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와 나의 소망
아까시나무와 나의 소망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집을 사람들은 꼭대기집이라 불렀다. 집 마당을 외돌아 나가면 야트막한 산이 있고 그 낮은 입구에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서 앞이 반들반들 패인 묘가 있었고 거기서 조금 떨어져 절이 있었다. 니은(L) 자형 집과 마당 그리고 뒤편과 왼쪽으로 열댓 평 정도의 밭이 있었다. 우리 집보다 절이 지대가 조금 더 높았는데 그곳과는 다리로 방향이 나뉘어져 있었다.
우리 집과 산 사이에 좁은 길을 통하여 학생들은 지름길처럼 학교를 다녔다. 그 길과 밭을 나누는 울타리가 찔레나무 참나무 가죽나무 아까시나무 싸리나무 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제일 많은 것이 아까시나무였다. 그때 이름을 아는 나무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아까시나무는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난방과 취사를 했는데 자주 썼던 땔나무가 아까시나무였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그 나무였으니 땔감이 부족하면 눈에 띄는 대로 구해다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쭈글쭈글해진 잎들과 탁탁 소리를 내며 타던 줄기들 그리고 손등과 팔 다리를 긁고 지나가던 가시의 느낌, 활활 타오르던 불꽃들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앞산에 오를 때 빈손이면 허전해서 막대기를 챙기곤 했는데 그것도 주로 아까시나무였다. 아까시나무의 꽃과 줄기를 먹으면 회충이 생긴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그때 우리에게 좋은 심심풀이, 먹을거리였었다.
중학교 때에는 두 해나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나와 친구에게 선생님 댁의 토끼 먹일 풀을 뜯어다 주라고 하셨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사적인 심부름이었지만 그때는 나를 인정하고 믿어 주시는 것이 그냥 좋았다. 그때 잔뜩 뜯어 간 것도 아까시나무 잎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청주 유일의 기독교계 남학교였는데 오가는 길에 양관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구름다리가 있고 그 앞뒤로 유독 아까시나무가 많아서 오뉴월이면 진하게 풍겨오는 달큼한 꽃향기를 즐길 수 있었다. 내 천성이 꽉 막힌 면도 있지만 당시에는 학교생활도 여유가 부족하고 삭막한 면이 많았다. 고교입시가 시험제여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캄캄할 때에 집으로 가는 길가에서 우리를 급습하던 아까시 꽃향기는 그날의 피로를 잊게 해 주는 행복이었다.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인데 번식력이 워낙 강해서 웬만한 땅에서는 왕성하게 자란다. 땅속으로 얕게 광범위하게 뿌리가 퍼질 뿐, 열매가 달리는 유실수가 아니어서 한때는 별로 쓸모없는 나무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땅을 비옥하게 하고 홍수에 흙이 떠내려가는 걸 막아주고 향기로운 꿀을 주는 허물없고 친숙한 오랜 친구 같은 존재다. 칠십 년대 초까지도 많은 가정에서 화목(火木)으로 취사와 난방을 한 것을 생각하면 훌륭한 땔 나무요 국토의 껍질을 지켜 주었던 고마운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그다지 빼어난 면이 없고 주변에 흔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억울한 나무다.
아까시나무 같은 그런 사람이고 싶다. 식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나무는 아무래도 친숙하지 않다. 몇 걸음만 옮기면 만날 수 있고 이름을 알고 추억도 얽혀 있는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 좋다. 별반 유익함이 없는 듯하고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둘러보면 가까이에 있고 이곳저곳에 본래의 목적이 아니라도 쓸 수 있는 부담 없는 존재가 좋다. 때로는 가시처럼 자신의 사생활을 분명히 고수하고 상대의 접근을 차단하는 예측 가능함도 좋다.
아까시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혜택이 무엇일까. 서슴없이 향기라고 말하련다. 그 향기는 기분을 좋게 하며, 어린 시절로 아련히 돌이키고,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꿀이 아무리 경제적 이익을 주고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할지라도 향기와 비교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서로 얽혀 있어 추억을 되새겨주는 친구가 있다. 매일 만나도 부담스럽지 않은 어릴 적 친구 같은 사람, 유명하지도 잘나지도 않아 크게 주눅 들지 않고, 서로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도 정색하고 대들지 않을 그런 이들이 그립다. 말없이도 서로를 헤아리는 이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을 것 같은 아까시나무처럼 친숙한 이들이 한둘 쯤 나에게 있고 나도 다른 이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