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하면서
설거지 하면서
개수대에 그릇들이 수북하다. 보는 것만도 부담스럽다. 수세미를 찾는다. 왜 수세미를 설거지그릇 속에 늘 넣어 놓는지 그것을 찾는데도 마음이 쓰인다. 수세미를 찾아내고 그 위에 세제를 조금 뿌리고 수돗물을 아주 약하게 튼다. 우리 식구 다 해야 다섯, 한 녀석 멀리 가 있으니 기껏 넷인데 설거지거리는 어쩌면 그렇게 많은지 알 수가 없다. 국그릇을 잡고 수세미로 안과 밖을 한 번 문지르고 미끄러운 느낌이 없어질 때까지 닦는다. 시간이 감에 따라 그득하게 쌓였던 것들이 줄어들고 깨끗해져서 하나 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설거지는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길어 봐야 하루만 지나면 다시 수북하게 쌓인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거의 비슷하다. 빨래, 청소, 정리 정돈. 모두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서 시간과 함께 묻혀가는 것이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일은 되풀이 되는 일들이다. 한 번 하고 마는 일들은 사실은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지속적으로 숨 쉬고 심장 뛰고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것이 사는 것이다. 이 중에 어느 하나만 제대로 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다니는 곳도, 하는 말도, 만나는 사람들도 반복하는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들이다.
내가 스스로 설거지를 시작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아내가 요청을 했을 것 같다. 결혼 전이나 초기에는 해 본 기억이 없다. 우리의 생활공간이 은연중에 남녀 간에 구별이 되어 있었고 부엌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나의 세대만 해도 중 ․ 고등학교에서 남자는 기술을, 여자는 가정을 배웠는데 이제는 남녀 구분 없이 기술가정으로 통합하여 배운다. 지금은 남녀의 일이 따로 없다. 전업주부의 일을 하는 남편들이 더 이상 흉이 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설거지를 처음으로 요청받았을 때에는 이해도 되지 않고 화도 났던 것 같다. 왜 이런 것을 나에게 요구하나, 내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돌려 말하는 것인가 라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임신과 직장생활을 겸해서 하니 아내의 일손을 덜어준다는 의미에서 시작했을 듯하다. 그래도 내게는 설거지가 가장 쉽고 다른 것은 거의 하지 못한다. 아무리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한 삼십 분만 하면 그득하던 그릇들이 깨끗이 정리되니, 짧은 시간에 가장 눈에 띄게 할 수 있는 일이고 성취감도 확실하다.
설거지를 하다보면 사용하는 그릇들이나 집기류들도 너무도 분명하다. 밥그릇, 국그릇, 큰 대접, 작은 종지, 접시들, 냄비류, 수저들. 그들의 하는 일이 너무도 명확해서 서로 바꾸어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 안에도 역할분담과 조화가 있다. 가정과 사회와 역사에도 피할 수도 서로 바꿀 수도 없는 역할이 있다. 우리의 근대사에도 해방을 맞은 세대, 경제발전을 이룬 세대, 민주화를 이룬 세대가 각각 따로 있다. 인간의 성장과정도 그때그때 해결할 과업들이 있고 때맞추어 성취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나의 어머니의 시대에는 설거지의 풍경도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설거지에 필요한 것은 물과 세제와 수세미 그리고 음식쓰레기 처리이다. 예전에는 어머니들이 다라나 함지박에 설거지거리를 담고 샘가나 개울가로 갔다. 수세미도 풀, 지푸라기, 떨어진 헝겊 등이었고 세제는 재, 비누, 모래가 고작이었다. 음식쓰레기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훌륭한 자원이었다. 대부분 가축들의 먹이가 되었고 아니면 밭의 퇴비가 되었다. 설거지 조차도 이웃과 만날 수 있는 기회였고 가옥과 생활이 반(半) 개방적이어서 서로의 형편을 엿보고 돌아 볼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가정마다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면서 설거지는 집안에서 행해지는 일이 되고 우물가의 문화는 급속히 자취를 감추었다. 공동체의식은 한 순간에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다. 편리함이 공동체를 밀어내고 그곳에 개인을 들어 앉혔다. 수 천 년 내려온 우리의 문화유산이 생활환경의 변화와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편리함을 얻었지만 더 귀한 것을 잃었다. 그러고도 잃었다는 의식조차 별반 없다.
물로 개수대를 말끔히 닦고 앞치마를 벗으면 마음이 산뜻하다. 무언가 가정에 기여를 한 것 같고 아내 보기도 떳떳하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내가 설거지를 해 놓으면 힘이 난다고 한다. 아내가 하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됐다는 마음이 들만큼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아내가 며칠 집에 없었던 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족들이 신문보고 텔레비전에 빠져 있을 때 아내는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어쩌면 체념 속에서, 혹은 습관이 되어 불평을 하지 않아서 가족들이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어떤 때는 설거지하는 삼십분이 아까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는가. 한 살이라도 젊고 힘 있을 때 서로 위하고 살아야지, 나이 더 들고 몸 약해지면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을 것이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한다.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내를 기쁘게 해줄 재주도 따로 없으니 그래도 만만한 설거지라도 시간 내서 날마다 열심히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