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저자는 독일에서 뇌과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로 뇌과학과 뇌공학, 사회 뇌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인문 ․ 과학 ․ 예술을 토대로 미래형 인재를 키우는 ‘건명원’의 과학 분야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한때 드레스 색깔이 논란이었던 때가 있었다. 드레스의 줄무늬와 바탕의 색을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달랐단다. 같은 것을 놓고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시각이 완벽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은 뇌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인데다가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더욱 불완전해서라고 한다. 행복을 판단하는 기준도 각기 주관적이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출발이다. 그것을 불편해하고 같은 기준으로 맞추려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나라고 하는 존재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와 같다고 할 수 없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살아가는 환경도 늘 같은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한 달 한 달이 다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결정적인 시기까지 자신에게 익숙했던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는 고향도 고향이 아니다. 모두가 다르다. 같지 않다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불이익을 당할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형을 하듯이 우리들의 기억도 수정 내지는 편집이 가능할까. 신경세포들의 전기적 패턴을 지우거나 재생하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좋은 기억, 좋은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으려나…. 선호도를 잘 선택해서 원치 않는 것은 지우고 원하는 것들로만 디자인한다면, 그리고 수면 상태에서 뇌의 특정영역을 잘 자극하면 미래 행동을 조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의 기억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다. 대개 지나간 일들은 시간과 함께 아름답게 채색되어간다. 현재의 경험, 느낌, 생각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계속 편집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기억의 맞은편에 잊음이 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환희와 슬픔의 강도(强度)가 세월을 매개로 약해져간다. 격렬했던 과거를 남의 이야기처럼 무덤덤하게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잊음, 망각을 중단시키는 사건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그 순간에 고정되어 기억의 시간이 멈추고 과거로도 미래로도 흐르지 않아 그 강도가 약화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풀기위해서 먼저 슬픔을 인정하고 기대와 현실을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거 아닌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차분함과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시각에의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다. 계획적으로 연출된 사기일 수도 있다. 2차 대전 중,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학대한다는 소문을 듣고 국제적십자 조사단이 유대인 수용소를 조사차 방문하지만 굶던 아이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피 묻은 벽에는 페인트칠을 하고, 고문 받던 음악가들로 클래식을 연주하게 한 수용소 측의 연기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조사단은 그들의 눈으로 보았지만 진실을 본 것은 아니었다. 또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고, 본 사실을 잘못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공감능력이 부족하여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고 소통 같아도 거짓인 때도 있다. 사기가 높다고 강한 군대라든가, 전쟁에서 이기는 군대라고 할 수는 없다. 소통이 없는 억압적인 명령과 형식적인 복종은 허위를 낳을 뿐이다. 서로에게 편한 거짓이 불편할 수도 있고 불편한 진실이 더욱 편안하고 멋진 기회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현대과학과 문명은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일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기계, 로봇, 컴퓨터였다. 그런데 그것들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달할 것인가. 무인우주탐사선 “주노”가 초속 58km의 속도로 5년을 날아 28억km 거리의 목성에 도착했다고 한다. 한 가지 방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전체적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가 출현하지 않는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그러한 것들은 인류를 위협하고 우리의 많은 직업들을 대체할 것이다. 한 방에 인류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다. 어떤 혁명이나 기계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전 시장터에서 외치던 만병통치약처럼 사기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구인들인 내는 문제들만을 풀어왔다. 그러니 그들에게 늘 뒤졌고, 최선의 상태가 그들을 바짝 뒤쫓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학문과 연구에 있어서 바탕이 되는 것들은 기초분야다. 기본부터 탄탄하게 실력을 키울 때 우리도 문제를 낼 수 있다. 우리가 내는 문제를 세계인들이 풀기위해 달려 붙을 때 우리가 인류에 기여하고, 과학과 문화에 있어서 갑(甲)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이 제국적 마인드, 총체적 사고능력이다.
저자는 나벨샤우(Nabelschau), 옴파로스켑시스(Omphaloskepsis)라는 어휘를 소개한다. 배꼽바라보기이다. 세상에는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자신의 과거와 심적 상처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비꼴 때 쓰는 말이란다. 그는 이제는 대한민국이 슬슬 어른이 되어야 할 때라며 책을 맺고 있다.