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바꾸기
생각 바꾸기
정육코너였다. 서른 댓 되어 보이는 청년이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잘게 썰었다. 숙련돼 보이는 것이 꽤 오랜 세월 해온 솜씨 같다. 아내가 청년을 향해 젊은 사람이 열심히 자기 일 하는 것을 보니 존경스럽다고 했더니 감사하단다. 30년을 백수로 지내는 사람을 옆에 두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내가 화내는 척 했더니 아내는 이런저런 변명을 한다.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난데 왜 아내가 변명을 하는지 모르겠다.
고루한 직업적 편견에 그 청년이 겪었을 힘든 순간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부모가 자식이 그런 일을 한다고 할 때 선뜻 허락할 수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종으로 가는 길에서 갈라설 때의 아픔도 있었을 게고,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숱하게 듣고 겪었을 피곤한 말들과 상황이 짐작이 된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성실하게 해나가면 모두에게 좋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인데, 왜 그토록 특정 직종에 목매고 서로를 힘들게 했던가. 청년이 다시 보인다.
텔레비전을 보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과일배달을 하는 청년도, 산업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노래를 무척 잘한다.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쩌면 저렇게 태연하고 당당하게 해낼 수 있을까. 에릭 호퍼는 “사람들이 하루에 여섯 시간만 일을 하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추구한다면 은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생계를 위한 직업과 별도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평생 추구하라는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하는 삶의 환경을 위해 더 노력해 볼 일이다.
내 스스로 잘 풀리지 않는 목회자의 길에서‘흔들리지 않는 무능한 삶’으로 오래도록 버텨왔다고 생각하면서 자주 주눅 들곤 했었다. 잠자리에 누워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못되었던 때가 생각처럼 길지 않았다. 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한들 이제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은 훌쩍 자라 성인이 되었고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언젠가 들은 말 가운데 돈이 안 되는 일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말의 진위를 떠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나 보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 아닌가. 쉽게 하는 말로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다는 표현이 내 심정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남들의 평균만큼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제 그 생각을 버리고 싶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나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유능하다는 최면 혹은 자기착각이라도 가지고 살아야겠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참 허망하다. 내 나름으로 무언가를 쉬지 않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이 땅을 살아가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한 마디로 헛 다리를 짚은 셈이다. 생각을 바꿔야지…. 다른 이들은 모두 헛 다리라 해도 나는 필요한 것을 준비해왔다고 자부할 것이다. 내가 왜 다른 이들의 기준과 평가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가. 이제까지 내 삶을 꿋꿋이 살아왔듯, 앞으로도 내 가치관을 따라 살아갈 것이다.
한동안 잘나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힘겨워한 적도 있었지만 이젠 나의 내면에 집중하면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들을 몰아내고 나만의 것들을 가꾸고 다듬어 그것들을 글로 드러내고 싶다. 긴 세월을 고치처럼 내 안에 갇혀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펴보고 조금씩 고치를 벗어나 나를 이끄는 곳, 내가 가야할 방향으로 나비되어 날아가고 싶다.
니체의 책을 읽는다. 어쩌면 백삼십여 년 전에 그토록 대단한 생각을 하고 글로 표현해 책으로 남겨 놓았을까. 많은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 쓴 니체의 책, 그 해설판을 읽으면서 내용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늘의 내가 민망하다. 어쩌면 나를 향해 손짓하는 듯한 니체를 이제까지 외면해 왔다. 니체 칸트 프로이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 넘어야 할 높은 산들이 여럿이다.
내 앞의 과제들을 잘 극복해, 단련된 눈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나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적은 재능으로 헤매어 온 오랜 세월을 탓하지 않으련다. 내 삶의 세 토막 중 둘을 살아왔다면 나머지 한 토막의 삶을 이대로 살라고 해도 불평 없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이후로는 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보다 긍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인정하리라. 오늘의 내가 있음이 혼자만의 애씀이나 안타까움의 결과가 아니라, 많은 주변 사람들과 가족 친인척 유무형의 스승님들, 모든 분들의 도움과 가르침의 결집임을 안다.
정육코너의 청년은 나보다 앞서 스스로의 생각을 바꾸었을까. 그가 당당하듯, 나도 내 생각을 바꾸어 내 삶에 당당하게 온 몸으로 맞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