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본다
희망으로 본다
온 나라가 시끄럽다. 신문과 방송이 쉬지 않고‘비선실세’,‘국정농단’을 얘기하고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검찰조사를 받고 구속이 된다. 야당과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2선으로 물러나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하야(下野)하란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100만 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방송사들은 거의 생방송수준으로 몇 시간동안 그 현장을 보여 주었다.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은 거리로 나서 하야촉구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촛불집회’에 교복을 입고 중 ․ 고등학생들도 참여했단다. 넥타이부대, 유모차를 끈 이들, 중 ․ 고등학생들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행진을 한다. 한편에서는 큰일이 날 것처럼 떠들어대고 다른 편에서는 나라망신이라며 안타까워한다. 공인 되지 않은 몇 사람에 의해 온 나라가 놀아나고 속은 모양새가 되었다. 큰 손실이며 한동안 국가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믿었던 이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을 온 국민이 겪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온통 시끄럽고 국론이 분열되어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서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친다. 국회의원들과 보좌진들도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고함을 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며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이들에게 나는 때로는 목소리로 때로는 마음으로 ‘그래도 잘 될 겁니다’라고 얘기한다.
시위현장에 다양한 이들이 함께 했다는 것부터가 희망이다. 그들이 큰 사고 없이 집회를 마치고 경찰이 진압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의 힘이다. 지난 칠팔십 년대의 시위를 생각해보면 그 힘의 변화가 보인다. 전경들과 밀고 밀리며 최루탄이 난무(亂舞)하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숨 가쁜 모습들, 시위를 하는 이들과 막는 이들, 끌려가는 이들과 끌어가는 이들. 그런 모습들이 이제 낯설어졌다. 신체적 자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고, 서로 다름과 불편과 혼란을 우리사회가 넉넉히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는 반증이다.
지난날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들은 많은 걱정을 한다. 나라살림 하기가 어디 쉬운가, 웬만한 것은 참고 살아야지…. 하지만 젊은이들은 울지 않는 아이에게는 젖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이든 이들은 전통적 유교사상에 은연중 배어있고 젊은이들은 혁명과 토론으로 발전해온 서구 민주주의 에 젖어있다. 어떤 생각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서로 같지 않을 뿐이다.
자주 만나는 나이든 분은 고성이 오가는 국회와 의견이 분분한 언론, 연일 시위가 그치지 않는 사회를 비난하면서 차분한 국회, 질서에 익숙해진 사회와 시민들이 선진국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는 그분의 의견에 자주 반대를 한다. 일사불란(一絲不亂)한 모습은 공산주의 국가의 특징이다. 다른 의견이 없다는 것이 비정상이고 그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자유롭지 못함이다. 우리도 그런 세월을 적지 않게 겪어보지 않았는가.
효율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함께 이해하고 의견을 모아 많은 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그 방법을 택하면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이 중시되어야만 한다. 또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이었던 가부장적 사회에서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금기시(禁忌視)했던 모습이어서 정착이 어려울 뿐 결국은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길이다.
본래 창조의 모습은 깔끔하지 않다. 혼란과 무질서를 지나 새로움과 가지런함이 만들어진다. 혼돈에서 밤과 낮이 생겨났음을 여러 신화들은 말해주고 있다. 변화는 불안과 함께 다닌다. 평안과 안정은 정체와 퇴보를 가져온다. 변화를 두려워해 태아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새끼들이 알 안에만 머문다면 어떻게 역사가 이어질 수 있을까. 갓난아이들이 자라나는 집은 조금은 소란스럽고 부산하다. 어른들은 오히려 그런 모습을 그리워한다. 어질러 놓을 아이가 없고 소란을 일으킬 여지가 없는 가정이야말로 미래에의 희망이 적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안정을 깨는 흔들림이다. 아이들은 누워있음을 넘어서 일어나 앉고 또 그 단계에 머물지 않고 선다. 서고 얼마 안 되어 걷고 뛰기를 시도한다. 그 후로도 자전거를 타고 여러 형태의 브레이드에 도전한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마다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며 불안을 깨고 한 계단씩 올라간다.
돌아보면 우리사회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적지 않은 계단들을 숨 가쁘게 올라왔다. 지켜보는 이들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만족하지 않는다. 앞만 보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우리사회와 역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온 험난한 길들을 생각하면 현재의 굽은 길에 좌절할 우리가 결코 아니다. 일제시대 한국전쟁 사일구 광주민주항쟁 육이구를 겪으며 더욱 다져진 체력이 있으니 미래를 희망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