹색으로 그리고 눈부신 금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삶의 순환을 이어갈 게다. 고요히 있어도 속으로 다가올 봄을 위해 분주히 준비하고 있으리라.
은행나무가 휴식을 취하듯 고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여전하다고 할 만큼 겨울처럼 지내고 있다. 문제는 겨울이 휴식이 너무 길다는데 있다. 새싹이 나오지 않으면 죽은 게다. 내 몸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아야겠다. 어쩌면 밝고 연한 새 잎이 나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